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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인터넷에 나를 알렸더니, 세계 온라인 인맥이 취직 돕더라”

‘한국은 좁다’고 여긴 것일까. 외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공단을 통해 해외에서 취업한 이들은 2003년 193명에서 지난해 2771명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꿈·전문성·영어, 세 가지를 갖췄다 … 해외로 간 4인의 취업 성공기

우만선(53) 산업인력공단 취업지원팀장은 “먹고살기 위해 1960년대 독일로 떠났던 광부·간호사와는 다르다”며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더 큰 꿈을 좇기 위해 해외로 떠나는 ‘글로벌 프런티어(Global Frontier)’ 세대”라고 말했다.



진출 국가도 곳곳으로 확산하고 있다. 미국·일본·캐나다 등 선진국 위주에서 중국 등 신흥국과 중동 국가로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다. 직종도 정보기술(IT)이나 기계·금속 분야의 기술직 위주에서 사무·회계직이나 호텔·항공사 등 서비스 직종으로 다양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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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도 좋다. 중국 베이징 르네상스호텔의 메인 린(30) 영업팀장은 “한국인 직원은 책임감 있고 성실하다”고 말했다. 과연 해외로 뛰어나간 이들은 어떤 꿈을 안고 있으며, 또 어떤 방법으로 취업에 성공했을까. 미국·호주·홍콩·싱가포르에서 일하는 네 명의 한국인 취업자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베이징=김기환 기자



“홍콩도 성에 차지 않는다, 다음은 월스트리트”

‘소시에테 제네랄’ 이무형씨












‘서울에서 홍콩으로, 다음 희망 행선지는 뉴욕 월스트리트’.



 홍콩에 있는 프랑스계 은행 ‘소시에테 제네랄’에서 일하는 이무형(28·사진 가운데) 대리의 포부다. 그의 첫 취업 무대는 서울이었다. 2008년 8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외국계 투자은행인 메릴린치 서울사무소에 들어갔다. 대학 친구인 김재원(28)씨는 “외국계 기업인 데다 급여도 높아 모두들 부러워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작 이씨는 만족하지 못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도 한국인, 일할 때 쓰는 말도 한국어, 외국계 기업답지 않게 빡빡한 분위기…. 내가 이러려고 ‘이코노미스트’나 ‘뉴스위크’ 등 고급 영어로 가득한 잡지를 보며 외국어 공부에 매달렸나 싶었습니다.”



 “더 큰물에서 놀고 싶어” 2009년 5월 회사를 그만뒀다. 무작정 쉴 순 없어 일본계 증권사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러던 중 대학 동기로부터 홍콩의 한 금융사가 사람을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에게 주어진 두 번째 취업 무대였다.



결국 그는 지난해 7월 소시에테 제네랄의 원자재 파생상품 영업 부문 경력 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한국과는 확실히 노는 물이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사무실에서 동료들이 영어·중국어·프랑스어 등 각종 언어로 전화하는 소리를 듣노라면 내가 정말 글로벌 뱅커로 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금의 직장 생활이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각국에서 온 쟁쟁한 인재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그는 “인정사정 봐주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작은 실수도 용납이 안 된다”며 “20쪽짜리 보고서에서 한두 문장이 어색하다는 이유로 장장 30분 동안 훈계를 들은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현재 있는 홍콩은 아시아의 금융 허브. 하지만 이씨는 “성에 차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기왕 외국에서 꿈을 펼치겠다고 마음먹은 만큼 글로벌 금융의 심장부에서 일해보고 싶다”며 “나의 다음 무대는 뉴욕 월스트리트”라고 말했다.



