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노트북을 열며] 송영길 시장과 러시아 전함 깃발







정기환
경기인천취재팀장




1991년 10월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점퍼 차림의 한 한국인 청년이 심란한 표정으로 레닌 묘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동구권에 이어 소비에트 러시아마저 해체돼 마르크스·레닌의 동상이 무너져 내리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송영길 인천시장의 젊은 날의 한 초상이다. 고교 때 5·18 현장을 목격하고 대학 재학 중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1985년 감옥을 나와서는 인천에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러시아 혁명사』(김학준)나 『러시아 지성사』(이인호) 등이 시대를 풍미하고 철 지난 혁명가들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사회주의 종주국의 몰락은 청천벽력이었다. 청년 송영길은 제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며 비행기에 올랐다. 프라하·바르샤바를 거쳐 모스크바로 들어갔다. 귀로에는 레닌의 성(城)이라는 뜻의 레닌그라드도 들렀다.



 인천에 돌아와 팸플릿 형태의 여행기를 발표했다. 한때의 레닌 추종자답게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정부나 당이 시장을 대체할 수는 없다. 김일성 주석의 동상들도 어떻게 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빠지려면 혼자 빠질 것이지”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인천에서 짐을 싼 송영길은 사법시험 준비에 들어간다. 한 젊은이의 인생을 바꿔놓은 러시아 기행이었다.



 그런 그가 인천시장이 되어 20년 만에 다시 러시아 땅을 밟았다. 가는 곳마다 칙사 대접을 받았다. 107년 전 인천 앞바다에서 침몰한 러시아 전함의 함기(艦旗)인 성 안드레이기를 앞세우고 갔기 때문이다. 바랴크함은 러일전쟁 초기 일본 해군의 공격을 받은 후 항복 대신 자폭을 택했다. 이 전함과 수병들은 러시아의 영웅이 됐다. 이번 방러 때도 이 깃발은 ‘러시아의 영혼’으로 떠받들어졌고 어린 학생들은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바랴크함 깃발은 2002년 인천시립박물관 지하 수장고에서 발견됐다. 러시아는 처음엔 소유권을 언급하며 반환을 원했지만 여의치 않자 장기임대를 요구해왔다. 2009년에는 9개월간 러시아 전역을 순회하는 전시회에 대여되기도 했다.



 송 시장이 취임하면서 얘기는 급진전됐다. 지난해 11월 그는 서울의 러시아대사관에서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만나 이 깃발을 2년간 전시 임대해 주기로 합의했다. 이어 이 깃발은 인천항에 정박 중이던 러시아 순양함 바랴크함에 실려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러시아 국영방송은 이를 전국에 생중계했다. 송 시장은 이번 방러 중 계약연장 등을 통해 영구임대도 가능하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러 간 관계개선 등의 명분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는 너무 가벼이 넘겨준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높다. 바랴크함 깃발은 한 세기 전 열강들의 각축에 짓눌려 국가의 명운이 꺼져가던 시절의 슬픈 유산이기에 우리에게도 귀중한 문화재라는 것이다. 내년의 대통령 선거에 활용하려는 러시아 지도부의 계산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 하는 송 시장의 의도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TGV를 사주고도 임대반환에 20여 년이 걸린 프랑스의 외규장각 도서와 비교하면 너무 순진한 거래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기환 경기인천취재팀장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