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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정치의 지진아







박승희
국제부문 차장




자정쯤 시작된 그들의 전화통화는 새벽 한 시를 지나고 있었다.



 “난 지쳤어요. 빚도 갚아야 하는데 국무장관을 하면서는 그럴 수가 없어요. 이젠 쉬고 싶어요.”



 “당신이 그런 말을 하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경제가 훨씬 안 좋습니다. 아마 2년 동안은 내가 경제 문제에 집중해야 할 겁니다. 나는 일을 맡겨놓고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게 당신이고요.”



 “나는 남편을 통제할 수 없어요. 그가 하루 걸러 한 번씩 (선거 유세에서 오바마를 비판하며) 한 얘기를 우리는 해명해야 할 겁니다.”



 “압니다. 하지만 그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됐습니다. 당신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그들의 대화에는 허심탄회함과 각자의 취약성이 솔직하게 교환됐다. 격렬한 전투를 치르면서 쌓였던 원한과 분노가 둘 사이에서 눈 녹듯 사라졌다….



 미국의 정치담당 기자 존 하일먼과 마크 핼퍼린이 쓴 『게임 체인지』라는 책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당선인이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으로 공식 지명하기 전날 밤 ‘사과와 포용’을 어떻게 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정치인이 가장 하기 힘든 게 사과, 그리고 포용이다. 둘 다 ‘내 편이 아닌 사람’을 상대하는 기술이라서다. 사과는 자신의 선택과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나를 낮춰야 가능한 행위다. 포용은 남의 생각과 선택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실천하기란 그만큼 어렵다. 그래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과연 진심인지, 아니면 가식인지를 눈여겨보기 마련이다. 성공한 사과와 포용이 극적인 반전까지 이어져 대상이 되는 정적(政敵)이나 대중을 감동시키는 건 그 때문이다.



 한국 정치가 흔들거린다. 그 복판에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있다. 4·27 재·보선 공천 과정은 관중을 짜증나게 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자기들끼리 A가 낫네, B가 낫네를 주물럭거렸다. 야당이라고 나을 건 없지만 대중의 눈금은 여권에 더 박하기 마련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동남권 신공항 기자회견도 사과가 목적이라고 해놓고, 후유증만 키웠다. "송구스럽다”는 발언 앞엔 “결과적으로” “개인적으로”라는 사족이 얼룩덜룩했다. 제 정책과 국책사업을 놓고도 청와대·한나라당은 교향곡 대신 독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15년 전 김영삼 대통령(YS)은 적어도 ‘내 사람 만들기’에서만큼은 배울 점이 많은 스승이었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둔 어느 날, YS는 무소속 박찬종 의원을 청와대로 초대했다.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시내 한 호텔에서 기자와 만난 박 의원은 자신을 입당시키기 위함이라고 직감하고 있었다. 그는 “들어갈 때 들어가도 당장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 해 전 치러진 서울시장 선거에서 지지율 1위인 자신을 겨냥해 정원식 전 총리를 여당 후보로 공천, 민주당 조순 후보에게 패한 데 대한 서운함이 그에겐 여전했다. 그러나 웬걸. 점심식사만 하고 오겠다던 박 의원은 오후 춘추관(청와대 출입기자실)에서 입당 기자회견을 했다. 그날 밤 박 의원은 어쩔 수 없었다며 겸연쩍어했다. 오찬 장소부터가 파격이었단다. 관저였다. 마주 앉아 둘만의 점심을 먹는데 YS는 말없이 이 반찬 저 반찬을 젓가락으로 집어서는 “이것 한번 먹어봐. 내가 박 동지 좋아한다 해서 맹글라고 했다”며 밥 위에 얹어 주더란다. 감동한 박 의원의 손을 잡고 YS는 “그동안 미안했다”고 했고, 박 의원은 ‘당장’ 기자회견을 하고 말았다는 거였다. 박 의원은 이후 집권당의 수도권 선대본부장이 돼 선거 승리를 이끌었다.



 현 집권세력의 삭막하고 짜증나는 정치가 한국 정치의 하향 평준화를 계속 끌고가고 있다. 정치란 주가(株價)를 언제까지 수렁으로 끌어내릴 참인가.



박승희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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