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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만 하면 집착 강해져 오히려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오감집중 명상법이란 어떤 것입니까.
“제 명상법이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예로부터 있었던 명상법을 다소 가다듬어 신체 감각을 분명히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숨을 들이쉬면 코를 거쳐 목을 통해 신체 안으로 들어가는 감각이 있지요. 그 감각을 느낌으로써 신체에 의식을 집중해 나갑니다. 호흡을 느끼는 것에 마음의 중심을 두기 때문에 잡념이 떠올라도 거기 휩쓸리지 않게 됩니다. 마음의 절반은 생각에 뺏겨도 나머지 절반은 호흡 안에 떨어져 있을 수 있으므로 마음을 사고와 격리시켜 사고를 객관시한다는 것이 기본 원리죠.” 그의 ‘오감집중 명상법’은 ‘검증할 수 있는 것 이외에는 믿지 않는다’는 원시불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오로지 명상하고, 명상을 통해 실감함으로써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는 현실에 마음을 밀착하고 살게 된다는 것. ‘스스로를 의지하라, 자립하라’는 석가의 가르침을 따라 타자나 어떤 가치관에 예속되지 않고 자립해서 강하게 살아나가는데 가치를 두고 있다.

『생각 버리기 연습』이어 신간 『화내지 않는 연습』낸 고이케 류노스케 스님


-스님은 원시불교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했는데, 기본으로 삼고 있는 사상은 어떤 것인가요.
“제 자신은 아무것도 신봉하지 않고, 불도를 종교로서 보지도 않습니다. 어지러운 현대에서 잘 살아가기 위한 ‘도구’로 쓸 만한 요소를 불도에서 도출해 현대인에게 전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드라이한’ 접근방식이 종교에 매달리는 의존성을 만들지 않아 좋습니다. 사상이라고 할 만한 것도 특별히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모든 사물을 “그것이 고통을 늘리는 것인가, 고통을 줄이는 것인가”라는 기준으로 판단해 고통을 증가시킨다면 버리고 고통을 감소시킨다면 취하는 것 정도입니다. ‘사상’보다는 실제로 즐겁게 살기 위한 ‘연습’이나 ‘실천’을 소중히 합니다. 분노가 솟으면 분노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에 대해 인식하고 그것을 버립니다. 그렇게 마음을 어지럽히는 쓸데없는 것을 줄임으로써 밝고 상쾌한 마음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초월적 존재를 신봉하는 종교는 시대착오적’이란 입장인데, 이번 대지진처럼 사람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신에게 의존하려고 합니다.
“석가의 가르침에는 하나님도 부처님도 없습니다. 석가는 검증 불가능한 것에 관해서는 전부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있다면 자기 마음을 단련하라’고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있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에 대해 벌을 내렸다면, 그는 지극히 폭력적이고 제멋대로인 번뇌투성이의 존재가 아닐까요. 자기를 믿지 않는다고 지진을 일으켜 대량 학살하는 존재가 만일 있다면 히틀러 수준의 포악한 독재자, 신이라기보다 악마겠지요. 중요한 것은 절대자라는 환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연약한 자신의 마음을 단련해 자신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동일본 대지진에 대처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재해를 당한 사실’과 ‘그것을 머릿속에서 슬픈 일로서 가공하는 것’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으니 ‘이미 일어난 일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마음의 2차 피해를 보지 않도록 컨트롤해야 한다’는 논지다.

-마음의 2차 피해를 보지 않도록 컨트롤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불도에서는 우리의 마음이 대강 다음과 같은 반응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1)오감을 통해 정보를 입력한다 (2)그 정보를 기억의 필터에 비추어 해석한다 (3)그 해석에 근거해 쾌감 내지 불쾌감의 신경자극을 느낀다 (4)그럼으로써 감정적이 된다. 예컨대 (1)지진의 뉴스영상이 눈에 들어온다 (2)그것은 지금까지의 재해에 비해 대단한 것이라고 순간적으로 해석된다 (3)고통의 신경자극이 생긴다 (4)불안하거나 슬퍼진다 등. (1)~(4)의 프로세스를 통해 ‘뉴스라는 현실’을 근거로 ‘불안이나 슬픔이라는 뇌 내의 비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깨달으면 (4)의 감정적 반응이 사라져 갑니다. 요는 ‘현실의 정보’와 ‘뇌 내의 정보가공’을 나누어 후자를 진정시키는 일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더라도 어두운 기분에 빠지려는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자 노력한다면 마음과 신체도 금방 원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오락이나 예술을 즐기는 마음, 과도한 경제적 번영 등이 지금은 필요 없다는 자숙의 분위기가 일본 내에서 팽배하지만 그런 ‘잉여물’들이 원래 정신적 행복에 불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일시적 자숙이 아닌 문명의 방향성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고 했는데.
“‘행복해지기 위해 경제성장을 계속해야만 한다’라는 강박관념 아래 경쟁을 계속하고, 결과적으로 행복은커녕 우울증을 앓는 사람을 양산하는 사회가 돼버렸습니다. 바쁘게 움직이지만, 결과적으로 마음이 황량하고 불안정해져 조금도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과도한 쾌감을 추구해 ‘갖고 싶은 것’을 대량생산, 대량소비하는 사회모델은 이제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욕망을 자극하는 것을 만들거나 소비하기보다 정말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생산, 소비하는 일에 집중해 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농업이나 의식주에 관한 것이겠지요.”

