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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무상 노동





사람은 노동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다. 종교의 가르침이 대개 그러하다.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국 당나라 때 고승 백장(百丈)스님이 남긴 선가(禪家)의 유명한 규칙이다. 백장스님은 90세의 고령이 되어서도 대중과 함께 일하는 울력에 반드시 참여했다. 제자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스님의 농기구를 감추자 이 말과 함께 굶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학명(鶴鳴)선사는 1920년대 내장사에서 반농반선(半農半禪)을 표방하며 노동과 참선 수행을 함께 했다. 노동을 수행의 방편으로 인식하라는 게 불교의 주문인 것이다.

 기독교 가르침에서도 노동은 창세 때부터 창조주가 사람을 위해 정한 질서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 살았던 에덴동산, 즉 낙원도 놀고 먹는 곳이 아니라 일하는 곳이며, 아담은 일하는 농부로 창조됐다는 거다. 낙원에서 쫓겨난 다음에도 그 숙명은 바뀌지 않는다. 창세기에 “너는 종신토록 수고해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한 것도 그런 의미란다.

 그럼에도 인류의 역사는 노동을 천하게 여기고, 남의 무상 노동을 강제한 오점으로 얼룩져 있다. 노예와 노비, 부역(賦役)이 대표적 흔적이다. 우리만 해도 고조선의 8조법금에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만든다’는 조항이 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다. 그리스·로마의 장정들은 노동을 노예나 하는 일로 여겼다. 스파르타의 경우 국가의 일상적 노동을 수행하는 노예가 자유인보다 많았다고 한다. 오죽하면 스파르타 교육이 자유인 대상의 군사훈련과 노예 제압 기술이 전부였다고 할까.

 부역은 정치 지배자와 피지배층 간, 지주와 소작농 간에 동원된 무상 노동이다. 한설야의 1930년대 작품 『탁류』 3부작 중 『부역』엔 홍수로 무너진 둑을 복구하는 데 소작농들이 지주로부터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공짜 부역하는 묘사가 나온다. 고대국가 체제에서부터 근대까지 부역이 존재했다는 얘기다.

 가족 안에서 행해지는 가사·육아·돌봄노동도 대가가 지급되지 않는 무상 노동(unpaid work)이다. 한국 남성의 이런 무상 노동 시간이 하루 평균 1시간 미만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9개국을 조사한 결과다. 이러다 아버지의 존재감이 흔들릴 성싶다. 자칫 남성들에게 ‘가족용 부역’을 강제해야 한다는 소리 안 나올까 모르겠다. 가족용 무상 노동이 곧 가족에게 사랑을 쏟는 행위임은 자명한 일이니 그러지 말란 법도 없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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