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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불청객 정치인, 연평도 풍어제 습격사건





민주당·민노총·전교조 300여 명
풍어기원 핑계로 몰려가 정치집회
주민 “꽃게들 놀라 다 도망가겠다”



정기환
사회부문 기자




11일 오전 10시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의 당섬 선착장. 이날 오전 8시에 인천 연안부두를 출항한 여객선이 닿자 300여 명이 넘는 육지 손님이 내렸다.



 이날은 13일부터 시작되는 봄 꽃게잡이를 앞두고 연평도 풍어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지난해 11월 북한의 포 공격으로 가을 꽃게잡이가 중단된 이후 5개월 만의 출어인 셈이다.



 이곳 어민들은 9일 저녁부터 해변에 굿당을 차리고 전야제를 치렀다. 굿당 정면에는 이 섬의 수호신 격인 임경업 장군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연평도 풍어제는 조선 인조 때 임경업 장군이 청나라를 치러 연평도 바다를 지날 때부터 비롯됐다. 물과 부식을 얻기 위해 섬에 들렀던 임 장군이 해변에 가시나무를 꽂아놓으니 썰물 때 조기가 하얗게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연평도 조기잡이가 시작되고 주민들은 사당(충민사)을 지어 매년 정월 대보름날마다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왔다.









11일 인천 연평도에서 열릴 예정이던 ‘풍어제’가 외지인 300여 명이 몰려들면서 ‘서해5도 평화풍어 기원제’로 변질됐다. 이날 참가자들이 현수막을 들고 연평도 선착장까지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래 연평도 풍어제는 해마다 봄 꽃게잡이가 시작되는 3월 초에 열려 왔다. 그러나 올해는 지난해 북한의 포격 때문에 내버려 두었던 꽃게 그물을 건져내느라 늦어졌다. 한 달 더 기다리는 만큼 어민들의 기대는 컸다. 그런데 올해엔 불청객들이 들이닥쳤다. 이날 배를 타고 연평도를 찾은 육지 손님들은 주로 인천 지역의 민주당·민주노총·전교조·시민단체 관계자였다. 이들은 풍어제를 핑계로 연평도에서 대규모 정치 집회를 열었다. 어민들의 정성과 희망을 담으려 했던 풍어제는 ‘서해5도 평화풍어기원제’로 바뀌었다.



 행사는 오후 1시 연평운동장에서 ‘평화풍어 선포식’으로 본격화했다. 큰 북 공연으로 시작돼 인천 4개 종단(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의 평화기원 의식·평화풍어음악회로 이어졌다. 마지막에 평화선언문 선포·전달식이 있었다. 내용은 ‘전쟁 참화를 불러올 수 있는 긴장고조는 중단돼야 한다. 남과 북은 대화와 협력을 통해 무력충돌 가능성이 있는 서해5도 접경지역을 평화로운 상생의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섬마을의 풍어제가 평화를 빙자한 정치집회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정작 섬 주민들은 시큰둥했다. 한 어민은 “‘제발 꽃게 많이 잡게 해주세요’라고 빌어야 풍어제지 무슨 선거판 같다”고 했다. 다른 주민은 “이런 정치 궐기대회 소리에 놀라 꽃게가 다 도망가겠다”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길을 잃은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했다. 비극을 겪은 섬마을의 풍어제까지 파고든 정치 과잉 현실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정기환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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