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궁금합니다] 두 눈 잃은 그가 사막으로 떠난 이유

1982년 7월 20일. 그에겐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군에 입대한지 40일만에 수류탄 폭발 사고로 두 눈을 잃었다. 두 번에 걸친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시력을 회복할 수 없었다. 의병제대 후 고향으로 돌아온 날, 옆집 할머니는 "평생 집에서 해주는 밥이나 먹고 방안에 갇혀 살 팔자"라며 혀를 끌끌 차셨다. 비참했다. 그렇게 한 청년이 빛을 잃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기록 보유자 27명 중 유일한 장애인
사막의 섭씨 50도 모래바람, 남극의 혹한 바람도 장애인인 그에게 "장애 아냐"
인생 마라톤을 함께 달리는 아내와 두 아들, "언제나 보고 싶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송경태(50)씨. 1급 시각장애인인 그는 사하라·고비·아카타마 사막, 그리고 남극까지 각각 250km씩 총 1000km를 완주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27명만이 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 가운데 송씨는 유일한 장애인이다. 일반인도 하기 힘들다는 극한 마라톤에 도전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는 "그 순간만큼은 아무 걱정없이 달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수많은 사람들, 줄지어 서있는 자동차들, 외출 한번 하기도 벅찬 복잡한 도시에서 그에게 '달리기'란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그런 그에게 황량한 사막, 50도를 웃도는 더위와 뜨거운 모래바람은 장애물이 아니었다. 앞을 못보는 장애보다는 덜했다. 의지로 뚫을 수 있는 긴 인생 역정 속의 언덕 하나에 불과했다.















◇보이지 않는 눈이 장애일까, 사람의 마음이 장애일까?

첫 '달리기'는 98년 '춘천국제마라톤'이었다. "앞도 안보이는 사람이 무슨 마라톤이냐"며 사람들이 수군댔다. 안내견과 함께 5km 완주에 성공했다. 송씨는 "시력을 잃은 후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고 말했다. 뻥 뚫린 도로를 마음놓고 달릴 수 있어서 좋았다는 그. 그런데 그가 '사막'으로 발길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2005년 사하라 사막을 달렸던 그는 "내 안의 모든 교만함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추억했다. 그에게 극한 마라톤은 자신을 돌아보는 도구였다. 그래서 차례로 고비·아카타마·남극에 도전했고, 완주했다. 기록은 언제나 꽝이었다. 제한시간을 5분 남겨놓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그에겐 기록이나 순위가 목표는 아니었다. '완주'를 통해 삶의 의지를 찾고 싶었다. 결국 그는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잃었던 세상의 빛이 희망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아들 끌어안고 울며 달린 사막

그는 아내를 '천사'라고 표현했다. 제대 후 이모가 운영하는 백화점 의류매장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가 쓴 시 '삼 일만 눈 뜰 수 있다면'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첫 날은 제일 먼저 사랑하는 아내 얼굴을 보고 싶다. 25년 전, 앞 못 보는 남편 만나 속이 다 새까맣게 타들어가도 묵묵히 가정을 지켜준 천사의 얼굴을 꼭 한번 보고 싶다' 아내를 향한 그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두 아들은 극한 마라톤에 함께 해준 고마운 파트너다. 큰 아들은 사하라 마라톤 당시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아버지의 완주를 지켜봤다. 작은 아들은 아카타마 마라톤 당시 옆에서 함께 달렸다. 두 사람은 세계 최초로 아카타마 사막을 완주한 '부자(父子) 마라토너'로 기록됐다. 결승점 도착 후, 아들이 울면서 말했다. "난 아빠가 이렇게 멋있는 사람인지 몰랐어" 두 부자는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는 "가족은 내가 달릴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허물 벗듯 변신하는 이유

의외로 그의 직업은 한 두개가 아니다. 2000년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도서관을 건립했다. 전자도서·점자책·오디오북 등을 개발해 시각장애인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왔다. 2001년엔 장애인에게 필요한 정보나 기사들을 정리해 장애인 신문을 발행했다. 한번씩 허물 벗듯 변신할 때마다 늘 한계에 부닥친 건 물론이다. 그래서 '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을 돕는데 좀 수월할까'해서다. 2006년 전주시의원에 출마했다. 덜컥 당선됐다. 그는 여느 지자체의 시의원과 달리 당리당략을 몰랐다. 그래서 소신있게 일할 수 있었다. 장애인을 위한 제도 개선과 인권운동에 앞장설 수 있었던 이유다. 최근엔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저서 '신의 숨결 사하라'를 출판했다. 직업이 많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이 모든 것이 내가 아닌 '나와 같은' 이들을 위한 것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혜은 기자 yhe1119@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