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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같은 마에하라, 출세 후에도 어릴 적 도움 안 잊어”

일본의 차기 총리 영순위로 촉망받던 마에하라 전 외상을 낙마시킨 문제의 사진. 마에하라는 국토교통상시절 평소 어머니처럼 따르던 장옥분씨를 장관실로 초청해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그런데 야당인 자민당이 이 사진을 단서로 외국인 장씨가 마에하라에게 정치헌금을 한 사실을 밝혀냈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기 직전 일본 정계를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외국인 정치헌금 사건’이다. 인물난에 허덕이는 일본 정계에서 몇 안 되는 차기 총리 감으로 촉망받던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외상이 재일 한국인으로부터 25만 엔(약 340만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지난달 7일 자리를 내놓은 것이다. 일본 국내법상 정치인이 외국 국적자로부터 정치헌금을 받는 것은 금지돼 있다. 뒤이어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도 똑같은 의혹이 드러나 진퇴 표명의 기로에 몰렸다가 직후 발생한 대지진으로 미뤄진 상태다.

재일동포 장옥분씨와 마에하라 전 일본 외상

마에하라 사임의 계기가 된 헌금의 당사자 재일동포 장옥분(72)씨는 “일본인들과 똑같은 의무를 다하면서도 권리는 누리지 못하는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이라고 규정했다. 경북 예천 출신으로 5세 때 부모의 품에 안겨 일본으로 건너간 뒤 현재 교토 변두리 야마시나에서 38년간 불고기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장씨를 만나 사건의 경위와 소회를 상세히 들었다.

-마에하라 전 외상을 알게 된 계기는.
“마에하라가 우리 가게 근처로 이사 와서 손님으로 처음 찾아 온 게 중학교 2학년 때다. 그 뒤로 단골 손님이 됐고 가족들과도 가까이 지냈다. 내 둘째 아들과 학교는 달랐지만 나이가 같아 자연스레 나를 ‘오카상’(어머니)이라 불렀다.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고 힘들게 살기에 내가 돈 안 받고 불고기를 배불리 먹이곤 했다. 그 뒤 교토대와 마쓰시타 정경숙을 거쳐 정치인으로 출세한 뒤에도 나를 잊지 않고 찾아왔다. 둘째 아들 결혼식 때나 시부모 장례식 때 와서 끝까지 자리를 지켜 준 게 마에하라다.”

-정치 헌금을 하게 된 경위는.
“아들처럼 지내던 사람이 지방 의원을 거쳐 국회의원이 됐는데 내가 어찌 후원하지 않을 수 있나. 송금 계좌번호가 적힌 팸플릿을 보고 한 해에 5만 엔 정도씩 보냈다.”

-외국인 국적으로 헌금을 하면 법에 저촉된다는 사실을 몰랐나.
“몰랐다. 알았더라면 아무도 모르게 그냥 호주머니에 찔러 줬지 뭣 하러 기록에 남는 짓을 했겠나. 내 딴에는 그렇게 근거를 남기면서 돈을 보내는 것이 법을 지키는 것인 줄 알았다.”

-헌금을 할 때 명의는 한국식 본명으로 했나. 아니면 일본식 이름으로 했나.
“기무라 준코(木村順子)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했다.”
재일동포들은 통상 두 가지 이름을 쓴다. 한국식 ‘본명’ 이외에 ‘통명(通名)’이라 불리는 일본식 이름을 병용한다. 관공서나 학교 서류에도 통명 기재란이 있다. 굳이 국적을 밝히지 않고 통명을 쓰면 재일동포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없어 차별을 피하는 방편이기도 했다. 통명으로 헌금하면 이를 받는 정치인은 위법인 줄 모르면서 위법행위를 하는 셈이 된다. 이는 일본 정치자금 관련 법률의 맹점이기도 하다.

-일본식 이름을 썼을 뿐인데 어떻게 자민당 국회의원이 알아냈을까.
“(마에하라와 함께 찍은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바로 이 사진 때문이다. 2009년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국토교통상으로 취임한 뒤 친어머니와 함께 나를 도쿄의 장관실로 초청했다. 그때 찍은 기념사진을 액자에 넣어 가게에 진열해 뒀는데 누군가 이상하게 여겨 자민당에 제보를 한 모양이다. 그런데 내 가게에 있는 조리사 면허증에는 장옥분이란 본명과 함께 본적이 한국이라고 적혀 있다. 외국인 식당 주인이 장관실에 초청받아 갔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나. 이걸 보고 세무사 출신인 자민당의 니시다 쇼지 의원이 마에하라의 정치헌금 기록을 다 뒤졌다고 한다.”

-이게 문제가 된 사실을 알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일단 그런 법률 조항 자체가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외국인은 몰라도 재일동포는 특수한 사정이 있지 않은가. 나는 이 자리에서 38년 동안 장사를 해 오면서 꼬박꼬박 세금 내고 일본 국민과 똑같이 의무를 다 했다. 그런데 일본 사람이 낸 돈은 문제가 없고, 재일동포가 내면 안 된다고 한다. 더구나 법에 저촉되는 줄도 모르고 한 행위를 문제 삼아 장관직 사퇴로까지 몰아붙인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국적과 아무 상관없이 마에하라를 친아들처럼 아꼈거늘 인간적 정리마저 끊으란 얘긴가. 하도 어이가 없어 자민당 본부에까지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따지고 보면 자민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교토 출신 국회의원 중 재일동포 돈 안 받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장씨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민단 관계자에게 문의를 했다. 그랬더니 “교토뿐 아니라 일본 전국의 국회의원 치고 재일동포에게 신세 안 진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일본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일본인들과 융화돼 산다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일동포에겐 정치적 의사를 표출할 길이 봉쇄돼 있다. 재일동포가 대다수인 영주외국인에 대해 지방선거 참정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논의가 10년 이상 이어지고 있지만 실현은 여전히 요원한 일로 남아 있다.
장씨의 가게를 나오면서 실례를 무릅쓰고 마지막으로 물어보았다. 대답은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만약 일본 국적이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안 됐을 텐데, 혹시 귀화 안 한 걸 후회하지 않느냐.
“무슨 터무니없는 소릴…. 아들·손자들이 나중에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몰라도 내 생전에 절대 귀화하지 않을 것이다. 나와 우리 가족의 뿌리가 한국에 있고, 피붙이들도 한국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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