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지는 걸 상상할 수 없는 자태, 사랑과 이별은 목련을 닮았다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이영미의 7080 노래방 <4> 두 얼굴의 목련









그늘 속의 목련조차 만개했다. 성질 급하게 먼저 핀 놈들은 벌써 꽃잎을 뚝뚝 떨구고 있다. 활짝 핀 꽃에서도 지는 순간을 생각지 않을 수 없지만, 목련이야말로 피는 모습과 지는 모습이 다 사람 마음을 출렁이게 만드는 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나, 단짝 친구가 목련을 ‘팝콘처럼 피었다가 바나나 껍질처럼 떨어지는 꽃’이라고 묘사하는 것을 듣고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그 친구는 후에 작가가 됐다). 비유가 다소 도발적으로 발랄하기는 하지만 필 때와 질 때의 그 대조적인 모습의 형상화로는 놀랍도록 적확했다 싶다. 마른 나뭇가지에 큰 봉오리를 탐스럽게 피어 올릴 때의 목련은 황홀할 정도로 우아하다. 게다가 그 큰 꽃을 피우는 속도도 놀라워, 긴 꽃잎을 마치 장삼자락 위로 쳐올리듯 한 순간에 훌쩍 펼쳐 보인다. 하지만 떨어질 때에는 꽃잎이 하나하나 흩어져 땅에 떨어지고, 그게 언제 우아한 흰색이었나 싶게 갈색으로 변해버리니, 정말 바나나 껍질 못지않게 추레하다.



나무에서 피는 연꽃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귀족적이고 우아한 풍모를 자랑하는 목련은, 대중가요보다는 가곡의 소재로 먼저 쓰였다. 일찍이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로 시작하는 ‘사월의 노래’(박목월 작사, 김순애 작곡)가 있었다. 1970년대에 엄정행의 목소리로 널리 사랑받은, “오 내 사랑 목련화야”로 시작하는 ‘목련화’(조영식 작사, 김동진 작곡)도 대표적인 노래다.



하지만 이 두 곡 모두 목련의 형상화로서는 그저 그렇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의 독설가처럼 말해보자면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같은 구절은 너무 멋을 부렸다 싶다. 게다가 뒷부분에는 ‘클로바 피는 언덕’(토끼풀이 아닌 ‘클로바’!)까지 나오니 설상가상이다. ‘목련화’의 가사는 직설적이면서 동어 반복적이며, 선율 또한 김동진의 대표작 ‘수선화’ ‘내 마음’ ‘가고파’ 등에 비하면 긴장감이 현격하게 떨어진다. 게다가 두 곡 모두 지는 목련을 염두에 두지 않으니 아무래도 맹숭맹숭하다.



이에 비하면 대중가요 속의 목련이 오히려 훨씬 잘 형상화돼 있다. 가장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애창하는 목련 노래는 바로 이 곡이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 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 사랑이어라/ 거리엔 다정한 연인들 혼자서 걷는 외로운 나/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잊을 수 있을까/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양희은의 ‘하얀 목련’, 1983, 양희은 작사, 김희갑 작곡)



양희은이 암 수술을 받은 서른 직후에 쓴 가사에, 양희은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싶었던 스탠더드팝 전문 작곡가 김희갑이 곡을 지어 크게 히트했다. 양희은답지 않게 애처롭고 비극적인 이 노래는, 늘 씩씩할 것 같았던 청년 양희은이 나이를 먹어간 흔적이다. 건강도 망가지고 돈도 한 푼 없어 선배들이 수술비를 추렴할 정도였던 상태에서 화려하지만 허무하게 지나가버린 자신의 젊음을 이렇게라도 그려내며 울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의 구절이 유난히 깊게 남는다.



1990년대에 김광석(사진)이 다시 불러 사랑받은 ‘그녀가 처음 울던 날’도 티 없이 맑고 깨끗한 ‘그녀’를 목련꽃에 비유했다.

“그녀의 웃는 모습은 활짝 핀 목련꽃 같애/ 그녀만 바라보면 언제나 봄날이었지/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난 너무 깜짝 놀랐네/ 그녀의 고운 얼굴 가득히 눈물로 얼룩이 졌네/ 아무리 괴로워도 웃던 그녀가 처음으로 눈물 흘리던 날/ 온 세상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 내 가슴 답답했는데…”(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1984, 이정선 작사·작곡)



목련꽃을 볼 때에 지는 것을 상상하기 힘든 것처럼, 그녀의 활짝 웃는 모습은 우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게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눈물은 곧바로 이별로 이어진다. 그 이후가 없다. 정말 헤어짐까지 목련을 닮았다. 목련에 대한 가장 깊은 느낌의 노래로는 단연 김광석의 ‘회귀’를 꼽을 만하다. 대중적이지는 않은 곡이지만, 김지하의 시를 가사로 쓰고 시의 무게감을 감당할 정도로 뛰어난 곡이 결합되어, 김광석 ‘광팬’들은 꽤 많이 기억한다.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흙으로 가네/ 검은 등걸 속 애틋한 그리움 움트던/ 겨울날 그리움만 남기고 저 꽃들은 가네/ 젊은 날 빛을 뿜던 친구들 모두/ 짧은 눈부심만 뒤에 남기고 긴 기다림만 여기 남기고/ 젊은 날/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흙으로 가네/ 봄날은 가네 그 빛만 하늘로 오르고 빛을 뿜던 저 꽃들은 가네”(김광석의 ‘회귀’, 1994, 김지하 작시, 황난주 작곡)



“와, 뭘 지으려면 이 정도는 지어야지!” 하는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오는 가사였다.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꽃잎들이 한 잎씩 바람에 찢겨 흙으로 간다는 첫 부분부터 목련의 대조적인 두 이미지를 탁월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원작시의 구절은, ‘가네’가 아니고 ‘가데’이며, 젊은 날의 친구들이 이제 ‘아메리카로 혹은 유럽으로’ ‘감옥으로 혹은 저승으로’ 하나 둘씩 가버렸다고 되어 있어 짧은 눈부심의 젊은 날을 보내버린 회한의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이에 비해 노래는 훨씬 젊은 질감으로 애처롭고 비장한데, 특히 김광석의 옹골차고 맑은 목소리가 이런 느낌을 더해준다. 가창력 좋은 김광석도 허덕거릴 정도로 호흡이 길고 어려운 작품이나, 피아노에 얹힌 절제감 있는 노래가 묘한 중독성을 발휘하여 자꾸 듣게 만든다. 오늘처럼 목련이 외롭게 하늘로 오르는 봄날에는 더욱 그렇다.



이영미 ymlee0216@hanmail.net




이영미씨는 대중예술평론가다. 『한국대중가요사』『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광화문 연가』 등을 썼다.



중앙SUNDAY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