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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13) 골프장 그린, 갈색이 아름다운 이유







원더러스 골프장의 브라운(그린)과 워터해저드.



아랍에미리트 샤르자의 ‘원더러스(방랑자)’라는 이름의 골프장에 다녀온 적이 있다. 잔디는 없고 모래로만 된 사막 코스였다. 이런 샌드 코스(sand course)에선 그린을 브라운(brown)이라고 한다. 브라운은 갈색 모래와 석유를 섞은 흙으로 적당히 딱딱하고 적당히 부드러워 공이 잘 구르면서도 많이 튀지 않아 그린의 역할을 했다. 브라운은 발자국과 공 자국이 남아 홀 아웃 후 다음 사람을 위해 평탄 작업을 해줘야 하는데,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린 키퍼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봄이 왔다. 초록색으로 변하는 필드를 보면서 가슴이 설렐 분들이 많을 것이다. 새로 깐 카펫 같은 페어웨이와 비단결처럼 고운 그린을 가진 초록색 성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을 동경하는 분도 많을 것 같다. 미안하지만 삐딱한 말을 해야겠다. 골프장이 순수한 초록색이 될수록 우리는 골프의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자연의 잔디는 초록색 페인트를 부어 놓은 것처럼 푸르지는 않다.



노련한 그린 키퍼는 그린이 매우 아름다운 초록색이라면 너무 많은 물을 준 것이라고 여긴다. 그런 잔디는 건강하지도 않다. 호주 로열 멜버른 클럽의 전설적 그린 키퍼 클로드 코록퍼드는 “잔디는 사람과 같다. 너무 많이 먹이고 너무 많은 물을 주면 뚱뚱하고 게을러지며 병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악조건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해야 생명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알리스터 매캔지나 도널드 로스 등 골프 코스의 황금기를 장식한 천재 코스 디자이너들은 그린을 기울어지게 만들었다. 비가 많이 왔을 때 그린에서 물이 자연히 흘러나가게, 즉 그린이 너무 많은 물을 먹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 등 자연이 만든 스코틀랜드의 명코스는 예쁜 초록색이 아니다. 비가 많이 온 다음이 아니면 매우 황량하고 그린을 초록색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할 정도다. 색깔로만 보면 오거스타의 그린보다는 사막 골프장의 브라운에 더 가깝다.



대회 때는 초록색에서 더 멀어진다. 2007년 브리티시 오픈을 카누스티 골프장에서 열었는데 당시 만난 이 클럽의 캡틴 앨릭스 브라운은 “조직위가 우리의 그린을 말려 죽이려 하고 있다”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물을 많이 먹은 초록색 그린은 부드럽다. 공이 떨어지고 나서 그대로 멈춰 선다. 선수들에겐 너무 쉽다. 최고수들은 이런 그린에서 하는 골프를 표적 맞히기인 다트와 비교하곤 한다. 골프는 공중에서도 하지만 땅에서도 하는 것이다. 또 날씨에 따라 변하는 다양한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골프인데 그린 코스는 모든 계절과 날씨에 항상 똑같은 샷을 치게 한다. 예쁜 초록색 매니큐어를 칠한 초록색 그린은 골퍼를 자연과 멀어지게 하고 창의성을 없애며 골프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브리티시 오픈의 중계를 보면 필드는 갈색에 가깝고 특히 그린은 브라운이다. 안목 있는 골퍼는 눈치 챘겠지만 US오픈의 그린도 브리티시 오픈처럼 갈색이다. US오픈을 여는 미국골프협회(USGA)는 갈색이 아름답다(brown is beautiful)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기도 했다.



초록색의 예쁜 그린을 만들려면 많은 물과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병에도 잘 걸려 자주 교체해 줘야 한다. 건강한 갈색 그린이라면 관리도 쉬워지고 그린 키퍼의 스트레스도 다소 줄어들 것이다.



그린뿐 아니라 페어웨이도 초록일 필요는 없다. 유틸리티 클럽을 처음 만든 톰 크로는 “물컹물컹한 초록색 코스가 아니라 딱딱한 코스에서 샷을 해야 다운블로로 치는 스윙의 원리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했다. 런이 많은 딱딱한 코스에서는 장타자들이 힘자랑을 하기 어렵고, 시니어 골퍼들은 거리를 낼 수 있어 골프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위대한 골프는 그랑 크뤼 와인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최고급 와인을 만드는 포도나무는 다른 작물이 자라기 어려운 자갈밭에서 뜨거운 태양과 가뭄, 혹독한 일교차를 견뎌야 한다. 그렇게 자란 포도나무 뿌리는 물을 찾아 단단한 바위를 뚫고 지하 30m까지 내려간다. 그러면서 바위 속의 미네랄과 양분을 포도송이에 전달한다. 최경주나 양용은·박세리·신지애 등 한국의 위대한 골퍼들도 그렇지 않은가.



성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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