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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시각각] 이윤과 폭리 사이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비슷한 뜻이라도 감정을 실으면 정반대로 비치는 말이 있다. ‘나는 소신이 있지만, 저 놈은 고집불통이야’라고 말한다 치자. 똑같은 두 사람이 서로 싫어한다는 뜻밖에 안 된다.



 요즘 자주 거론되는 대기업의 폭리라는 것도 그렇다. 이윤과 폭리, 마치 선과 악처럼 통한다. 이윤엔 ‘적정’, 폭리엔 ‘부당’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이윤을 내면 착한 기업이고, 폭리를 취하면 나쁜 기업으로 몰린다. 정도껏 가져가는 이익엔 납득하지만, 과도한 이익은 사회에 해를 끼친다고 본다.



 그럼 어디까지가 이윤이고, 어디부터가 폭리인가. 누가 그 경계를 권위 있고 명확하게 정할 수 있는가. 현실적으로 본다면 돈 벌었다는 걸 그냥 봐주느냐, 비난하느냐의 차이 아닌가 싶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폭리는 이윤에다 ‘손 좀 봐야겠다’는 메시지를 보탠 말로 쓰이곤 한다. 정부 내에서 말이 많던 초과이익공유제라는 것도 비슷하다. ‘그동안 많이 먹었으니 좀 내놔라’ 하는 노골적인 말을 점잖게 포장한 것뿐이다.



 문제는 이게 말에 그치지 않고 정책과 행동에 반영된다는 점이다. 정유사들의 폭리 논란에서 출발해 기름값 인하 압박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이 대표적이다. 결국 지난 3일 L당 100원 인하를 발표한 SK에너지가 처음으로 총대를 멨다. 곧이어 다른 정유사들도 따라 나섰다. 하지만 정부도, 전문가들도 정유사들의 폭리를 밝혀내진 못했다. ‘비대칭성’이라느니 하는 어려운 말을 썼지만 폭리라고 단언하진 못했다. 사실 영업이익률 3% 언저리의 정유사들이 폭리를 취했다고 모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물론 정부의 의도는 순수했다고 본다. 다들 어려울 때 돈 잘 버는 대기업이 조금 양보하라는 뜻 아니겠나. 담당 공무원들도 국민경제를 위한 충정에서 나섰다고 믿는다. 또 아무리 정부가 압박한다고 정유사들이 밑지고야 팔겠는가. 어쨌든 기름값이 내렸으니 물가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게 나쁠 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선례다. 정부가 콕 찍어서 돈 좀 버는 기업들을 몰아붙이는 것 말이다. 아주 급할 때 한 번 쓰고 말면 모를까, 상투적인 정책수단으로 삼으면 시장원리를 뿌리째 흔들 위험이 있다. 기업들의 이윤동기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것이다. 정부가 내내 강조해 온 신성장 동력 산업이란 것도 블루 오션에서 고수익을 낼 업종과 기업을 만들자는 취지 아닌가. 그러던 정부가 이제 와선 무슨 의적 이나 된 듯 기업들에 칼을 휘두르니, 이 얼마나 모순인가. 그뿐 아니다. ‘기업은 소비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윤을 남긴다’는 왜곡된 인식을 정부가 나서서 전파시키는 효과도 있다. 시장은 기업과 소비자의 제로섬 게임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다.



 이번처럼 선의에서 출발했다는 정책이 시장에서 반대효과를 내는 경우는 또 있다. 대부업체들의 최고금리를 연 30%로 낮추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그렇다. 서민의 부담을 줄여 주겠다, 대부업체의 폭리를 막겠다는 소박한 의도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금리 30% 이상의 돈을 쓰던 사람은 아예 돈을 못 빌리는 상황으로 내몰리기 쉽다. 또 장사하기 어려워진 제도권 대부업체들은 문을 닫을 거다. 이들을 대신하는 게 불법 고리대금업자나 사채업자들이다. 대부업 금리 상한선을 급격히 낮춘 일본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폭리라는 잣대를 들이밀면 남아날 업종이 없다. 정부 입김이 서린 규제산업이 특히 그럴 거다. 이건 친서민과도 거리가 있다. 기업들이 돈 많이 벌어 일자리 늘리도록 하는 게 차라리 친서민이다. 퇴영적인 기업 팔 비틀기는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이쯤 해서 기름값 인하의 최대 수혜자가 누구인지 따져 보자. 당분간 차에 기름 가득 넣을 때마다 몇 천원 아끼게 된 소비자일까. 아니면 ‘한 건 했다’며 칭찬 받은 담당 공무원들일까. 아마 후자가 아닌가 싶다. 서글프지만 공무원들의 미소가 100원짜리 포퓰리즘의 가장 큰 성과가 돼버렸다.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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