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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73) ‘양날의 칼’ 향판제도





판사들 지방 내려오면 뜰 날만 기다려 … 아예 ‘지역법관제’ 만들었죠





‘지역 법관’인 향판(鄕判) 제도를 놓고 말들이 많습니다. 친형과 학교 동문을 법정관리 기업의 감사로 선임한 전 광주지법 수석 부장판사의 부적절한 처신이 알려지면서부터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충청지역에서 오래 근무한 대전지법의 모 부장판사도 알선 수재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대법원도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한 지역에서 계속 일해 현지 사정에 밝지만 한편으론 토착세력과 유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향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유지호 기자



서울 - 지방 교류제 부작용이 탄생 배경



향판은 서울과 지방을 순환 근무하지 않고 같은 지역에서만 계속 일하는 판사를 말한다. 수도권에서만 주로 근무하는 판사를 지칭하는 경판(京判)에 대응하는 말이다. 향판은 경향(京鄕) 교류제로 인사이동이 잦은 데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수십 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일러스트=강일구]






법관 인사 철이 되면 지역에선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골치 아픈 사건일수록 선고를 미루다 인사가 나면 후임 판사는 재판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확인해야 한다. 사건 당사자로선 속 터질 일이다. 이는 법관들이 서울 근무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탓에 지역에서 장기간 근무할 법관이 필요했다. 이들에겐 지역을 잘 알면서 재판을 진행한다는 명분도 있었다. 또 같은 지역에서 근무하게 되면 인사에 따라 이사하는 일이 없어진다. 자녀교육 등 생활이 안정되고 업무효율이 높아진다는 이점도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런 현실을 인정해 2004년 취임하면서 ‘지역법관제’라는 이름으로 이를 제도화했다. 당시 대법원은 “전보 인사를 줄여 법관의 생활 안정을 기하고 지역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재판을 하기 위해 지역법관을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체의 13% … ‘한번 하면 10년’ 암묵적 규칙











지역법관제도는 현재 부산·대구·광주·대전고법 관할 4개 지역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도입 취지에 따라 수도권은 향판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선호 지역 순서대로 1·2·3·4지망을 적어 내면 법원행정처의 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1지망 지역이 안 되면 서울 근무’ 식의 지원은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전혀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지역 법관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신청 시기는 정해져 있지 않다. 임관 때 지역 법관을 신청할 수도 있고 10년 차에 할 수도 있다. 일단 지역 법관이 되면 그 지역에서 10년은 근무해야 하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다. 물론 10년 이후에도 연장할 수 있다.



이 같은 인사 원칙은 오랜 기간 형성된 관행과 방침일 뿐 법령이나 규정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등에 따르면 전체 판사 2561명 가운데 향판(고법 부장판사 제외)은 모두 333명으로 13%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법관의 사생활 보호 등의 이유를 들어 향판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토착세력과 유착되기 쉬운 함정









친형과 동창 등을 법정관리기업의 감사 등으로 선임해 물의를 일으킨 선재성 전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현 광주고법 부장판사)가 최근까지 근무했던 광주지법 모습. [프리랜서 오종찬]



향판이 지역 사회와 학연·혈연·지연으로 엮이기 시작하면 재판의 공정성·신뢰성에 금이 간다. 2009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부산고법의 한 부장판사가 대검 중수부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부산·경남에서만 20년 이상 근무했던 그는 박 전 회장의 기내 난동 사건 당시 1심 담당 판사를 다른 판사로 조정해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샀다. 그는 “공직자로서 처신에 신중하지 못했다”며 법복을 벗었다.



전주지법 군산지원에 근무하던 판사 3명은 2006년 지역 유지로부터 골프 접대를 받는 등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다 결국 사직했다. 선재성 전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 역시 법관 생활 21년 중 19년을 광주·전남에서만 보냈다. 그는 지역에선 촉망받는 향판이었으나 부적절한 법정관리 기업의 관리인·감사 선임 문제로 구설에 올랐다. 여성 보험설계사로부터 현금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된 대전지법 부장판사도 고향인 충북에서 7년 동안 근무하면서 해당 설계사를 알게 됐다.



