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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13> 하동 토지길





꽃 그늘에 누워 달게 한잠 자고 싶어

벚꽃 피는 계절이 돌아왔다. 전국의 허다한 벚꽃 명소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벚꽃 길은 누가 뭐래도 경남 하동 땅에 있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올라가는 1023번 지방도로는 수령 많은 벚나무가 아예 터널을 이루고, 화개장터에서 악양까지 섬진강 따라 이어진 19번 국도는 벚꽃 피는 계절마다 1년 중 단 한 차례 극심한 교통 정체를 빚는다.



그러나 하동 벚꽃놀이는 여태 꽃놀이일 따름이었다. 벚꽃 그늘 드리운 화개장터 어느 주점에서 진탕 술 또는 봄에 취하거나, 자가용 타고 19번 국도 왕복하며 꽃길 드라이브나 즐기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두 발로 벚꽃을 맞을 수 있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가 ‘하동 토지길’을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로 지정하면서 섬진강 벚꽃놀이도 걷기 여행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세상사 어느 것도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 벚꽃 그늘 걷고 싶어 하동에 내려갔던 지난주, 벚꽃은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았다. 대신 보름 정도 늦게 만개한 매화 향기만 흠뻑 마시고 돌아왔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하동 토지길은 드넓은 평사리 들판을 걷는 것으로 시작한다. 들판 복판에 서 있는 저 소나무 두 그루는 일명 부부송이다. 키 작은 소나무를 서희나무, 키 큰 소나무는 길상이 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 『토지』가 구축한 가상 왕국









지난주 하동에 내려갔을 때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대신 매화는 활짝 피어 있었다.









최참판댁 풍경. 주말엔 2만 명 이상이 몰리는 관광명소가 됐다.









고소산성에서 내려다 본 평사리 들판.









하동 토지길 2코스에 있는 갈대밭. 키가 3m가 넘어 한낮에도 그늘이 깊다.









최참판댁에서 명예참판으로 일하고 있는 김동언씨. 손수 녹차를 내주었다.



하동군이 내세우는 명물이 있다. 악양면에 있는 한옥 ‘최참판댁’이다. 최참판댁은 익히 알려졌듯이 고(故) 박경리(1926∼2008)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 1부의 주요 무대다. ‘하동 토지길’이란 이름도 그 한옥 덕분에 생겼다. 최참판댁이라는 랜드마크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하동이 『토지』의 고장으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최참판댁에는 해마다 50만 명이 넘는 유료 관광객이 입장한다.



 그러나 여기엔 함정이 있다. 박경리 선생은 『토지』를 쓰기 위해 한 번도 하동을 방문한 적이 없다. 『토지』에 나오는 최참판댁은 그러니까 허구다. 평사리는 물론이고 악양면 전체에서 최치수라는 인물은 없었다. 서희도, 길상이도 없었다. 오롯이 선생의 창작물이다. 선생은 소설 속 배경에 어울릴 만한 장소를 지도 펼쳐놓고 찾다가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일대를 발견했던 것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버젓이 들어앉아 있는 저 한옥의 정체는 무엇일까. SBS에서 드라마 ‘토지’를 방송하며 2004년 지은 세트장이다. 하동군도 처음엔 최참판댁을 TV 세트장이라고 알렸지만, 지금은 저간의 사정을 지웠다. 그랬더니 지금 전혀 뜻밖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사람들이 최참판댁을 믿기 시작한 것이다.



 최참판댁 사랑채에 한복 차림으로 책을 읽는 양반이 한 명 앉아 있다. 이름하여 명예참판. 관광객에게 말벗이나 해주는 현장 직원이다. 보통 3명이 교대근무를 하는데, week&이 찾아갔을 때는 김동언(55)씨가 앉아 있었다. 그를 보고 관광객이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어디 최씨세요?” “몇 대 손이세요?” “저런, 혼자만 계시네. 정말 최씨 집안이 망했나 보네.”



