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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투수 김용걸 나섰다 ‘왕자 호동’ 부활했다





김현웅·이동훈 폭행에 빈자리
최태지 단장 “나서달라” 부탁
2년 공백에도 전성기 같은 무대
“작품분석 오래 해 낯설진 않다”



창작 발레 ‘왕자 호동’에서 김용걸(가운데)은 호쾌한 점프로 무대를 장악해갔다. 여주인공 낙랑공주 역의 김리회(24)는 커튼 콜 때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프리랜서 이영진]





왕의 귀환! 김용걸(38)이 위기의 국립발레단을 구했다. 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창작 발레 ‘왕자 호동’은 “역시 김용걸!”임을 확인하는 무대였다. 점프 높이는 과거에 비해 조금 못했지만 감정 표현, 연결 동작, 고난도 회전은 전성기 이상이었다. 마치 은퇴한 선동열이 다시 마운드에 올라 직구 구속은 150㎞에 못 미치지만, 완급 조절과 칼날 같은 제구력으로 타자를 요리하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김용걸의 투입은 갑작스러웠다. 지난달 25일 국립발레단의 두 남자 주역, 김현웅·이동훈이 폭행 사건에 휘말려 생긴 빈 자리를 메우는 형식이었다. <중앙일보 4월23일자 23면>











2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임용되면서 사실상 현역을 은퇴한 그로선 부담스러운 복귀 무대였을 터. 하지만 그는 많은 이의 우려를 한방에 날려 보내며 묵직한 카리스마로 관객을 압도했다. 공연 뒤 백스테이지에서 그를 만났다.



 -출연은 언제 제안 받았나.



 “3주 전이다.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이 ‘상황이 너무 나쁘다. 네가 서 주었으면 좋겠다’며 눈빛이 절절하셨다. 말이 부탁이지 강압적 분위기도 사실 조금 있었다. (웃음) 프랑스에서 한국에 돌아올 때부터 내가 배우고 익힌 것을 다 쏟아 붓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게 감사할 나이가 됐다.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전막 발레 주연은 얼마 만인가.



 “6년 만이다. 소품은 프랑스나 국내에서 몇 번 했지만, 전막 발레 주인공은 2005년 유니버설발레단의 ‘지젤’이 마지막이었다. 오래 전부터 작품 분석을 해온 덕인지 ‘왕자 호동’이 아주 낯설진 않았다.”



 -2년 만의 현역 복귀다.



 “교수로 있으면서도 무대를 완전히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1주일에 최소 이틀은 국립발레단에 나와 후배들과 같이 연습했다. 갈라 무대에도 꾸준히 올랐다. 내 자신을 계속 연마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어떤 교육보다도 살아있는 수업이라고 확신했다.”



 -부담감은 없었나.



 “솔직히 많이 떨었다. 학생들에게 매일 뭐라고 해왔는데, 내가 벌거벗은 모습으로 무대에 서는 게 가장 신경 쓰였다. 조금 부족해도 최선을 다하면 그 땀은 누구나 알아주리라 믿었다.”



 -후배들이 폭행사건을 일으켰는데.



 “발레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기와 싸워도 모자랄 판에 옆 사람에 신경 쓰는 풍토가 안타깝다. 발레 기술만 가르쳤지 총체적인 교육이 부족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테크닉·교양·인성 등을 함께 가르치는, 발레 학교가 더욱 절실한 이유다.”



 -‘왕자 호동’이 해외로 진출한다.



 “2년 전 초연에 비해 많이 업그레이드 됐다는 평이다. 10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공연한다. 나 역시 해외에서 여러 작품을 해왔지만, 이 정도 완성도면 세계 수준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10월에 또 불러주신다면 기쁘게 임하겠다.”



글=최민우 기자

사진=프리랜서 이영진



◆김용걸=아들 넷 중 한 명은 발레를 시키고 싶다는 어머니의 뜻을 거역 못해 중학교 때 발레에 입문했다. 1998년 김지영과 짝을 이뤄 파리국제콩쿠르 듀엣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2000년 세계 최고 권위의 프랑스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동양인 최초로 입단했다. 2009년 국내로 돌아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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