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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

최첨단 금융상품으로 통하는 ‘헤지펀드’를 처음 만든 건 언론인이었다. 경제전문잡지 포춘(Fortune)의 기자였던 앨프리드 존스가 1949년 헤지펀드란 이름을 단 금융상품을 처음 출시했다. 금융시장을 취재하던 존스는 돈 많은 사람들의 주된 관심이 ‘대박’보다는 안정된 절대수익이란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시장 변동성에서 벗어나 채권 금리의 두 배 정도를 안정적으로 챙기는 금융상품을 만들 순 없을지 골몰했고, ‘헤지(hedge)’에서 그 답을 구했다.

김광기의 시장 헤집기

헤지는 정원 같은 것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놓는 ‘울타리’를 뜻한다. 존스는 시장을 출렁거리게 하는 모든 요인, 예컨대 자연재해나 전쟁·정책 등의 변수로부터 투자 포트폴리오를 보호할 방법을 고안했다. 공(空)매도나 파생상품 등을 활용해 자산의 절반은 올라가는 쪽에, 나머지 절반은 내려가는 쪽에 돈을 거는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시장 변동성을 줄인 뒤 좁은 틈새에 숨어 있는 안정적 수익을 끄집어냈다. 그러고는 레버리지(차입)를 일으켜 미세한 수익을 몇 배, 몇 십 배로 부풀렸다.

헤지펀드의 생명은 주식·채권·외환·원자재 등 시장에서 뭐든 비효율적 틈새만 보이면 곧장 파고드는 기민함과 자금 동원력이었다. 정부의 규제와 감독 아래선 이게 불가능했다. 존스는 규제를 피하기 위해 소수의 거액 투자자들만 파트너십으로 모았다. 잘못되더라도 외부에 민폐를 끼치지 않고 우리끼리 책임진다는 시그널을 분명히 했다. 정부도 여기에 호응해 그들만의 리그를 존중했다. 펀드당 100명 미만, 1인당 100만 달러 이상 같은 울타리 안에서만 놀면 그냥 내버려뒀다.

헤지펀드는 3년 뒤쯤부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최고 20%의 성과보수를 빼고도 일반 뮤추얼펀드보다 높은, 그것도 매년 안정된 수익을 보이면서다. 무엇보다 투자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신뢰감이었다. 존스와 그의 펀드매니저들은 자기들도 투자자로서 펀드에 직접 돈을 넣었다. 고객과 운명을 같이한다는 결의를 보인 것이다. 게다가 펀드에 손실이 나면 자기들 돈부터 날리도록 했다. 이런 희생은 고수익을 낼 때의 성과보수로 보상받았다.

60여 년이 흐르며 헤지펀드도 진화를 거듭했다. 특히 92년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가 영국 파운드화를 공격해 굴복시킨 뒤로는 ‘투기와 탐욕’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안정과 보호’라는 본래 이미지는 증발한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헤지펀드는 신뢰와 책임에 기반해 안정된 수익을 추구하는 전통을 고수해 나가고 있다.

한국에도 곧 헤지펀드 시대가 열린다. 금융위원회가 올해 안에 관련 규제를 풀어 한국형 헤지펀드가 나오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금융 투자의 스펙트럼이 확대된다는 점에서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적잖은 사람이 착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업계도 투자자도 무슨 대박 이벤트를 고대하는 눈치다. 환상은 금물이다. 절제와 책임을 망각하면 한순간 쪽박의 나락에 빠질 수 있는 게 헤지펀드의 세계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본부터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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