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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경영] 제 2화 금융은 사람 장사다 ⑨ 금융인의 첫걸음, 농업은행

내 금융인생의 출발점은 농업은행이다. 처음부터 금융인으로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은행에 들어간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잘 하는 일을 하게 돼 평생 몸담았으니, 행복한 일이다.



고시 아니면 은행원이 잘나가던 시절
입사 동기 31명이 SKY 대학 출신
정영의 전 장관, 이상철 전 국민은행장과 ‘3인방’으로 불려

 농업은행에 들어간 1960년만 해도 사회적 혼란기인 데다 산업화가 안 돼 대학졸업자가 갈 만한 일자리가 드물었다. 대학을 나오면 고등고시를 보거나, 은행에 가거나, 아니면 한국전력이나 석탄공사 같은 국영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특히 은행은 대우가 좋고 안정적이어서 인기가 높은 취직자리였다. 당시 삼성물산·삼호무역 등 민간기업은 시험을 통한 대졸사원 모집을 막 시작하는 정도였다.



 고등학교 다닐 때 존경하는 선생님이 법대에 진학해서 고등고시를 준비하라고 지도해 주셨다. 나는 부산대 법대에 진학해 사법고시에 도전했다. 하지만 졸업한 뒤엔 미련을 버렸다. 친구들이 “너는 한번 더 도전하면 될 텐데, 왜 안 하느냐”고 물으면 “내가 네 밑에서 배석판사나 하란 말이냐”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대신 은행으로 방향을 틀었다.



 당시엔 은행이 몇 개 되지 않았지만 통상 학벌이 좋은 순서대로 한국은행, 산업은행, 시중은행을 택했다.



나는 그런 정보에 어두워 은행에도 순위가 있다는 걸 몰랐다. 당시 나라 살림은 원조에 매달려 있었으며 국민 중 72%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제문제를 해결하려면 농업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농업은행과 상업은행 시험을 봤다.



 농업은행은 일제시대부터 있었던 ‘금융조합’이 뿌리였다. 금융조합은 전국 단위의 최대 조직이었다. 1956년 금융조합을 농업은행과 농업협동조합으로 분리하면서 농업은행은 일반은행(뒤에 특수은행으로 전환)으로 출발했다. 그때 초대 농업은행장을 지내신 분이 훗날 내가 한국개발금융 사장으로 모셨던 김진형 사장이었다.



 자유당 말기인 1959년, 농업은행은 일반은행에서 특수은행으로 바뀌었다. 경제의 중심인 농업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정부는 특수은행인 농업은행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이승만 정권에서 부통령을 지낸 이기붕씨가 당시 엄청난 권력자였는데 자신과 친분이 있던 박숙희 한국은행 부총재를 농업은행 총재로 앉히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운 좋게도 상업은행에 합격한 뒤, 곧이어 농업은행에도 붙었다. 어디로 갈지,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 농업은행은 특수은행으로서 좋은 인재를 확보하겠다며 입사자에게 혜택을 많이 줬다. 산업은행이나 한국은행처럼 특수은행이고, 대우도 좋다는 말에 농업은행 입행을 택했다.



  나는 농업은행 4기로 들어갔다. 입행하고 보니 31명의 대졸 신입동기 중 18명이 서울대 출신이었고 나머지도 대부분 요즘 말로 하면 SKY대 출신이었다. 그만큼 쟁쟁한 학벌과 실력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과 함께한 한 달간의 짧은 연수기간을 마치고 전국 지점으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이후에도 평생지기로 지내고 있다. 농4회(농업은행 4기 모임)라는 모임을 만들어 지금도 자주 만나고 있다.



대부분 금융계에 종사하면서 이후 발족한 국민은행·주택은행·신탁은행 등으로 진출해 크게 활동했고 관계나 교육계로 진로를 바꾼 이들도 있다. 농4회 멤버로는 정영의, 이상철, 손경수, 조대형, 구선회, 김주익, 유병육씨 등이 있다.



이 중 신입사원 시절부터 가까웠던 정영의씨는 동기 중 가장 먼저 그만두고 고시를 해서 관료가 됐다. 훗날 정영의씨가 재무장관을 할 때 마침 나는 하나은행장을, 이상철씨는 국민은행장을 했었다. 언론에서 우리 셋을 묶어 ‘3인방’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농업은행 출신으로 은행장을 지낸 사람들의 모임인 ‘동락회’도 있다. 농업은행 시절엔 서로 알고 지내지 못했지만, 나중에 은행장을 하면서 친분을 나눴다. 정영의 장관, 평화은행장을 했던 박종대씨, 기업은행장을 지낸 김승경씨, 나보다 1년 먼저 농업은행에 입행했던 신한은행의 라응찬씨, 농협회장을 지낸 원철희씨도 동락회 멤버다. 학계에서는 고려대 김동기 교수도 참여했다. 농업은행을 통한 인연은 금융계에서 활동할 때 서로에게 많은 도움을 준 소중한 인연이다.



윤병철 전 우리금융 회장

정리=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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