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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턱선과 흘수선

턱선과 흘수선     한성례(1955~ )


배가 물에 잠기는 분기점 흘수선

흘수선이 가라앉아간다

선이 흐트러지며 늙어가는 턱

턱선이 무너져간다


턱선이 무너지는 경계선에서

누에가 뽕잎을 먹듯 생은 입을 오물거리고

흘수선은 께느른한 잠에 잠겨간다

허겁지겁 밥 떠먹고 에둘러가는 길

(중략)

흘수선을 끌고 다니는 턱선

한순간을 떠안고 나자빠지는 흘수선

인류 최초로 등산장비를 내던지고

첫 등반에 낭가파르바트 정상에 올라

눈 아래 시꺼먼 지옥 앞에서

꼿꼿이 선 채 비박을 하고 내려온

스물아홉 살의 헤르만 불은

한 순간에 폭삭 늙어버렸다

턱선이 하루 만에

팽팽하게 당겨진 줄을 놓아버리고

다시는 흘수선에 들지 못했다


배가 물에 잠기는 분기점 흘수선

흘수선이 가라앉아간다

선이 흐트러지며 늙어가는 턱

턱선이 무너져 간다


흘수선(吃水線). 배가 물에 잠기는 한계선인데, 바꿔 말하면 배가 물에 잠기지 않고 팽팽히 떠갈 수 있는 한도를 나타내는 선. 시에서는 턱선이 흘수선이 되어 세월의 적재가 흘수선인 턱선을 무너뜨리고 가라앉혀가는 것으로 비유되고 있다. 턱선이 무너지는 늙어가는 시간에 당도해서도 여전히 ‘누에가 뽕잎을 먹듯 생은 입을 오물거리고’ ‘허겁지겁 밥 떠먹고 에둘러 길 가는’ ‘께느른한 잠’ 같은 일상. 배는 초과 적재한 화물을 덜어내면 흘수선 다시 선명히 올릴 수 있지만, 우리는 설령 먹은 맘 내려놓고 세월의 무게 덜어도 흘수선을 다시 올릴 수 없다. 어느 때 ‘한순간을 떠안고 나자빠지면’ 다시는 흘수선 안(삶)에 들 수 없다.  <이진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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