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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신성일, 70대 중반에도 ‘맨발의 청춘’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 연재 시작하며
“애인 없이 못 산다…평생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난 손오공처럼 엄 여사 손바닥 안”



아령과 덤벨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는 신성일씨의 몸매는 지금도 탄탄하다.



22일 낮, 차가 인터체인지를 돌아 경북 영천으로 들어서자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저수지(괴연지)를 왼쪽에 끼고 좁다란 시골길을 오르자 아담한 한옥이 나타났다. 신성일(74)씨가 2008년 강원도 금강송으로 지은 건평 44평의 ‘성일가(星一家)’였다. 얼핏 보아도 꼿꼿하고 탄탄한 몸매. 도저히 70대 중반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눈빛도 여전히 형형(炯炯)했다. ‘맨발의 청춘’(1964년)의 반항아 이미지가 47년 세월을 넘어 고스란히 전해졌다.



-정말 건강해 보입니다. 비결이 있나요.



 “꾸준한 자기 관리이지요. 매일 샌드백을 치고, 아령과 덤벨도 손에서 떼지 않습니다. 골프도 80대 후반 스코어인데 2, 3년 후에 좀 노력해서 에이지 슈터(자기 나이만큼 타수를 기록하는 것)에 도전해볼까 합니다.”



 -외딴 한옥에서 혼자 계시는 게 무섭지 않습니까. 혹시 도둑이 들 수도 있고요.



 “원래 내가 무서운 게 없어요. 지금도 한두 명은 상대할 수 있고. 다만 남자는 괜찮은데, 여자가 무서워요. 밤에 여자가 있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뭐라고 떠들어도 꼼짝없이 다 뒤집어쓰니까.”



 -여성 팬들이 요즘도 찾아옵니까.



 “물론 밤엔 아니고(웃음), 낮에 단체로들 오십니다. 뵙고 인사하고 그러지요.”



 -선생님이 주연한 영화만 506편이고, 상대 여배우가 총 118명입니다. 대한민국 미녀는 거의 겪으신 셈인데, 누가 제일가는 배우였나요.“



 “뭐… 역시 엄 여사(부인 엄앵란 여사)가 제일이죠. 다음으론 저와 영화 99편을 찍은 윤정희씨, 그 다음엔 문희씨.”(그는 부인을 반드시 ‘엄 여사’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1965년 OB맥주 캘린더 광고에 출연한 결혼 2년차 신성일·엄앵란 부부.






 -64년 11월 서울 워커힐에서 열린 신성일·엄앵란 결혼식은 정말 ‘세기의 결혼식’이었지요.



 “그랬지요. 그때 육영수 여사가 신부에게 결혼 선물로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을 선물하셨어요.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육 여사님은 엄 여사가 단골 미용실을 소개해드린 인연이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정계 인사들과 친분이 많았다면서요.



 “청와대에선 박종규·이후락씨랑 가장 친했지요. 형님 아우 했습니다. 김종필·김재규·오치성·김용태씨 등도 제가 어른 또는 형님 대접을 했고요. 이낙선 전 상공부 장관도 저를 좋아했고, 성곡(김성곤·쌍용그룹 창업자, 전 공화당 재정위원장)은 제가 아버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허주(김윤환)도 가까웠고…. 경북고를 나온 인연도 있고, 배우를 하다 보니 이런저런 만남이 쌓인 덕분이지요.”



 -71년 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DJ) 신민당 후보 진영에 들어갈 뻔하지 않았습니까.



 “당시 여권에 친한 사람은 많았지만, 검열·규제 일변도 영화정책에는 불만이 컸어요. 엄 여사가 한무협 장군에게 일러바치는 바람에…. 신민당 지명대회 다음날 DJ가 김상현 의원과 함께 제 이태원 집에 찾아왔어요. 문화예술정책을 들어보니 ‘이 사람이 대통령 되면 정말 영화 할 만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응낙했는데 며칠 후 한 장군이 저를 불러요. 한 장군은 대구에서 육군대학 다닐 때 박태준(전 포항제철 회장)씨와 함께 저희 집에 하숙했던 인연이 있어요. ‘너 김대중이 만났다면서’라더니 ‘정치 하지 마라. 네 형(공군 장교)도 별 달아야 하고, 포항 형님 사업도 해야 하고’라는 거예요. 알고 보니 엄 여사가 제가 걱정돼 일렀더군요. DJ 진영에 가지는 못했지만 대신 대선 후보 기자회견 때(70년 10월 16일) 내 이름으로 큼직한 화환을 보냈습니다. 80년 초 한 신문사 창간 기념일 행사에서 저희 부부가 DJ를 만났는데, ‘그때 당신이 정치 했으면 큰 인물 됐을 텐데’라더군요. 엄 여사가 행사장 나오면서 ‘무슨 큰 인물. 수갑이나 차지’라는 거예요. 제가 실제로 나중에 정치 하다가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까.”(신씨는 2005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돼 2년간 옥살이를 했다.)



