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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전기 펴낸 김원석 평화방송 전무






선종 2주기가 지난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는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김 추기경의 일생을 다룬 각종 도서가 출간되고, 영화도 나오고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김수환 전기 『무엇이 될까보다 어떻게 살까를 꿈꿔라』(명진출판)를 출간한 평화방송 김원석 전무이사를 만나 김 추기경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김수환추기경의 전기를 집필한 계기는.

 1980년부터 뵙기 시작했으니 개인적으로 추기경과의 인연도 특별하다. 가톨릭계 방송국(※평화방송은 가톨릭계 방송임)에 몸 담고 있어 누구보다 그분의 자취를 가까이서 지켜본 것도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추기경의 인생은 청소년이 참고할 부분이 많다. 보통 사람이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지도자나 위인의 성장과정과 추기경의 삶은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인간 김수환을 젊은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어떤 점이 보통 위인들과 달랐다고 보는가.

 지도자나 위인이라고 하면, 대개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하고 머리가 뛰어난 식으로 특별한 인물을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추기경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약했던 사람이다. 그는 8남매의 막내였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다. 공부를 썩 잘하는 편도 아니었다. 성 유스피노 신학교에서는 유급까지 해 5학년을 다시 한 번 다니기도 했다. 또 추기경은 애초 성직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의 꿈은 상인이었다. 고생하는 홀어머니에게 효도하기 위해 물질적인 욕구도 있었다. 이런 인간적인 면을 청소년에게 알려주며 ‘추기경도 어렸을 땐 부족했지만 그처럼 성공했으니, 나도 할 수 있겠다’라고 자신감을 가지길 바랐다.

-집필에 필요한 자료 수집은 어떻게 했나.

 이미 2009년에 어린이용 김수환 추기경 전기인 『혜화동 할아버지』를 집필한 전력이 있다. 그 때도 1년간 자료조사를 마친 뒤 출간했다. 이번엔 그 때 참고했던 자료와 함께 평화신문·평화방송의 인터뷰내용을 주로 활용했다. 김 추기경의 선종 전에 평화신문 기자가 인터뷰 형식으로 신문지면에 회고담을 연재한 자료도 유용하게 참고했다.
 
-전기를 집필할 때 어려웠던 점은.

 청소년에게 추기경의 삶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게 문제였다. 추기경의 삶을 크게 용기, 균형, 섬김으로 나눠 테마로 잡았다. 용기와 균형은 쉽게 설명할 수 있었고 사례도 적절한 것이 많았다. 격동기의 세월을 거친 추기경이 6·25 전쟁과 유신정부, 민주항쟁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한 정보도 많았고 자료수집도 어렵지 않았다. 어려운 부분은 ‘섬김’이었다. 하느님을 섬기듯이 신도와 국민을 섬긴 추기경의 정신을 설명하기가 난감했다. 종교적인 단어지만 지도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신인데 쉽고 정확하게 묘사하기가 어려웠다.
 
-김수환 추기경과 인상 깊었던 일이 있다면.

 2006년 2월 22일의 일이다. 당시 대주교였던 정진석 추기경이 추기경으로 서임된 날이다. 그날 명동 주교관 인근에 축하 열기가 대단했다. 취재진도 장사진을 이뤘다. 우리 방송진도 현장에 나가 있어 뒤쪽에서 혼자 살펴보고 있었는데, 주교관 뒤편 아무도 없는곳에 차가 한 대 섰다. 김 추기경의 차였다. 평소 같으면 여러 신부님과 수녀님이 모시고 함께 이동할텐데 차에서 내려 내 쪽으로 걸어오는 동안 아무도 함께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쓸쓸해 보여 급히 달려갔는데 내 생각과 달리 추기경은 아주 유쾌했다. “어, 굉장하군. 지금은 사람들이 나를 몰라보겠지?”라며 농담도 던졌다. 그 모습에 추기경이 형식적인 의례에 민감할 거라 지레짐작한 내 좁은 생각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분은 남들 눈이 있든 없든 항상 소탈하고 유쾌한 분이셨다. 재미있는 일은, 우리뿐이라고 여겼던 그때 그 현장을 촬영한 누군가가 있었다는 점이다. 추기경의 선종소식이 언론에 보도되며 그 사진이 여러 번 등장하는 걸 봤다. 그 분은 혼자라고 느꼈을 때조차 혼자가 아니었던 셈이다.
 
-추기경의 삶에서 청소년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점을 하나 꼽아달라.

 요즘 멘토라는 단어가 유행인 것 같다. 추기경에게도 생의 전환기마다 중요한 조언을 하는 멘토가 늘 존재했다. 사제가 되겠다는 마음을 못 잡고 방황할 때 공베르 신부가 도와줬고, 게페르트 신부는 김 추기경이 신부의 길에 확신을 갖도록 인도했다. 그런데 이 멘토들은 추기경이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길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방황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스스로 다가와 멘토가 돼 준 것이다. 청소년들이 이 점을 깨닫길 바란다. 멘토란 내가 원한다고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성실하게, 열심히 주어진 길을 가려 노력한다면 저절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김수환 추기경은=대구 출생. 1922년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 뜻에 따라 신학교에 입학한 뒤 사제의 길을 확신하지 못해 방황하기도 했다.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소명을 깨닫고 신부의 길을 걸었다. 독일 유학을 통해 이론을 겸비한 실천가로 거듭난 뒤, 특유의 열정과 추진력으로 가톨릭 언론사를 운영하고 교구 활동을 이끌었다. 47세에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에 임명됐다. 이후 40년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앞장 서서 보호했다. 2009년 선종했다.

[사진설명] 김원석 전무이사는 “추기경의 삶에서 나타난 용기·섬김·균형의 정신이 청소년에게 귀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ichthys@joongang.co.kr/사진=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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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