 하동 토지길 1코스가 최참판댁 들어선 평사리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다니는 것이다. 평사리공원에서 평사리 들판을 가로질러 최참판댁을 구경하고 악양면 안쪽 마을까지 갔다 오는 코스로 구성돼 있다. 길바닥에 그려진 노란색 화살표가 하동 토지길을 인도하지만, 굳이 화살표를 따르지 않아도 무방하다.



#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아랫길



평사리공원에서 화개장터까지 이어지는 19번 국도는 들머리에서 적었듯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게 예쁜 길이다. 벚꽃이 없어도 예쁜 길이다. 왕복 2차로 도로가 섬진강과 어깨 걸고 구불구불 10㎞ 가까이 이어져 있다. 하나 불행히도 이 길은 사람의 길이 아니다. 자동차의 길이다. 도로 폭이 워낙 좁아 양 옆의 벚나무 가로수를 뽑지 않고서는 인도를 낼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하동군에 예산 4억원을 내려보내며 지시한 내용이 바로 이 구간을 어떻게든 사람이 걸을 수 있게끔 조치하라는 것이었다. 하동군은 고심 끝에 19번 국도 바로 아래 탐방로를 설치했다. 19번 국도 바로 아래라면 섬진강 백사장이다. 이 백사장을 따라 탐방로가 이어진다. 그리하여 하동 토지길 3코스는 바로 윗길에 버금가는 낭만적인 아랫길이 되었다.



 3코스는 전국 어느 트레일과 견주어도 빠지지 않는다. 높이 3m가 넘는 갈대밭을 지나기도 하고, 은색 모래밭에 발자국을 남기기도 하고, 야생화 흐드러진 제방을 걷기도 한다. 섬진강은 오후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고, 벚꽃 피면 하늘에서 흰 꽃잎 흩날리고, 곡우 지나면 아낙들이 부지런히 찻잎을 딴다. 하나같이 낭만적이고 그림 같은 풍경이다. 그 풍경을 3코스가 고스란히 연출한다.



 3코스가 끝나는 지점에 화개장터가 있다. 화개를 지나면 전라도 땅(구례)이고, 섬진강을 건너도 전라도 땅(광양)이다. 하필이면 이 곡절 많은 경계의 지명이 화개(花開)다. 세상의 모든 경계엔 꽃이 핀다는 어느 시인의 노래는 여기 화개에서 지어졌나 보다. 하나 화개장터는 되바라진 관광지의 꼴이다. 장터라기보단 유흥가에 가깝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일어섰다.



 답사에 동행한 하동문인협회 하아무 사무국장이 채 피지 않은 벚꽃 봉오리를 한참 쳐다보더니 “일주일만 늦게 왔더라면 좋았을 뻔했다”며 아쉬워했다. 그가 말한 일주일 뒤가 오늘이다. 벚꽃을 마음에 품고 있다면, 서두르시라. 벚꽃은 어느 날 아침 문득 피었다가, 어느 날 아침 훌쩍 가버린다. 바람 타고 훨훨 날아가 버린다.



●길 정보











하동군은 우리나라에 6개밖에 없는 슬로시티다. 그러나 여태 하동을 관광하는 방법은 슬로시티와 거리가 멀었다. 하동 토지길이 그나마 하동을 느리게 경험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하동 토지길은 모두 3개 코스가 있다. 최참판댁을 둘러보고 나오는 1코스(18㎞),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를 다녀오는 2코스(13㎞), 평사리공원에서 화개장터까지 19번 국도 아래 탐방로를 걷는 3코스(9.5㎞)다. 이 중에서 1코스는 평사리 들판에서 최참판댁 가는 길을 추천하고, 3코스는 코스 전체를 추천한다. 최참판댁 입장료는 성인 1000원, 청소년 800원. 평사리공원 주차비 1000원. 하동 토지길에 관한 정보는 평사리문학관. 055-880-2374, 055-882-2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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