-자의식 과잉이 스트레스의 원흉이라며 ‘자기만의 것을 찾으라’는 오리지널리티를 강요하는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개성을 최고로 여기는 시대적 흐름에서 본다면 매우 독특한 의견인 것 같습니다.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많은 현대인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미미한 존재인 개인은 전혀 오리지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리지널이 아닌데 ‘오리지널이 아니면 살아가는 의미가 없다’고 매스컴이나 교육이 주입하고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타인과의 차이’를 만들고자 발버둥칩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너무도 작아 타인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이 괴로워 특별해 보이려고 무리하게 ‘평범한 사람이 사는 것과는 다른 상품’을 사거나 ‘평범한 사람이 듣는 것과는 다른 음악’을 듣고, ‘평범한 사람이 하는 일과는 다른 특별한 일’을 하려고 필사적이 되기 때문에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겁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타인과의 차이를 만들고자 하는 행위 자체를 모든 사람이 하고 있기 때문에 오리지널리티라는 사고방식 자체가 오리지널리티를 결여한, 더없이 진부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만.”

스님은 현대인의 일, 즉 직업에 관해서도 고정관념을 뒤집는 독특한 시각을 보였다. 현대인이 일하는 모티베이션인 ‘자기의 존재를 인정받는다’는 것도 일종의 번뇌로 보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오히려 집착이 많아져 행복해질 수 없고, ‘할 수 있는 일’ ’지금 해야 할 일을 그냥 하면’ 현실에서 행복감·충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지진 이후 침착한 대응의 이면에 활력 없음을 지적받는 일본 사회의 현실이 겹쳐져 흥미로웠다.

-꿈이나 야망은 다 쓸데없는 것일까요. 꿈 없이 현실에만 밀착된 삶은 시시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을 텐데요.
“‘재미있는 일’에 임하는 원동력은 뇌 내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이라는 쾌감 물질입니다. 그러나 일단 ‘나는 대단해!’라는 쾌감을 얻어 도파민이 발사되고 나면 바로 조바심이 생기고 침착함을 잃게 됩니다. 도파민의 쾌락은 순식간에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도파민이 주는 쾌락을 얻기 위해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고, 또 세우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죠. 이렇게 순간의 쾌감을 위해 항상 ‘조마조마 불안불안’ 하는 것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우리 아시아인들이 수입한 일하는 방식입니다. 그 방식은 우리가 침착하게 일하는 평상심이나 냉정한 판단력, 윤리성을 일제히 파괴해 버려 풍요로워야 할 많은 직장이 우울증 환자로 넘쳐나는 것입니다. ‘도파민’을 ‘행복’과 맞바꿔버린 현대인은 행복을 위해 일하면서도 실제는 도파민 분비 후의 허무함, 짜증에 지배당해 불행해져 버렸습니다.

그에 반해 야망이나 자존심 등과는 무관하게 몸을 확실히 움직여 담담히, 일정 리듬으로 집중해 일하면 마음이 안정됩니다. 이때는 도파민이 아니라 세로토닌 신경이 활성화돼 있는 것인데, 계속적으로 세로토닌이 발사되고 있을 때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은 안정돼 평온한 행복감을 맛보게 됩니다. 세로토닌 신경을 단련하려면 ‘같은 장소 왕복 걷기’ ‘반복해서 음식물을 잘 씹기’ ‘숨을 쉬고 뱉는 왕복감각에 집중하는 좌선’ 등이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야망’을 떠나 신체성을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행복감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습니다. 오히려 단순동작을 되풀이하는 직업이 이상적인 직업입니다.”

그는 ‘남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만(慢)’의 번뇌를 현대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스트레스 주범으로 간주했다.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누구나 정보를 발신하는 현상이 자의식 과잉, 자아 비대를 초래하지만 결국 그 안에서도 화제가 되는 것은 유명인이므로 욕망을 충족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분노, 주저, 부정적 자아만 비대해지는 매우 잔혹한 일이라는 것이다.

- SNS를 이용하면서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고, 또 재미없는 일에도 흥미 있는 척해야 하는 번뇌가 생긴다고 했죠. 이 또한 문명의 ‘잉여물’인가요.
“이러한 툴은 현대인의 ‘외로움’을 파고들어 마음의 균형을 교란시키는 성질이 있습니다. 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타인에게서 반응이 왔다, 인정받았다’ 타인과 소통했다’라는 쾌감이 생길 때마다 뇌 내에서는 도파민이라는 마약성 물질이 분비되고, 마약성 물질인 이상 반드시 중독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너무 빈번히 ‘모두에게 반응을 얻었다’라는 도파민의 뇌 내 발사를 계속하면 도파민 마약이 빠져나갈 틈이 없어져 서서히 조바심이 나고 침착함을 잃게 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아침과 밤에는 SNS를 하지 않고 몸을 움직인다’든지 ‘SNS에 한번 접속하면 다음에 접속하기까지 4시간 정도 간격을 둔다’는 룰을 정해 쾌감의 빈도를 줄여가면 좋습니다. 그러면 도파민이 발사되어도 그 독소가 빠져나갈 여유가 생겨 중독이 어려워집니다.”



고이케 류노스케
야마구치(山口)현 출생. 도쿄대 교양학부 독일지역문화연구과 졸업. 도쿄 세타가야(世田谷)구 쓰키요미지주지. 쓰키요미지와 아사히 컬처센터 등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원시불교 경전에 기반한 명상·좌선 지도를 하고 있다. 이 강좌들은 항상 만석으로 ‘가장 예약이 어려운 좌선교실’로 유명하다. 2003년 웹사이트 ‘가출 공간’을 개설하고 2003~2007년에는 절과 카페의 기능을 겸비한 ‘가출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매달 초 보름 동안은 묵언수행을 행하고 나머지 기간에 저술,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장례·법요는 집도하지 않는다.지난 3월 31일 일본에서 신간 『붓다에게 배우는 괴로워하지 않는 연습』이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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