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예술에 알고리즘 접목한 존 케이지 ‘4분 33초’서 음악적 내용 최소화

지금부터 꼭 10년 전 일이다. 나와 아트센터 나비의 큐레이터 최두은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물었다. “어디서 작가를 구해 오지?” 이 땅에 디지털 아트를 정착시키려 문을 연 아트센터 나비에는 작가도 작품도 보이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이준이라는 작가 지망생을 만났다. 미대를 나와 컴퓨터공학을 다시 공부한 그와, 컴퓨터 음악가 장재호, 그리고 몇몇 디자이너·엔지니어가 의기투합했다. 7개월 작업의 결과 자연과 인간과 기술, 삼자 간의 대화라는 뜻의 ‘트라이얼로그(Trialogue)’가 탄생했다. <사진>

시대의 안테나, 디지털 아트 <1> 프로그래밍 예술

트라이얼로그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자연을 상징하는 물고기와 작가·관객을 포함하는 인간, 그리고 학습능력을 가진 가상생명체. 이 세 주체가 각각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긴밀한 상호작용을 하게끔 설계되었다. 먼저 관람객(연주자)이 광센서가 장착된 인터페이스 앞에서 손을 움직이면(연주하면) 그 입력 값에 따른 다양한 이미지와 소리가 생성된다. 한편 물고기는 관람객이 만들어낸 영상과 가상생명체의 영상에 반응해 움직임을 달리 하고, 이는 곧 디지털 신호로 바뀌어 새로운 이미지와 소리를 생성한다. 또한 인공지능을 가진 가상생명체는 인간과 물고기에 의해 생성된 신호들을 독립의지에 의해 수렴, 자신만의 영상을 만들어낸다. 요컨대 인간과 물고기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램, 이 삼자 간의 협연이 관객의 참여에 의해 이루어지는 작품이었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아트는 ‘컴퓨터로 만들어진 도무지 알 수 없는 예술’로 여겨진다. 그 정체를 밝히는 데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디지털 아트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프로그래밍 아트’라 할 수 있다. 프로그래밍이란 말 그대로 논리와 수학적 연산으로 세계를 ‘프로그램화’, 즉 합리화하는 것인데, 이러한 프로그램이 어떻게 논리적 구조를 초월하는 예술과 접목될 수 있는지 언뜻 모순어법처럼 들린다. 그래서 먼저 프로그래밍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서양의 근·현대는 논리적 구조로 세계를 프로그램화한 여정이었다. 17세기 이진법을 창안한 철학자 라이프니츠를 위시해 과학과 학문 둘 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하나의 논리적 체계로 해결하는 것에 도전해 왔다. 그런데 뉴턴류의 결정론적 체계가 20세기 초입에 이르면 확률분포에 따르는 비결정론적 체계로, 더 나아가 시스템화 자체에 대한 회의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괴델의 ‘불완정성 정리’(1931)는 결정론적인 논리체계의 오류를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었다. 괴델의 정리는 서양 근대를 지탱한 과학·학문의 기반 자체를 흔드는 것으로 당대에 큰 충격과 파장을 일으켰다.

같은 시기 튜링은 영국에서 경이로운 기계를 고안해 냈다. 괴델의 비결정성을 완벽히 소화하면서 시스템화에 대한 인간의 열망을 저버리지 않은, 그리하여 이론상으로 어떠한 수학적 문제도 풀도록 설계된, 말 그대로 ‘보편 기계(Universal Machine)’였다. 그 기계의 설계도는 다음과 같이 간단히 표기될 수 있다.

위의 식은 튜링의 보편 기계의 개념을 확률과정 함수로 필자가 표현한 것인데, 곧바로 알고리즘의 전형이다. 단지 t의 무한성이 유한성으로 대체되는 것뿐, 단계별 연산에 의한 문제해결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확률변수의 도입이라는 점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원리를 표현한 수식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오늘의 날씨(Xt)는 어제의 날씨(Xt-1)와 계절적 변화에 관한 함수(F), 그리고 오늘 발생하는 오류(εt), 즉 우연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함수(F)는 이론적으로 가능한 모든 인과관계를 총칭하고, 그 밖의 우연적 요소들은 오류로 처리하기 때문에, 이 수식은 논리적으로 무오류의 식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모든 인과관계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오류가 진짜 우연히 발생하는 오류인지, 혹은 거기에 어떤 인과관계가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실용적 목적의 확률과정 수식에서는 대체로 εt를 무시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수학적 조작을 통해 극복하는 노력을 한다.

그러나 예술은 이 오류항을 다르게 본다. 오류라 부르기를 거부하며 그 우연성에 집중하고 즐긴다. 예술가에게 εt는 영감의 원천이다. 알고리즘 개념을 예술에 적용한 선구적인 작가 존 케이지의 ‘4분 33초’에서 연주자는 피아노 앞에 4분 33초 동안 잠잠히 앉아 있다 일어난다. 연주라는 형식의 일반 함수 F에는 변함이 없지만, 음악적 내용인 Xt를 최소화하고, 대신 관중의 움직임 소리와 기침 등으로 이루어진 우연한 소리 εt를 극대화한 것이다.

관중의 야유와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이 오류항에 집중하는 이유는 거기에 반프로그램, 나아가 탈프로그램의 길이 있음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왜, 음악회에서 관객은 쥐 죽은 듯 있어야 하나? 관객과 함께 즐기는 음악은 예술이 아닌가? 또한 이론상 오류항은 무한을 전제로 한 무작위(랜덤)에 근거한다. 유한한 단계의 알고리즘과 무한에 근거한 오류항 사이의 모순을 예술가는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시스템 실패라는 끔찍한 전망을 내비치는 작가들도 있다. 이준과 장재호, 이들 디지털 아티스트가 10년 전 자연과 인간과 테크놀로지의 공존을 그려본 것은, 오늘날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태에 비추어볼 때 매우 부드러운 경고였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