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사회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하루 중에서 아침에 기분이 제일 좋다. 경기도 일산에서 아침마다 상쾌한 마음으로 서울 출근길에 오른다. 그런데 화정을 지날 쯤이면 길거리에 크게 나붙어 있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온다. 모 정당 지구당이 내건 것이다. 시커멓고 붉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다. ‘서울시 똥은 너희가 치워라’.



김종혁의 세상탐사

갑자기 심하게 불쾌해진다. 나는 신도시가 처음 지어졌을 때부터 17년째 일산에 살고 있다. 거기가 제2의 고향이다. 따라서 서울시가 고양시에 주민 기피시설을 13개나 두고 있고, 그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데 대해 화가 난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공장소에 몇 달째 거리낌없이 나붙어 있는 그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우울해진다. 이런 저속한 용어를 써가면서, 이렇게 감정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정치부와 사회부에 있을 때 선거취재를 여러 번 했었다. 그때마다 ‘분노의 힘’을 확인하곤 했다.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끌고 나오는 건 누굴 뽑고 싶다는 의지가 아니라, 누굴 혼내주고 싶다는 복수심인 경우가 더 많다. “우리가 이깁시다”보다는 “저쪽이 이기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대중 동원력이 훨씬 크다는 뜻이다. 선거 때마다 네거티브가 판치는 건 그런 이유일 것이다. 꼭 우리만 그런 건 아니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2004년 미국 대선을 취재했는데 그 나라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속으로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어찌 보면 선거라는 건 유권자들이 분노를 표출하면서 카타르시스를 얻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냄비가 터지지 않게 적절히 김을 빼는 게 정치라는 말이다.



그걸 인정한다 해도 우린 너무 심하다.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그렇다. 첫째, 우리 사회에선 선거철이 아니어도 증오와 갈등의 표출이 일상화 되고 있다. 둘째, 이젠 정치권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가고 있다. 그리고 셋째는 그렇게 그악스럽게 말하고 행동하는 걸 아무도 부끄럽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대한민국에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신공항 유치경쟁을 벌였던 경남 밀양과 부산은 이젠 공격의 화살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퍼붓고 있다. 하지만 만일 둘 중 한 곳으로 결정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모르긴 몰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시끄러웠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과학벨트는 두 개로 쪼개자, 세 개로 나누자면서 차라리 처음부터 갈라먹자는 주장이 나온다. 이런 얘기를 듣다 보면 국가의 경쟁력을 키우고, 어쩌고 한 건 다 명분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 그뿐인가. 경기도 수원시와 성남시는 분당 미금역 신설을 놓고 싸우고, 경기도 평택시와 충남 당진은 공유수면매립 관할권을 다투고 있다. 전국적으로 “내 먹을 것을 내놓으라”는 아우성이 하늘을 찌른다.



목요일인 7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렸다. 비싼 기름값 때문에 한산하던 서울시내 도로에 차가 넘쳤다. 방사능 비를 맞기 싫다며 많은 사람들이 승용차를 끌고 나와서라고 한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아주 극미량이기 때문에 인체에는 유해하지 않다”고 여러 번 강조했지만 별로 안 믿는 분위기다. 2007년의 광우병 시위 때도 그랬고, 1년 전 벌어진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서도 아직까지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에선 ‘정상적인 권위’가 통째로 실종해 버렸다. 학생들은 교수를 안 믿고, 국민은 정부를 불신하고, 노조는 기업을 의심하고, 검사들은 판사들과 다투고, 신문과 방송도 이리저리 패를 갈라 싸움질을 하고 있다.



해결책이 뭘까. 답은 잘 모르겠다. 혹시 이런 과정이 민주주의가 성숙하기 위한 진통이 아닐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분명한 건 있다. 이대로 가면 여당이냐 야당이냐를 따질 것 없이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와 호남을 가릴 것 없이 모두 함께 공멸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국민소득은 2만 달러다. 우리도 그에 합당한 국민과 국가의 품격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