 -5공 때도 유혹이 많았겠습니다.



 “전경환(전두환 전 대통령 동생)도 정치 하라고 권하고, 권정달(전 민정당 사무총장)씨의 사촌동생도 권하고 했죠. 민한당에선 김원기(전 국회의장) 조직부장, 김현규 조직부차장이 출마를 종용했고요. 그러나 군인이 또 정치 하는 게 싫었어요. 다 거절하고 나니 그것도 허전하고…. 그래서 작은 당에 가서 총재까지 해보려고 국민당 김종철 총재를 찾아갔어요. 엄청 반가워하더라고요. 마포·용산에 출마했다가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신성일’은 다 아는데 본명 ‘강신영’은 몰라서.”



 -외도도 하신 것으로 다들 알고 있는데, ‘엄 여사가 참 대단하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엄 여사가 어떻게 참고 살았느냐고들 하는데, 사실 나는 손오공처럼 엄 여사 손바닥에서 놀았어요. 정보를 엄 여사가 다 쥐고 있었지요. 참고 산 게 아니라 알면서도 넘어가 준 거죠. 내 방패막이도 돼 주었고.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초창기 여성 조종사 김경오 여사의 여동생이 첫사랑이었다면서요.



 “첫사랑은 아니고, ‘결혼 후의 첫 사랑’이었죠. 김영애씨. 85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앙드레 김씨가 사고 소식을 알려줬는데, 내가 엄 여사 앞에서 ‘일찍 갈 걸 알았으면 더 잘해주는 건데’라고 말했다가 된통 혼났어요.”



 -이만희 감독의 ‘만추’가 현빈·탕웨이 주연으로 네 번째 리메이크됐습니다. 혹시 보셨나요.









▶22일 신성일씨와 나눈 대화를 아이폰4로 찍었습니다. 스마트폰에서 QR코드 리더기를 작동시킨 뒤 오른쪽 QR코드를 화면 중앙에 맞추면 동영상이 뜹니다.



 “너무 뻔해 안 보았습니다. 우리(문정숙·신성일) 때 분위기랑 영 달라요. ‘만추’의 하이라이트는 섹스입니다. 감옥에서 잠시 나와 사흘이면 다시 들어갈 연상의 여자, 그리고 경찰에 쫓기는 젊은 남자. 오랫동안 남자의 체취를 느껴보지 못한 여인이 드러나야 해요. 내가 최고라는 건 아니지만, 우리 이후의 ‘만추’는 그게 잘 안 보여요. 당시 문정숙씨는 이만희 감독과 사랑할 때였어요. 사랑을 해봐야 남자에 굶주린 무르익은 여인을 연기할 수 있지요. 요새는 연애를 제대로 해본 감독이 없는 것 같아요.”



 - 몇 살까지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아흔 살에 애인만 넷』이라는 책 보셨나요. 내가 그 책의 저자 마르셀 마티오처럼 90세에 애인 넷 갖는 게 목표는 아니지만, 자기 관리만 잘하면 비슷할 수도 있을 겁니다. 나는 사랑 없이는 못 삽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어요.”



영천=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숫자로 본 신성일



32
 작년 TV드라마 ‘나는 별일없이 산다’에서 상대역 하희라와의 나이 차



118 상대역으로 출연한 여배우 수



541 출연한 영화 편수.



1937 이해에 대구에서 태어났다



1960 첫 출연작 ‘로맨스 빠빠’가 제작된 해



230000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맨발의 청춘’ 관객 수



◆신성일 약력=경북중·고교, 건국대 국문과 졸. 1960년 데뷔.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배우로, 한창 때는 양옥집 한 채에 460만원이던 시절 연 400만원의 세금을 납부했다(개인납세 전국 1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이사장, 계명대 특임교수. 부인은 영화배우 엄앵란(75)씨. 아들 강석현(51)씨도 영화배우 겸 제작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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