향판의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6년엔 국회에서도 논란이 됐다. 당시 김동철(열린우리당) 의원은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대부분의 지방법원이 형사합의부·영장전담판사 등 주요 재판부에 지역 법관을 배치하고 있어 토착세력과의 유착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력 있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보석사건 인용률의 경우 서울에 비해 지역 법관을 운영하는 지역의 인용률이 5∼6%포인트 높다”고 주장했다.



지역 사정을 잘 안다는 순기능도



서울 근무를 꿈꾸며 길어야 1~2년 지방에 머무르는 ‘뜨내기 법관’은 해당 지역에 대한 애착을 가지기 어렵다. 그러나 지역 사정에 밝은 향판은 지역 주민의 고충·애로를 더 잘 이해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전지역의 한 판사는 “충청도 사람들은 ‘그러지유~’라는 대답이 ‘아니다’의 완곡한 표현일 때가 많다. 다른 지역 출신으로 잠깐 근무하는 법관들은 그 차이를 알지 못해 조정 과정 등에서 어려움을 종종 겪는다”고 설명했다.



지역 주민의 사정을 잘 이해한다는 평가도 있다. 익명을 원한 고법 부장판사는 “바닷가 지역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어부들이 저인망 조업을 했을 때 향판들이 서울에서 온 판사들보다 더 너그러운 처벌을 하는 것을 종종 봤다”며 “구체적인 사정을 세세히 헤아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선 선거로 지역법관 뽑아 … 법관윤리위가 견제



향판은 외국에도 있다. 미국은 대부분의 판사가 지역 법관이다.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문기석(미국법) 교수는 “미국에선 주(州)법원의 판사를 선거로 뽑는다”며 “연방법원 판사도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종신직”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10∼15년 정도 변호사로 활동하다 법관이 되는데, 50대에 초임판사가 되기도 한다. 일본도 지역 법관제가 활용되고 있다. 독일·프랑스도 판사의 의사와 다르게 인사 이동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재판의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향판이 문제가 된 건 개인보다는 시스템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엘리트 판사들이 요직을 차지하는 경판 독식 구조의 인사 시스템이 문제라는 것이다. 지역 법관 제도가 도입될 때는 인사 등에서 지역 법관을 배려한다는 약속이 있었지만 실제론 이런 혜택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따라서 기존 법원 조직에서 클 수 없다고 생각하다 보면 지역 법관들이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부적절한 판결이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미국에선 ‘법관윤리위원회’가 선거로 뽑히는 지역 법관을 감시·견제한다”며 “우리나라도 향판의 윤리 문제 등을 다룰 수 있는 위원회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990년 이후 향판 출신 대법관은 3명











2004년 법복을 벗은 조무제 전 대법관은 대표적인 향판 출신이다. 임관 이후 법관생활 대부분을 부산·대구 등 영남지역에서 보냈다. 법조계 내 청빈 판사로 통했던 그의 별명은 가난한 선비라는 뜻의 ‘딸깍발이 판사’다. 대법관 취임 때 부산시 동래구에 있는 25평짜리 아파트(시가 6000여만원) 한 채와 예금 1075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1993년 사법부 재산공개 때엔 대상자 103명 중 재산 순위가 꼴찌였다. 그는 원칙을 중시했다. 창원지법원장으로 근무했던 1990년대 중반엔 “관용차는 관내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며 부산의 집에서 창원까지 버스로 출퇴근했다. 그는 1998년 부모를 돌봐온 딸과 다른 딸 사이의 상속 재산 분쟁 사건에서 “부모를 돌본 딸에게 상속 재산이 더 많이 돌아가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34년간 몸담았던 법원을 떠난 뒤엔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았다. 모교인 부산의 동아대로 내려가 법대 석좌교수로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친 것이다. 대법관 출신이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강단에 선 것은 그가 최초였다.



1990년 이후 대법관을 지낸 향판은 안용득·송진훈 전 대법관까지 모두 3명이다. 홍동기 대법원 공보관은 “과거엔 지역 법원에 근무하다 대법관이 된 경우도 많아 향판과 경판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엔 김종대 재판관이 유일한 향판 출신이다. 1979년 부산지법 판사로 임관한 이후 부산·경남 지역에서 법관 생활을 했던 그는 암으로 죽음을 앞둔 피고인의 병실을 찾아가 무죄를 선고했던 ‘출장 재판’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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