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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한 방울도 싫다” 우산 판매 7배 … 불안과 불신 사이





2011년 4월 7일 방사성 비 오던 날



우산·우비에 마스크까지 대전시 관저동 선암초등학교 앞에서 7일 아침 한 엄마가 등교하는 아이의 우비를 고쳐 입히고 있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7일 대한민국에 봄비와 함께 ‘방사능 불안감’이 내렸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27일 만이다. ‘방사성 비’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국민의 가슴속에 빗물처럼 스며들었다.



 #등·하굣길 걱정 … 교실 곳곳에 빈자리



 이날 오전 10시 서울 강남유치원. 119명 중 19명이 결석했다. 7세 반은 34명 중 7명의 자리가 비었다. 20%가 넘는다. 등·하원길 방사성 비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대전시 서구 갈마동에 사는 임희진(40·여)씨는 이날 출근을 미뤘다. 아들을 유치원 버스에 직접 태우기 위해서다. 평소엔 아래층 친구에게 배웅을 부탁했다. 그러나 오늘만은 아들이 비옷을 벗어 버리지나 않을지, 우산은 제대로 쓰는지 직접 눈으로 봐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학교장 재량 휴업을 실시한 경기도에서는 이날 초등학교와 유치원 등 126곳이 휴업을 하고, 43곳이 단축수업을 했다. 휴업을 하지 않은 수원시 영통초등학교 앞은 자녀들을 등교시키러 온 승용차들로 붐볐다.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에는 “경기도처럼 휴업을 해 달라”는 요청이 80여 건 올라왔다.



 #출근시간대 편의점 우산 동나



 이날 낮 12시. 경기도 안산의 회사원 이양희(31·여)씨는 우산을 펼쳐 들었다. 사무실에서 50m 떨어진 구내식당에 가기 위해서였다. 평소 이날 정도 가랑비에는 후다닥 뛰어가곤 했다. 이씨는 “오늘은 방사능 때문에 불안해서…. 동료들도 다들 한 방울도 맞기 싫다더라”고 말했다.



박지영 세븐일레븐 소공점장은 “손님들이 이번 비는 절대 맞으면 안 된다면서 우산을 사 갔다”고 말했다. 이날 세븐일레븐은 평소 비 올 때보다 일곱 배 많이 우산을 준비했지만 일부 점포에서는 이미 출근시간대에 우산이 동났다.



 실외에서 비를 맞으며 일해야 하는 이들의 불안은 더 컸다. 인사동에서 관광객 통역을 하는 서울시관광협회 직원 배진아(26·여)씨는 성인 두 사람이 쑥 들어가는 크기의 우산을 쓰고 있었다. 배씨는 “한 시간 간격으로 손을 씻고 있다”고 했다. 통신 수리기사 박정근(46)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우비 하나로 몸을 가렸다. 박씨는 “불안하지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왔다”고 했다.



 #논 대신 하우스에 볍씨 뿌린 농민들









정수장에 천 덮고 휴교도 ‘방사능 비’ 우려로 7일 경기도 하남시 광암정수장 직원들이 빗물을 막기 위해 방수천으로 침전지를 덮고 있다(사진 위). 경기도 안산시 경수초등학교에 휴교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형수 기자]·[연합뉴스]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에서 벼농사를 짓는 이기형(49)씨는 “사람들이 쌀에 방사성물질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떡하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하필 지금은 못자리 시기다. 모내기를 하기 전에 볍씨를 뿌려 모를 기를 때다. 이씨는 평소처럼 논에다 볍씨를 뿌리는 대신 비닐하우스에서 못자리를 하기로 했다. 동네 주민의 70%가 이씨처럼 하우스 못자리를 택했다.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에서 벼농사를 짓는 이재영(52)씨는 “못자리 때를 17일로 늦췄지만 그때도 방사성 비가 오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했다.



#인터넷 들썩인 ‘체르노빌 수퍼 메기’ 괴담



 방사성 비에 대해 가장 큰 불안을 나타낸 곳은 인터넷 세상이었다. 1986년 원전 폭발이 일어난 체르노빌 인근에서 나타났다는 4m짜리 ‘수퍼 메기’와 1m짜리 거대 지렁이에 대한 유튜브 동영상이 급속도로 퍼졌다. 보통 메기나 지렁이의 열 배가량 크기에 네티즌들은 “방사능이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켰나 보다” “일본에도 저런 돌연변이 종이 나타나게 되나”하며 술렁였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방사성 비가 화제였다. 트위터 사용자 apf****는 “우산을 접을 때 손으로 만져도 되느냐”고 걱정했다. lav*****은 “비를 피해 집에 있어도 수돗물은 써야 하지 않느냐”며 “방사성 비를 방사능 수돗물로 씻는 셈”이라고 말했다.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는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이 우산 없이 밖에서 비를 맞아 보고 다시 발표해라” “총리가 정부청사 앞 광화문광장에서 비 맞으면 국민이 믿을 거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한·일 정부에 대한 불신이 불안 부추겨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이날 자정부터 오전 3시까지 제주도에 내린 빗물 속 요오드 농도가 2.02Bq/L(베크렐)이었다”며 "건강에 무해한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같은 농도의 물을 2L씩 1년 동안 먹어도 연간 방사선량은 0.03mSv(밀리시버트)로 연간 허용량 1mSv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재기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경기도교육청에서 학교장 재량으로 휴업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지나친 조치”며 “(오늘 내린 비는) 위험이 아예 없고 아이들에게도 안전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전문가들이 “안전하다”고 거듭 발표했지만 봄비에 섞인 불안이 대한민국을 잠식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한 것,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위험에 대한 당연한 공포와 ▶일본과 한국 정부가 현 상황을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데 대한 불신을 꼽았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0%에서 0.1%가 됐을 때 느끼는 불안감이 0.1%에서 0.2%가 됐을 때보다 훨씬 크다”며 “평소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방사능 공포가 생겼기 때문에 더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안종주 박사는 “일반인들은 방사능처럼 잘 모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위험 정도를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보다 과도하게 공포를 느낀다”고 설명했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은 정부가 뭔가 숨기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것”이라며 “처음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하다가 계속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 전문가나 정부가 설명하면 어느 정도 신뢰를 받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과잉반응으로 여길 게 아니라 정부가 사회적인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불안을 줄이는 핵심”이라고 말했다.



글=구희령·심서현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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