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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권 신공항과 공약 파기

사랑하는 애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한 총각이 있었다. 얼마나 기다리던 만남인가! 약속한 그 시간, 그 다리에서 기다리는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계속 기다렸지만 애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폭우 속에서 계속 다리를 붙들고 있던 그 총각은 결국 죽는다. 슬프다기보다 좀 바보스러워 보이는 총각이다. 그 약속이 그렇게도 중요했던가. 경우에 따라서는 약속은 깨뜨리는 것이 더 낫다. 약속이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아무런 이유 없이 툭하면 약속을 깨뜨릴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다시는 그 사람과 약속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기도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약속을 깨뜨렸을 때 그럴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느냐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다면 약속은 깨뜨릴 수도 있어서다.

정치인이 국민을 상대로 한 공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명분으로 수도 이전을 강행했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이 나자 반쪽이라도 옮기겠다고 고집했다. 그래서 지금 세종시에는 반쪽(?)짜리 행정부가 들어서고 있다. 반쪽이라도 옮겨놓는 게 하나도 안 옮기는 것보다 더 낫다는 논리다. 과연 그럴지 어떨지는 앞으로 연구 대상이다. 반쪽 행정부끼리 서로 의사소통을 얼마나 잘할지 지켜볼 일이다.

두 여인이 서로 자기 아이라고 다투자 솔로몬은 아이를 반쪽으로 쪼개서 나눠주라고 말한다. 친엄마라면 그 해결책만은 말릴 것이라는 지혜를 가진 덕분에 그 아이는 다행히 친엄마를 찾아간다. 과학적으로 DNA 검사를 할 수 없었던 시절의 지혜다. 만약 모든 행정부처가 한군데 모여있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이 맞을 경우 반쪽만 옮겨가도록 만든 처사는 뭐가 될까.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면서 아이를 절단하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동남권에 신공항을 설치하겠다고 공약했다. 한때는 ‘우리가 남이가’라고 외치던 경상남도와 경상북도가 서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낙동강 수질 문제를 놓고 대립하는 것 말고도 새로운 갈등거리가 생긴 것이다. 대결은 치열했지만 두 군데 모두 낙제점을 받고 탈락했다. 지금도 양쪽 모두 신공항이 안 생기면 마치 경상도가 낙후지역으로 전락하는 듯한 인상을 주려고 안달이다.

어떤 결정에 분쟁 당사자 모두가 반발하면 대개 그 결정은 공평한 경우가 많다. 반면 한쪽은 좋아하고 다른 쪽은 싫어하면 그것은 편파적일 확률이 높다. 대구나 부산이나 모두 불평하는 것을 보면 아마 신공항 건설계획 철회는 공정한 결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 돈으로 자기 고장에 편의시설을 세운다니 이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공약을 함부로 깨뜨리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사람도 많지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선거공약이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면, 그 약속을 지키는 대가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문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신뢰의 상실이 어느 정도인가에 달려 있다. 물론 국정이 마비될 정도의 심각한 신뢰의 손상이 있다면 공약은 마땅히 지켜져야 한다.

“군주는 자신이 군주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한 약속을 파기할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한 말이다. 역시 마키아벨리다운 발언이다. 그러나 잘 살펴볼 일이 있다. 군주 자신의 개인 이익을 위하여 약속을 파기하는 것을 마키아벨리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국익을 위하여 내린 고육지책이라면 용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국익에 실제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익을 위하여’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 정치가들을 현실세계에서 너무도 많이 봐왔다. 그것은 분명 비극이다. 그것은 마키아벨리를 자기에게 맞춰 악용한 사례다.

외양간을 고칠 절호의 기회는 소를 잃고 난 직후다. 이번 신공항 건설계획 파기라는 사건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약속은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은 아닐 게다.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공사 비용을 적절히 공동 부담해야 한다’거나 ‘지키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되는 약속은 솔직하게 못 지키겠다고 선언하는 게 용기 있는 일이다’ 정도가 아닐까.



김형철 연세대 졸업 뒤 시카고대에서 철학박사를 받았다.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리더십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한국사회의 도덕개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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