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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시각각] 대 이어 충성하겠다는 뜻은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나는 이런 일을 하지만 자식만큼은 더 번듯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

 우리 부모 세대는 대개 그런 생각을 하며 살지 않았나 싶다. ‘월급쟁이가 최고’라며 자신과 같은 직업을 잇길 바라는 월급쟁이 부모가 얼마나 됐겠나. 능력 있으면, 열심히 하면 뭔가 이룰 수 있다는 꿈이 있었다. 신분상승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은 사뭇 달라졌다. 대부분의 민초에게 신분상승은 버거운 목표다. 일자리를 구해 기존의 신분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됐다. 그런 의미에서 장기근속자 자녀에게 가점을 주자는 현대자동차 노조 단협안은 매우 상징적이다. 특혜다, 일자리 세습이다 하며 비난이 들끓었지만 그리 핏대 낼 일만은 아니다.

 현대차 근로자는 공직자가 아니다. 노사가 합의해 그러기로 한다면 제3자가 어찌 말리겠나. 법을 어긴 것도, 무슨 차별을 하는 것도 아니라니 말이다. 근로자가 대를 이어 회사에 충성하겠다는 걸 욕할 수는 없다. 2세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해 더 좋은 차를 만들면 어쩔 건가. 반대로 능력이 달리는 사람들이 들어와 불량품이 늘 수도 있다. 이때 회사는 소비자들에게 버림받아 기울 것이다. 그에 대한 위험은 노사가 함께 지는 거다. 그러니 작은 불의나 배 아픈 일에 분노하는 건 그만두자.

 그보다는 그 뒤에 깔려 있는 우리 사회의 신분 고착화 현상에 더 관심을 갖자.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다. 승자와 패자, 앞선 자와 뒤진 자,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의 격차가 자꾸 벌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경제에서도 대기업은 잘나가는데 중소기업은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성장도 웬만큼 하고, 주가도 오르고 있지만 서민의 체감경기는 싸늘하다. 대기업 임직원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동안 수백만 명의 신용불량자들은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이런 상태에선 ‘나도 중산층’이라는 의식은 점점 엷어진다. 패자부활전이란 것도 어려워진다. 한번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쥐고 있는 기득권에 처절하게 매달리려는 것 아닐까. 현대차 노조의 단협안도 그런 초라한 이기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노조도 이럴진대 아무 배경 없는 젊은이들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사회·경제가 구석구석 레드 오션이다. 틈새를 찾고 찾아도 결국엔 ‘골목대장’과 맞부닥치게 돼 있다. 시쳇말로 이미 세틀이 끝났기 때문이다. 구멍가게를 하려 해도 대형 마트에 치인다. 치킨집 하나 내 먹고살려 해도 동네마다 영업 중인 곳이 수두룩하다. 빵집이나 카페도 대기업 계열이 쥐락펴락한다.

 지금의 대기업 창업주들이 활약할 때는 한마디로 ‘영웅시대’였다. 개천에서 용도 많이 나왔다. 지금은 용이 나올 만한 개천이 잘 안 보인다. 이제 용은 용이 낳는 것일까. 당대에 대기업을 일궈낸 사례, 맨손으로 신분상승을 이뤄낸 사례는 과거에 비해 확실히 줄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 세대는 폐색감(閉塞感)에 갑갑해 할 만하다. ‘좌절시대’라고나 할까. 국가면허나 자격증에 수많은 청년이 몰리고,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100대 1에 육박하는 것도 다 그런 연유 아닐까. 기업가 정신, 도전정신이 약해졌다고 이들을 탓할 수는 없다. 학자들이 말하는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이 낮아진 데 따른 현상이다.

 신분사회가 어디 따로 있나. 사회적 계층 이동성이 낮아지면 신분사회나 다름없다. 이게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겠는가. 어느 수준을 넘으면 ‘리셋’ 버튼을 눌러 다시 시작하자는 요구가 분명 터져나올 것이다. 마침 내년엔 총선과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요구가 선거 바람을 타고 어떻게 표출될지 아무도 모른다. 물론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문제의 심각성을 확실히 깨닫는 게 첫걸음이다. 현대차 노조가 시도하는 일자리 대물림은 그런 뜻에서 역설적인 의미를 지닌다.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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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