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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 최태웅의 ‘투혼과 일탈 사이’

‘암마저 무릎 꿇린 최태웅의 투혼’
‘최태웅, 코트 밖의 최고 승리자’.

정영재 칼럼


지난주 스포츠계의 화제 인물은 최태웅(35ㆍ현대캐피탈)이었다. 그는 암 투병 사실을 숨기고 남자프로배구 2010~2011 시즌 30경기 중 26경기를 소화했다. 뒤늦게 이 사실이 알려지자 최태웅에게 미디어의 찬사가 쏟아졌다.

최태웅은 2009년까지 국내 배구선수 중 최고 연봉(1억6800만원)을 받은 스타였다. 10년 넘게 국가대표팀 주전 세터로 활약한 그는 지난해 삼성화재에서 라이벌 팀 현대캐피탈로 옮겼다. 그는 지난해 말 2010~2011 시즌을 앞두고 왼팔 수술을 받았다. 피부조직이 세균에 감염돼 생긴 봉와직염을 치료하는 간단한 수술이었는데 조직검사 결과 림프암으로 판정이 났다. 암세포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최태웅은 이 사실을 가족과 동료 선수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는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한 번도 팀 훈련을 거르지 않았다. 한양대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체력을 키워야 한다며 20층 건물의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최태웅은 암 투병 사실을 소속팀 김호철 감독에게 알린 뒤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경기에 나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고 출전을 간청했다. 김 감독은 “팀 성적보다 선수 보호가 우선”이라며 만류했지만 최태웅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최태웅 선수와 통화를 했다. 그는 뼛조각이 돌아다니고 인대가 손상된 양쪽 발목을 수술한 뒤 집에서 재활훈련을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부상병동’이었다. 그는 “처음엔 수술한 부위에 볼을 대지도 못할 정도로 아팠지만 테이핑과 보호대를 하니 견딜 만했어요. 최고참 선수로서 새 팀에 오자마자 아프다는 핑계로 물러나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고 말했다.

‘부상 투혼’ ‘진통제 투혼’은 스포츠 지면에서 자주 보는 제목이다. 불굴의 투혼과 팀을 위한 희생은 ‘스포츠맨십의 정수’로 높임을 받는다. 하지만 암에 걸린 선수가,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한두 경기도 아닌 전 시즌을 뛰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권위 있는 스포츠 사회학자인 제이 코클리(미국 콜로라도대 명예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단연코 ‘일탈’이라고 규정한다. 스포츠에서 일탈이라면 선수가 술을 마시고, 싸움을 하고, 금지된 약물을 복용하는 등의 행위를 말한다. 즉 ‘하지 말라’고 한 규범을 어기는 것이다. 이를 일탈적 과소동조(deviant underconformity)라고 한다. 이의 반대점에 있는 게 일탈적 과잉동조(deviant overconformity)다. 규범을 지나치게 경직되게 받아들여 정상을 과도하게 넘어선 행위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파손되었음에도 경기에 나서는 것,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출전하는 것 등이다. 과잉동조는 개인이 조직의 목표와 집단의 가치에 지나치게 헌신할 때 나타난다. 코클리 교수는 자신의 저서 『현대 스포츠사회학(Sports in Society)』에서 “일탈적 과잉동조는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파시즘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스포츠계에서 과소동조가 비난과 처벌의 대상이 되는 반면 과잉동조는 존경과 인정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이는 스포츠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프로풋볼(NFL)에서 쿼터백으로 뛰었던 트로이 아이크먼은 “대부분의 사람이 시도하지 않는 것들을 위하여 몸을 던지고 나면 라커룸에서 존경을 받게 된다. 내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존경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부상 중에도 나가서 뛰었고, 고통은 단지 과정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젊은이가 경기 중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 선수 생명이 끝나고, 은퇴 후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된다.

자신이 해야 할 일과 몸담은 조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하지만 너무 멀리 나가는 건 곤란하다. 스포츠 세계뿐일까. 자신의 이념ㆍ종교ㆍ지역을 위해 너무 열심을 내다 보면 과잉동조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 어떤 이는 삭발에 단식을 하고, 어떤 이는 목숨을 내놓기도 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정성헌 이사장은 지난주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생명은 절대 가치고 나머지는 상대 가치다. 생명을 해치면서 하는 운동은 오래 못 간다”고 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은 공자님 말씀이지만 2500년을 건너뛴 이 시대에도 꼭 들어맞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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