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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보이지 않는 주먹’의 유혹







김종윤
내셔널 데스크




한국 관료들에겐 이런 공식이 있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한마디 한다. 대통령 선거든, 국회의원 선거든 관계없다. 우선 ‘선심성 공약’을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다. “나라 곳간이 거덜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곧 ‘후손들에게 빚더미를 넘겨주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표만 노리는 정치인들, 제발 정신차리라”는 근엄한 충고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어디 한 군데 트집잡을 게 없다. 구구절절 옳은 이런 말, 그런데 가슴을 울리지 않는다. 우습게 들리기까지 한다. 이유가 뭘까. 답은 이렇게 나온다.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이야!”



 경제정책의 수장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세종연구원 주최 포럼에서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무상복지 같은 현세대의 ‘공짜 점심’이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되는 게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망국적인 포퓰리즘을 막아야 한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게다. 하지만 ‘포퓰리즘과의 전쟁’을 선언한 검투사의 칼 다루는 솜씨가 말과 다르니 딱하다. 윤증현 경제팀에는 물가가 발등의 불이다. 요즘 물가를 잡기 위한 요상한 수법이 등장했다. 기름값을 보자. 국내 기름값이 비싼 건 가격의 절반 넘게 차지하는 세금 때문이지, 정유사가 폭리를 취해서가 아니다. 이건 정부가 나서 정밀분석까지 하고 낸 결론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보이지 않는 주먹’을 휘둘러 정유사를 계속 윽박질렀다. “서민을 위한 나라는 있다”고 외치면서 말이다. 이건 포퓰리즘이 아닌가.  



 정유사가 기름값을 내린 시기도 묘하다. SK에너지가 이달 초 기름값을 L당 100원 내린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하자 다른 정유사는 당황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요즘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주식 선물투자를 해 1000억원대의 손해를 봤다는 말이 정부로부터 흘러나왔다. 국세청이 지난해 말부터 계열사 세무조사를 하다 이런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폭리는 없다며 버티던 회사가 손해를 감수하며 기름값을 내린 이후 불거진 그룹 회장의 대규모 선물투자 손실설. 둘 간에 아무런 연관이 없을까. 상상력을 자극한다.



 윤 장관은 “정부 역할은 시장이 시장다워질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거나, 시장이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일을 맡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에 귀가 쫑긋해지는 건 뒷부분 때문이다. 앞으로 정부 뜻대로 경제가 안 돌아가면 언제든지 보이지 않는 주먹을 쓰겠다는 의지로 비춰진다.



이명박 정부의 임기는 채 2년이 남지 않았다. 경제 여건은 나빠지고 있다. 노심초사하는 경제팀에 뜻대로 안 돌아가는 시장은 거추장스러울 것이다. 일방통행식 질주에 대한 유혹이 커지는 이유다. 이런 유혹에 넘어가는 관료는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보다 더 위험하다. 시장을 무시한 폭주는 당장은 달지만 나중에 쓰디쓴 고통으로 돌아온다. 이런 부담은 윤 장관이 그렇게 걱정했던 ‘후손’들이 짊어져야 한다는 걸 우린 알고 있다.



김종윤 내셔널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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