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송호근 칼럼] 손학규와 유시민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애민(愛民)과 위민(爲民), 두 얼굴의 민심은 한국의 고유 현상이다. ‘애민’의 민(民)은 적자(赤子), 즉 구제를 외치는 갓난아기를 뜻한다. 백성은 군주에게 고난에 빠진 자신들을 구해주기를 원한다. ‘위민’의 민(民)은 비판의식을 가진 교양시민이자 정권의 혹독한 감시자다. 이것이 민심의 두 얼굴인데, 5년 단임 정권에서 민심의 흐름은 예외 없이 ‘애민’(기대)에서 ‘위민’(비판)으로 흘러왔다. 기대의 소멸과 비판의식의 인플레가 겹치는 지금, 집권여당엔 재·보선이 힘겹다.

 정치는 언제나 고비용·저효율의 전형이었다. 4, 5년마다 어김없이 총선·대선을 치르고, 뜬금없이 날아간 의석을 채우려 시도 때도 없이 재·보선을 해야 한다. 산뜻한 인물을 뽑는다고 산뜻한 정치가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번 재·보선은 비용이 아깝지 않다. 한판승으로 끝날 것 같았던 2012년의 대선 판도가 바뀔 수 있는 기획상품전이기 때문이다. 실망감이 비등하는 이때, 지팡이를 꽂아도 보수의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줄 분당에서, 그리고 노풍(盧風)의 진원지인 봉하마을 김해에서 야당 후보가 살아난다면 대선 지형을 뒤흔들 태풍이 두 개나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동안 영 싱거웠던 대선 예상 논쟁에 생기와 긴장이 감돌게 될 것이다. 유시민과 손학규, 전통 야당의 입장에선 눈엣가시 같은 이들이 정말 교두보 구축에 성공할 것인지는 내일 판가름난다. 재·보선에 임하는 민주당의 애초 계산은 조금 애매했다. 군소정당을 급조한 유시민을 어쩔 건지 전략이 분명치 않았지만, 초미니 진보정당에 의석 하나 허락하는 것이 대선에 해롭지 않다는 판단이 나중에야 선 듯하다. 지지자를 몰고 다니는 풍운아 유시민과의 연대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손학규의 경우는 조금 미묘하다. 아마 야당 주류세력은 장렬한 전사를 바라면서 등을 떠밀었을 것이다. 뒷심 있는 강재섭 후보가 그를 압사시켜 주면 야당 대선 후보군이 터줏대감들 내부로 저절로 좁혀질 것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만약 생환한다면 계산이 조금 복잡해진다. 좌파의 지옥에서 중산층을 거느리고 늠름하게 귀환하는 개선장군을 홀대할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유시민과 손학규는 정치역량과 대중인기 양면에서 한나라당 박근혜를 감당하지 못한다. 야당에 그녀와 대적할 장수가 아직은 궁색하다. 그런데, 혹시, 남쪽에 초미니 교두보 한 개, 북쪽 보수 텃밭에 또 하나가 만들어져 비판과 실망의 불씨를 솔솔 살려나간다면 대선 정국을 강타할 초특급 태풍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한나라당은 거물 후보들이 제발 그 불씨를 꺼뜨려 주기를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위민의 비판의식이 봇물 터져 둑을 무너뜨리기 전에 작은 구멍 하나를 막아야 한다는 위기의식, 한나라당 중진 의원들이 총출동해서 하늘 아래 분당을 저토록 열심히 뛰어다니는 이유다.

 여당과 권력집단은 날이 갈수록 초조하다. 지난 3년 동안, 화려한 구호와 달리 ‘큰 정치’는 없었다. 부지런히 뛰었지만, 공감을 얻지 못했고, 비전을 내세웠지만, 유권자의 좌절감을 달래지는 못했다. 구태의연한 명사(名士)집단이 설치는 통에 시민 참여의 틈은 봉쇄됐다. 무엇보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요즘처럼 뚜렷이 벌어진 때는 없었다. ‘양극화’ 화두는 계층, 세대, 지역, 기업, 학력, 정치 등 모든 공적·사적 네트워크로 확대되어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고 있다. 모든 이너서클은 서울, 그것도 경화거족(京華巨族)에 집중된 듯한 불만이 대부분의 지방민에게 확산되었다. 그것은 가히 21세기 경향분리(京鄕分離)라고 할 만하다. 지방민에게 서울은 접근을 불허하는 성(城)이고, 성안의 권력·부·기회는 특권계급에 독점된 듯한 인상이다. 오죽하면, 중언부언하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이 백만 부나 팔렸을까.

 우파정치의 이런 약점을 파고드는 정치인이 유시민과 손학규다. 유시민은 좌파이념의 시대적 진화를 간파하고 구좌파와 시비를 마다 않는 유연성을 갖췄다. 자신의 오류를 과감히 수정하는 진정성이 그의 경박한 말투를 가려준다면, 서민 기대와 청년 열기를 휘몰아 내년 대선에 경량급 태풍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한편, 열심히 뛰어도 아직 열렬 지지층이 없는 야당 대표 손학규의 돌격의지는 의병대장감인데 말펀치는 시대정신의 폐부를 찌르지 못한다. 그러나, 누가 알랴, 중산층의 좌절감을 휘몰아 보수의 바다에서 중량급 태풍을 제조할지, 그리고, 남쪽의 노풍과 연합군단을 편성해 서울로 진격할지. 공상에 불과한 이런 시나리오를 노련한 맞수 강재섭과 김태호가 멋지게 구겨버릴지도 모른다. 그게 정치고 민심이다. 내일 두고 볼 일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