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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자살의 항변을 듣지 못하는 …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30년 전, 유신 독재가 갑자기 끝나고 서울의 봄이 찾아왔던 그 시절 얘기다. 학생들의 대화요청에 학과 교수들이 응했다. 나를 포함해 학생들은 성난 표정이었다. 성질 급한 학생이 따져물었다. “학우들이 자살로 독재에 항거할 때 선생님들은 뭘 하셨어요?” 침묵이 흘렀다. 다른친구가 다그쳤다. “바둑만 두지 않으셨던가요?”바둑 고수로 알려진 교수가 답했다. “그래, 이제 안 두마.” 침묵. 또 한 친구가 비장하게 물었다. “학우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다시 침묵. 그때 원로교수가 입을 열었다.



“역사를 만들어야지.” 이 말에 교수와 제자들은 막걸리잔을 들었다. 자살로 마감한 제자들의 넋을 기리며. 30년이 흐른 지금 대학은 훨씬 세련된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시대의 통증을 앓는 사람은 드물다. 그 학과에서 중견교수가 된 필자도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를 고민하지 말라고 타이르지만 학생들은 제 인생 책임질 건가요 하는 표정이다. 대학에서 시대정신은 촌스러운 상품이 되었다. 동료교수가 쓴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뒤처질까 노심초사하는 학생들의 조급한 심정을 달래는 심리적 안정제다. 그 아픔은 사르트르의 실존적 고통, 베케트의 부조리적통증이 아니라, 시대의 공세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처절한 신음소리, 그것이다.



 KAIST의 서남표 총장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저 악명 높은 ‘징벌적 수업료제’를 소위스카이대학에 도입했다면 자살을 감행한 학생이 수십 명은 족히 나왔을 것이니까. 좌절과 열등감에서 빠져나올 비상구가 차단된 젊은이에게 그것은 족쇄이자 낙인이다. 시대정신 혹은 역사적 대의에 몸 바쳤던 그 시절엔 개인적 고민이 오히려 가볍게 느껴졌던 것은 역설적이다. 이성의 등불로 시대의 어둠을 밝히려는 대의(大義) 하나만으로도 벅찼다.



역사의 부름에 청춘을 산화한 선배들의 유언이 진달래꽃처럼 붉게 피어나는 이 봄날 캠퍼스에 후배들은 시대의 수인(囚人)이 되어 모험과 반역의 유혹을 접어야 한다.



 ‘공장처럼 효율성만 강조하고 철학이 없다’는 KAIST 학생의 절규에 서 총장은 예의 소방호스론’으로 응답했다. 물을 쏟아붓는 듯한 공부압박을 이겨낸 정신적 양식을 젊은 시절 서 총장은 분명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젠 유효기간이 만료된 것임을, 시대와의 소통망이 끊긴 요즘학생들에겐 울림이 없는 낡은 철학임을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신세대 젊은이들의 정신적 허기를 채워줄 신개념의 대의가 필요한 것이다. 더욱이 많은 과학자들이 냉소하는 ‘이동 부두’와 ‘온라인 전기차’ 프로젝트로 이름값을 올리고, 자신의 방식만을 밀어붙이는 독선 총장에겐 학생들의 소원(訴冤), 교수의 반론이 들릴 리 없다.



교수평의회가 없는 KAIST에서 교수들은 몸을 사려야 한다. 그것이 싫어 제 발로 떠난 교수들이 더러 있고, 지난 일요일엔 생물학계 유명교수가 목을 맬 정도로 내부문제를 해소할 자치기구가 없다. 아무튼 모든 강의를 영어로 한다고 창의성이 솟아날지, 공고 출신 로봇천재와 과학고 출신 수학영재를 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몰개성적 교육방식이 과학한국을 일궈낼지도 의문이다. 학생들은 자살한 제자들의 넋을 기리며 학생들과 손붙잡고 눈물 흘리는 총장을 더 원했을 것이다.



 KAIST 학생의 연쇄자살은 젊은 세대에게 경제기적의 자부심으로 가득 찬 기성세대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빈곤시대의 철학으로 이시대의 젊은이들을 스펙의 감옥으로 몰아넣지는 않았는지, 사회적 진입장벽을 높이 쌓고 넘어보라고 느긋하게 즐기지 않았는지, 승자들이 성공의 사다리를 걷어차지는 않았는지를 묻는다면 누가 흔쾌히 아니라고 답할 것인가.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세상을 개선할 방법을 가르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세상을 개선하겠다는 그 역사적 소명에 투철했던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옥죄는 시대 구조를 조금이라도 바꿔 주는 데에 우리처럼 소홀했던 세대가 또 있으랴 싶은 것이다.



 젊은 세대의 미래는 권력, 부, 지식을 독점한 기성세대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정말 부끄럽게도, 우리의 기성세대는 그들의 정신적 무기고를 채워주지 못했다. 정치혁명에 몸 바친 기성세대가 그들에게 희망의 언어를 선사할 변변한 정치가, 변변한 사상가 한 사람을 제공하지 못했다.



공익이 무엇인지, 세대의 짐을 어떻게 나눠 가질 것인지, 패자와 약자를 어떻게 포용할 것인지를 외면한 채 이익선점과 권리투쟁에 온 정력을 쏟아온 그 직무유기의 무대 뒤에서 젊은 세대원들이 한 점 꽃잎처럼 몸을 던져도, 아집에 함몰된 기성세대는 자살의 항변을 듣지 못한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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