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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이 시대의 ‘시일야방성대곡’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테레즈 데케루』를 쓴 프랑수아 모리아크와 『이방인』을 쓴 알베르 카뮈는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50년대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전쟁 말기의 4년 동안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은 프랑스인들에게 레지스탕스 출신의 이 두 작가는 드골의 콧대보다 더 높은 문화적 자긍심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나치 부역에 대한 청산작업에는 두 사람의 생각이 크게 달랐다.



 진실과 정의에 충실하고자 했던 카뮈는 부역자 처벌을 강력히 주장한 반면, 모리아크는 부역자들에 대한 관용을 호소했다. 나약한 인간들이 한계상황 속에서 저지르는 부도덕한 과오는 인간성의 ‘불가피한’ 부조리(不條理)이기에 어느 정도까지는 관용해야 한다는 것이 모리아크의 따뜻한 인간애(人間愛)요 깊은 실존이해였지만, 들려온 것은 ‘성 프란체스코의 설교 같은 헛소리’라는 야유뿐이었다. 



 여론의 힘을 업고 일사천리로 진행된 청산작업의 결과는 사형 약 1만 명, 징역·공민권박탈 등 10여만 명으로 발표됐으나, 인민재판과 즉결처분까지 합치면 수만 명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음해와 무고(誣告)가 잇따르고 위증이 판을 치면서 억울한 희생자들이 속출하자, 가혹하고 불공정한 처벌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갔다. 심지어 생계를 위해 독일군과 성관계를 가졌던 매춘여성들은 삭발을 당한 채 벌건 대낮에 시내 곳곳을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예술의 향기 그윽한 문화의 도시 파리에서.



 부조리와 저항의 작가 카뮈는 나치 부역자들에게서 ‘불의(不義)의 부조리’를 보았지만, 불의와 응징 사이에 놓인 또 다른 부조리, 감성적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집단의식(集團意識)의 부조리’는 보지 못했다. 그것을 꿰뚫어본 것은 모리아크였다. 공정해야 할 부역 청산작업이 ‘인간성의 내면에 대한 성찰’을 결여한 채 집단적 카타르시스의 광기(狂氣)로 흘러가자 비로소 반성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는데, 그 선두에는 뜻밖에도 청산론의 주창자인 카뮈가 있었다. 



 “모리아크가 옳았다!” 천재작가로 불리던 로베르 브라지약이 처형당한 직후 카뮈가 토해낸 이 탄식은 비이성적 집단의식의 폭력성에 저항하는 양심선언이었다. 나치 부역 청산 과정에서 카뮈는 두 번의 부조리 상황에 저항한 셈이다. 처음에는 ‘내가 옳다’는 정의의 양심으로, 나중에는 ‘내가 틀렸다’는 고뇌 어린 관용으로.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의 천둥 같은 울림으로 겨레의 혼을 일깨운 위암(韋庵) 장지연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이 말년의 친일행적을 이유로 취소됐다. 위암만이 아니다. 조선학도병 격려 포스터에 삽화 몇 점 그려준 운보 김기창, 만주국 창설 기념음악회의 지휘대에 섰던 안익태, 친일잡지에 ‘이토(異土)’라는 시 한 편을 쓴 정지용, 그리고 춘원·청마·미당·난파···. 지독히도 불행했던 시대의 슬픈 지식인들이 친일파의 낙인이 찍힌 채 지하에 누워 있다. 그 혹독한 시절을 살아보지 못한, 정의로운 후손들의 손에. 



 그러나 일경(日警)의 앞잡이도 아니었고 일제의 고위 관직을 누린 적도 없는 저들은 을사오적(乙巳五賊)이나 경술국적(庚戌國賊)처럼 적극적으로 민족을 능멸한 매국노는 아니었다. 이름을 빼앗기고 성마저 갈아야 했던 고난의 시절, 늘 엄숙한 민족정기(民族精氣)만을 뿜어낼 수는 없는 고단한 일상이, 절박한 삶의 현실이 저들을 옥죄지 않았을까? 빼앗긴 땅의 숱한 민초(民草)들처럼 저들도 선악·미추(美醜)가 함께 뒤엉켜 꿈틀대는 갈등과 모순투성이의 실존을 끌어안고 남몰래 목 놓아 울지 않았을까?



 기미가요 울려퍼지는 나치의 시상대에 일장기(日章旗) 선명한 가슴으로 올랐던 올림픽 마라톤의 챔피언을 친일파라 비난할 수 없듯이, 큰 줄기 하나 어렵사리 지켜내기 위해 곁가지 몇몇을 개먹이 던지듯 일제에 던져줄 수밖에 없었던 선인(先人)들의 비통한 영혼에 나는 차마 단죄(斷罪)의 칼을 꽂지 못하겠다. 정지용의 고백처럼 ‘친일도 배일(排日)도 못한’ 식민지 백성의 고달팠던 삶을 전 인격, 전 생애로 바라보지 않고 단편적인 행적 몇 개로 토막토막 끊어내 침을 뱉을 만큼 고결한 정의감이, 그토록 당당한 도덕적 자신감이 내게는 없다. 그 모진 세월을 단 하루도 살아낸 적 없는 나에게는.



 위암의 서훈 취소 소식에 또 다른 ‘시일야방성대곡’의 슬픔이 솟구친다. 모리아크의 따뜻한 인간애, 카뮈의 고뇌 어린 관용이 아쉬운 이 정의로운 시대의 슬픔이.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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