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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껏 음악하니 대중이 멀어졌어요 안되겠다 싶어 다시 돌아왔지요





데뷔 20주년 기념 박스앨범 낸 윤상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싱어 송 라이터 윤상. “예전엔 노래 부르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20년쯤 지나니 라이브의 매력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대중가요엔 유통기한이 있다. 만인이 따라 부르던 노래도 몇 년이면 시들해진다. 드물긴 해도 수십 년간 사랑 받는 곡도 있긴 하다. 대중가요의 ‘클래식’이라 할 만한 대가들의 노래다. 싱어 송 라이터 윤상(43)은 그런 명곡을 빚어온 뮤지션이다. 그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들을 만한 음악을 만들고자 애썼다”고 말한다. 올해로 데뷔 20년째. 사람들은 여전히 윤상을 듣는다.



 그가 최근 20주년 기념 박스 앨범을 냈다. 1991년 데뷔 이후 발매한 정규 앨범 6장과 비정규 앨범 2장이 담겼다. 발매 당시 사운드가 꿈틀대는 오리지널 CD에다 리마스터링(Remastering·음향 재조정) CD까지 추가됐다. 비틀즈 앨범을 리마스터링 했던 미국 유명 엔지니어 테드 젠슨이 참여했다. 모두 CD 19장이 담겼는데, 3000세트 한정판으로 판매된다.



 “시대별로 부응하는 사운드가 따로 있어요. 리마스터링 CD가 현대적 사운드라면, 오리지널 CD는 발매 당시의 소리가 품었던 향수를 떠올리게 하죠. 비교해서 들으면 좋을 거에요.”



 박스 앨범에 수록된 노래를 추려보니 모두 91곡이다. 리마스터링에다 보너스 트랙까지 합치면 200곡에 육박한다. 뮤지션 윤상이 20년간 걸어온 흔적이다. 하지만 그 20년이 무난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출발은 화려했다. 데뷔 앨범이 100만 장 이상 팔렸다. 그 스스로 “아이돌 스타로 데뷔했다”고 말할 정도다. 문득 그 시절이 그립진 않을까.



 “아이고, 그때로 돌아가라면 차라리 다른 일을 할 거에요. 저는 연주자·작곡자·편곡자로서 가수 주변에 머무르는 게 좋은데, 얼떨결에 인기 가수가 됐죠. 낮엔 아이돌 스타처럼 살고 밤엔 곡 쓰는 뮤지션으로 돌아오고…. 제일 먼저 놓아버리고 싶었던 건 가수였어요.”



 사실 그의 맨 처음은 작곡이었다. 87년 고 김현식에게 ‘여름밤의 꿈’이란 곡을 건넸던 게 계기가 됐다. 90년 ‘보라빛 향기(강수지)’· ‘입영열차 안에서(김민우)’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면서 이듬해 가수로도 데뷔했다. 당시로선 낯설었던 컴퓨터 음악에, 특유의 애끓는 감성으로 소녀팬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는 불편했다. “많이 팔리는 게 곧 음악성으로 평가되는 풍토를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달아나듯 입대했다. 데뷔 2년 만이었다. 제대 후엔 말마따나 “마음껏 음악을 했다.” 음악적으로 온갖 파격을 시도했다. 그 5~6년간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됐다.



 “틀에 박힌 가요에서 달아나고 싶었는데, 막상 중요한 걸 놓쳤다 싶더라고요. 음악만 하겠다고 하니 대중음악가가 대중으로부터 슬슬 멀어지는 결과가 생기고 말았죠.”



 이런저런 고민에 휩싸였던 2003년 초, 그는 돌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보스턴 버클리음대에서 뮤직 신디시스(음향합성학)를 전공하고, 뉴욕대(NYU)에서 뮤직 테크놀로지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전자음악 1세대’로 분류되는 그는 “정규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독학으로 익혀왔던 전자음악을 체계화하려 유학 길에 올랐다”고 했다.



 자연스레 7년의 공백이 생겼다. 그 동안 그의 마음 한 구석에 피어 오른 단어는 ‘대중’이었다고 한다. “대중음악가로서 살아가면서 대중과의 소통에 소홀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지난해 한국에 돌아온 뒤 대중 속으로 적극 뛰어든 것도 그래서다. 귀국과 동시에 KBS 쿨 FM ‘윤상의 팝스 팝스(매일 오전 11시·89.1MHz)’ 진행을 맡았다. 그는 “팝은 내 음악의 스승이었다. 라디오 DJ는 내가 유일하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요즘엔 가인(‘돌이킬 수 없는’), 아이유(‘나만 몰랐던 이야기’) 등 후배 아이돌 가수들에게 곡을 건네는 일에도 열심이다.



 윤상의 20년은 한국 컴퓨터 음악의 20년과 고스란히 포개진다. 색채가 또렷한 그의 음악은 우리 가요의 클래식으로서 견고하다. ‘아이돌 윤상’에서 ‘뮤지션 윤상’을 지나온 그는 이제 ‘대중음악가 윤상’으로서 “대중을 위로하는 음악을 오래도록 만들겠다”고 말한다. 지난 20년이 그러했듯 그에게서 돌아서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윤상의 음악은 유통기한을 모른다.



글=정강현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윤상 [現] 가수 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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