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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KAIST 사태와 ‘하인리히 법칙’







유재하
UCO마케팅그룹 대표이사




몇 해 전 교통사고를 낸 적이 있다. 내가 운전한 차가 중앙선을 넘어 인도에 박혔다. 긴급구조대원은 사고지에 도착하자마자 운전자의 생사 여부를 확인했다니 분명 대형 사고다. 그러나 하늘이 도와 대략 멀쩡하게 살아났다. 난 입원실에 누워 난감한 사고에 대해 생각했다. 사고 이유는 졸음운전이다. 며칠씩 밤새우고 치른 당일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라서 긴장이 풀어졌었나? 광고 일을 하면서 밤을 새운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지난 20수년 동안 하루 평균 4시간만 자면서도 끄떡없었다.



 그러나 작은 깨달음은 병원 침대에서 읽은 책 한 권을 통해서 갖게 되었다. 하인리히라는 사람이 쓴 ‘하인리히 법칙’이다. 1930년 미국의 한 보험회사 관리자였던 그는 세상의 모든 대형 사고는 사전에 반드시 신호를 준다고 주장했다. 수십 년간 대형 사고를 조사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그의 이름을 딴 법칙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소위 1:29:300의 법칙이다. 한 번의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미 그 전에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고, 그 주변엔 300번의 이상 징후가 감지됐었다는 분석이다. 사고 전에 내가 귀를 열었더라면 적어도 내 주변의 반응을 감지했을 것이다. ‘제발 몸 좀 돌봐라’는 애정의 신호와 ‘기어이 밤새우며 혼자 다 하는 척하더니…’라는 것들 말이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은 징후와 성공 릴레이를 향한 가중된 긴장이 판단을 흐리고 있다는 것 등도 포함된다.



 이번 KAIST 사태를 보면서 총장 사퇴와 졸속 개선안을 논하기 전에 사전징후는 어떤 것이 있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먼저 총장 리더십에 휴브리스(hubris)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휴브리스란 과거의 성공 경험을 과신해 자신의 방법을 절대적 진리로 적용한다는 것이다. 오만이다. 서남표 총장 자신이 학과장으로 있으며 성과를 인정받았다는 MIT보다 더 수준 높은 최고의 대학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그의 방식을 이식하는 과정에서 여론수렴을 하거나 견제할 아무런 장치도 없었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그의 독선적 성향과 과정을 중시하지 않는 지금의 풍토, 그리고 그를 한껏 부추긴 언론도 한몫했다.



 이번엔 정부와 여야를 막론한 사회 지도층과 여론이 재빨리 총장을 단죄하고 또 서둘러 새 개혁안 운운하고 있다. 그러나 휴브리스는 여전히 진행 중인 것 같다. 과연 이들의 새 개혁안이란 어떤 것일까. 수업료 문제는 없던 걸로 하고, 영어 수업은 조정하면 해결된다는 것인가. 사회 전반을 들여다보는 이는 소수자이고, 대다수가 국소적 치유책에만 집중하는 것은 위험하다. 성적 위주로 학생들을 지원하는 정책은 그가 있었던 MIT에서도 이미 40년 전부터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도 하지 말자’가 아니라 왜 하지 않게 되었나를 알아야 한다.



 우리 학생들을 나약하다고만 하지 말고 나약한 학생들을 만든 사회구조를 분석해봐야 하지 않을까. 개발도상국에서 주요 20개국(G20)에 오른 현재를 만든 자수성가 기성세대의 잣대로만 보는 것 또한 휴브리스라 할 수 있다. 끝없는 채찍만이 살길이라고 하지 말자. 이제 개혁의 속도보다는 각도를 맞춰야 한다. 힘차게 흘러가던 계곡물도 작은 돌부리 하나에 물길이 틀어지곤 한다. 목표는 세계 초일류 대학인데, 그것도 하루빨리 가야 우리 정서에 맞는다지만 걸림돌이 발견되었다면 치워줘야 한다. 그들이 대양을 향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숨통을 터주자. 벌보다는 상을 더 주는 긍정적 격려 시스템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상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혼자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나누는 것을 가르치자. 그래서 그들이 리더가 되었을 때 ‘승자독식’의 지옥이 아니라 ‘승자나눔’의 세상을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화려한 봄볕에 성급히 핀 목련은 벌써 지고 있다. 누군가 목련은 팝콘처럼 피었다가 바나나 껍질처럼 스러져 간다고 했다. KAIST의 진정함은 이 땅의 과학영재들이 팝콘처럼 피어나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을 기대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졸업도 하기 전에 버려진 바나나 껍질처럼 시커멓게 썩어 간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KAIST 혁신비상위원회’가 구성된다고 한다.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우리의 모든 대학이, 모든 교육 정책이 모두에게 궁금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재하 UCO마케팅그룹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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