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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경영] 제 2화 금융은 사람 장사다 ③ 후계자 육성은 CEO의 책임





“미스코리아 진을 뽑듯이 후계자 정하면 뒤탈 없다”



2005년 하나은행장 이·취임식에서 김승유 전 행장(오른쪽)과 김종열 신임 행장이 손을 잡고 있다.





나는 하나은행장 자리를 떠나면서 후임자에게 인수인계할 것이 거의 없었다. 매일 김승유 전무와 모든 일을 상의하며 일해 왔기 때문이다. 김 전무와 나는 모든 면에서 이심전심으로 통했다. 김 전무를 포함해 좋은 후배들과 일한 덕에 나는 은행장 직을 즐겁고 행복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그만두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최고경영자(CEO)도 있다. 운이 따르지 않는 경우다. 내가 알기론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하나은행장 시절이 그랬다.



 2001년 3월 주총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김승유 행장이 나를 찾아왔다. “이번 주총 때 행장을 그만두겠습니다. 이미 이사들에게도 다 얘기했습니다.” 신진들에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 김 행장의 뜻이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하나은행 사외이사인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나를 보자고 했다. 그 자리엔 유상부 당시 포스코 회장도 함께 있었다.



 “김승유 행장이 그만두겠다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혹시 윤 회장과 무슨 언약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나는 이사들에게 솔직한 내 생각을 밝혔다. “언약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김 행장이 은행의 장래를 깊이 생각한 끝에 내린 결단이니 그 뜻을 존중해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사들은 김 행장의 사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행장은 물러날 뜻을 밝히면서 후임 행장을 추천했던 모양이다. 내가 김 행장을 후임자로 천거했듯이 그 역시 괜찮은 후임자가 자신의 뒤를 잇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때 이사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거들었다. “조직의 장이라면 최선의 실적을 내고자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후임자도 최고의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골라 추천하기 마련입니다. 그동안 김 행장의 판단이 실패한 적이 없었다면 이번에도 그의 의견을 들어주는 게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사들은 미더워하지 않았고 김 행장 체제를 좀 더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결국 김 행장은 그때 물러나지 못했다.



 그 뒤로도 김 회장이 하나은행장 자리를 스스로 그만두려 한 적이 있었다. 2002년 서울신탁은행과의 합병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의 일이다. 김 행장이 나를 찾아와 사임의사를 밝혔다. “이번 합병작업이 마무리되면 은행의 경영구도가 달라지므로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다가오는 주총 때 물러날 생각입니다.”



 이때는 내가 나서 적극 말렸다. “배를 타고 가다가 강 한가운데서 선장이 그만둔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김 행장의 사임은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가는 일이지만 공인으로선 무책임한 일입니다. 합병 후 뒤처리를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다 정리한 다음 거취를 정하는 것이 도리예요.”



 결국 김 행장은 2005년에야 8년 동안 지켜온 행장 자리를 김종열 현 하나금융 사장에게 넘겨주고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됐다.



 후배들 입장에선 ‘윗사람이 그만 물러나고 나한테 맡기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후임자를 정한다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바깥의 평을 들어보면 ‘그 사람으로 되겠나’ 하는 부정적 평가가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윗사람에겐 잘하지만 아래에서 들려오는 평가는 기대 이하인 사람도 리더의 자격이 없다. 내부와 외부, 상부와 하부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야 리더의 자격이 있다. 소위 신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늘 “인사는 미스코리아 진을 뽑듯이 하면 된다”고 말한다. 미스코리아 진을 뽑을 땐 90% 이상의 사람이 ‘아, 저 사람이면 진이 될 만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을 뽑는다. 그게 바로 신망이다. 내부에서뿐 아니라 외부에서 보기에도 ‘그 사람 정말 잘하더라’ 하는 말이 나오면 자연히 그 사람이 올라가기 마련이다.



 될성부른 인재를 일찌감치 몇몇 점지해 두고 경쟁을 시키고 협력도 하게 하면서 후계자 재목을 키우는 것은 CEO의 중요한 역할이다. 마땅한 후계자가 없다는 것은 1차적으로 CEO의 책임이 크다. 욕심 때문이든, 타이밍을 놓쳐서든 그게 잘되지 않아 물러나지 못하는 CEO라면 복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후계자가 다 갖춰졌을 때 물러나야 하는데, 그게 바로 복이다. 나는 지금도 안심하고 행장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게 나의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윤병철 전 우리금융 회장

정리=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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