소심한 엔지니어도 블로그로 인맥 쌓을 수 있어

MS본사 보안담당자 오정욱씨












“‘엔지니어로선 꿈 같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미국 시애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의 보안 담당자인 오정욱(37·사진)씨의 말이다. 그가 “꿈 같은 환경”이라고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출퇴근시간이 자유롭다는 것과 직원마다 개인 사무실이 있다는 것.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줄 테니 알아서 일에 몰두하라’는 뜻에서 회사가 마련해준 환경이다. 오씨는 오전 11시쯤 출근해 오후 7시쯤 퇴근한다. 그가 임의로 정한 업무시간이다. 그는 “옆방 직원이 출근했는지 서로 모를 정도”라며 “자기 업무만 제대로 하면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997년 서울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그는 ‘컴퓨터광’이었다. 국내에서 인터넷이 널리 사용되지 않았고, 보안에 대한 개념은 더더욱 생소하던 그 시절에 정보기술(IT) 벤처에 입사했다. 2004년 1월 평소 인터넷을 통해 알고 지내던 미국의 보안 전문가로부터 솔깃한 소식을 들었다. 미국의 한 보안회사가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었다. 오씨는 “한국에선 그저 시키는 일만 했기에 경력을 쌓는다기보다 소모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보다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는 미국 회사에서 엔지니어로서의 꿈을 펼쳐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기술은 자신 있었다. 그래서 영어 공부에 집중했다. 외국인 강사에게 일대일 회화 수업을 받았다. 할리우드 영화도 매일 두세 시간씩 챙겨 봤다. 결국 취업에 성공해 2004년 10월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지난해 8월 우연히 참석한 보안 관련 행사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관리자 눈에 띄어 다시 직장을 옮기게 됐다.



 스스로 “내성적이고 소심한 엔지니어였다”고 소개한 그는 ‘인터넷 인맥’을 강조했다.



 “요즘은 블로그·트위터 등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경로가 많잖아요. ‘소심한 엔지니어’도 인맥을 쌓아 취업하기 쉬워졌다는 겁니다. 해외 취업을 꿈꾼다면 자기가 만든 프로그램, 했던 일을 인터넷에 기록하고 적극적으로 알리세요.”



“포스코서 닦은 유압기술 … 이력서 들고 직접 구직”

호주 ‘베렌드센’ 장원수씨












“이곳에서 재키(Jackie)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호주 브리즈번의 베렌드센(Berendsen)이란 유압기계 회사 공장 관리자로 일하는 장원수(43·사진)씨. 호주인 동료들은 그를 재키라 부른다고 했다. 장씨는 “여기선 한국에서처럼 ‘과장’ ‘차장’ 등 직함이 아니라 이름만 부른다”며 “동료들과 친구처럼 일한다는 게 오히려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포스코 출신의 엔지니어다. 1996년 포스코에 입사해 지난해 5월까지 광양제철소에서 기계 엔지니어로 일했다.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항상 해외 이민을 꿈꿨다.



 호주로 떠나기 1년 전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내 기술과 경력을 살리면 좋겠지만 전혀 상관없는 일자리를 구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며 “하루라도 빨리 떠나 호주에서 직접 부딪힐 생각으로 준비를 서둘렀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브리즈번에 도착한 그는 근처의 닭고기 가공 공장에 취업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허드렛일이었지만, 이 일이라도 하면서 경력에 맞는 일자리를 구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새 일자리 찾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는 “구인 업체에 이력서를 수십 통 냈어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저 앉아서 소식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직접 취업하고 싶은 회사에 찾아가기도 했다.



 원하는 일자리를 구한 것은 올 1월. ‘유압 기술자 협회’를 찾아 이력서를 보낸 그에게 베렌드센에서 연락을 한 것이다. 그는 “오전 8시 출근해 오후 4시30분이면 칼같이 퇴근하고, 1년에 40일을 휴가로 쓸 수 있어 ‘신의 직장’도 부럽지 않다”고 했다.



“카지노에 올인한 10년 그 실력·열정이 통했다”

싱가포르 ‘센토사’ 오민경씨












“카지노에 ‘올 인(all in)’ 했어요.”



 오민경(33·사진)씨는 싱가포르 센토사 카지노에서 딜러 관리자로 일한다. ‘블랙잭’ ‘바카라’ 등 게임을 다루는 딜러들을 테이블에 배치도 하고, 교육도 한다. 때론 직접 딜러로 나서기도 한다. 그는 “강원랜드와 제주도 카지노에서 일한 경력을 인정받아 이곳에서 일하게 됐다”며 “전문성만 갖고 있다면 세계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씨는 2000년 국내에서 딜러로 첫발을 내디뎠다. 대학에선 영어통역학을 전공했지만 ‘카지노 딜러’란 이미지가 주는 신비감과 카리스마에 빠져 발을 들여놨다.



 적성에 맞고,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딜러 사이의 딱딱한 위계질서가 문제였다. 휴게실에 가기 싫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작은 실수를 꼬투리 잡아 혼내는 문화가 있었다”며 “문화가 좀 더 부드럽다고 알려진 외국 카지노에서 실력을 뽐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2006년 2월 필리핀에서 열린 딜러 경진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하면서 해외 취업의 꿈도 커졌다. 한국 대표가 될 실력이라면 해외에서도 활약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긴 것. 영어로 된 해외 취업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 잡듯 뒤졌고 해외 카지노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만나 정보도 구했다. 그러다 싱가포르에 새 카지노가 생겨 딜러를 뽑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에 온 면접관에게 “경력은 많지 않지만 한국 대표로 출전할 정도의 실력과 해외 근무에 대한 열정이 있다”고 자기 자신을 소개했다.



 2009년 11월 센토사 카지노에 입사한 그는 “경력보단 실력으로 평가받는 문화가 좋다”고 말한다. 해외 취업을 앞두고 외국어 공부에만 매달리는 후배들에겐 “외국어 실력은 비슷비슷하다. 전공을 배우든, 경력을 쌓든 외국어 말고도 자신만의 확실한 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100살까지 사는 데 … 젊을 땐 해외서 일하고 싶어

산업인력공단 중국 연수 현장












지난 20일 오전 10시 중국 베이징의 한 대학교 강의실. 한국 학생들을 상대로 중국어 수업이 한창이었다. 강사인 이옥매(39)씨가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20여 명이 따라 읽었다.



 “여러분들, 회의장에서도 이렇게 초등학생처럼 말할 건가요? 자, 다같이 ‘칭 루창 주쭤!(請 入場 就坐)’(입장해 주십시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해 중국 취업을 희망하는 연수생을 교육하고 있는 이곳에선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런 식의 강의가 이뤄진다. 이씨는 “중국 취업을 위해 이곳까지 건너와 교육을 받는 이들이기 때문에 마음가짐이 다르다”며 “수업을 마치고도 수시로 찾아와 질문하는 연수생이 많다”고 말했다. 연수생 교육 담당 업체인 ㈜시에시에의 한일환(47) 대표는 “오후 10시까지 자습실에 남아 공부를 하는 학생이 많다”며 “해가 갈수록 해외 취업 열기가 뜨거워지는 걸 실감한다”고 말했다. 자습실에 남아 공부를 하던 연수생 이상희(25·여)씨는 “그냥 쉽게 취업하려면 한국에서 준비했을 것”이라며 “여기까지 온 만큼 해외에서 꿈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최안나(26)씨는 이곳을 거쳐 현지 취업에 성공한 경우다. 국내 대기업 비서실에서 일하다 지난해 4월 산업인력공단 베이징 연수원에 들어왔다. ‘100살까지 사는 인생, 젊을 때 한번쯤 외국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6개월 동안 연수를 받은 그는 지난해 11월 베이징 르네상스 호텔에 취업했다. 호텔에서는 한국 고객을 끌어오는 마케팅 등을 맡고 있다. 최씨는 “‘어떤 일을 하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어디서 일하느냐’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에 비해 보수는 적지만 ‘미래에 대한 투자’란 생각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9년부터 ‘글로벌 청년 리더 양성 계획’을 세워 해외 취업을 지원하고 있다. 해외 취업을 위해 필요한 어학·자격증 교육을 하고 글로벌 기업과 연계한 실무 연수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골자다. 이민재(41) 고용노동부 청년고용기획과장은 “청년 해외 취업 활성화를 올해 주요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며 “베트남·인도네시아 등뿐 아니라 유럽 주요 국가로까지 취업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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