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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이적 “소극장은 나의 무기”

소극장은 드러냄의 공간이다. 좁은 공간 탓이다. 작은 실수도 감추기가 쉽지 않다. 무대 위 숨소리조차 다 드러난다. 어영부영 공연에 임했다간 큰코다친다. 가수들이 소극장을 선뜻 택하지 못하는 건 그래서다.



제 음악에 어지간한 자신감 없이는 도전하기 힘든 무대다. 그런데 이 남자, ‘소극장 콘서트’를 슬쩍 제 브랜드로 만들었다.



싱어 송 라이터 이적(37). 2004년 겨울 ‘적군의 방’이란 타이틀로 소극장 콘서트를 맨 처음 시작했다. 2007년 여름엔 대학로에 있는 한 소극장에서 스물다섯 차례 연속 콘서트를 펼쳤다. 공연마다 400석 티켓이 매진됐다. 소극장 공연으로만 1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모았다.













그의 말마따나 “대중음악계에서 흔치 않은 일종의 사건”이었다. 이적의 소극장 공연은 해를 거듭할수록 그 몸집을 불리고 있다. 지난달에도 600석 규모의 극장(서울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세 번째 소극장 콘서트를 열었다. 모두 여섯 차례 공연이 예매 시작 10여 분 만에 매진됐다. 15일부터는 총 11회에 걸쳐 앙코르 콘서트를 연다. 이 또한 벌써 티켓이 동났다. 올해 소극장 콘서트에도 1만 명이 넘는 관객이 다녀가는 셈이다.



그는 “관객과의 교감 면에서 소극장 공연을 따라올 공연은 없다. 가수도 관객도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무대”라고 했다.



이적의 소극장은 작지만 작지 않은 무대다. 악기 편성은 단출하다. 기타ㆍ베이스ㆍ드럼ㆍ키보드ㆍ피아노 등 최소한의 악기만 배치된다. 번쩍이는 특수효과도 없다. 그런데 풍성하다. 볼거리가 줄어든 대신 음악의 자리가 넓어져서다. 모든 노래를 가수가 직접 연주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이적은 소극장 공연에서 기타와 피아노를 번갈아 연주하며 노래한다.



최근 서울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열린 그의 소극장 콘서트 ‘사랑’에 다녀왔다. 이적의 피아노 연주로 시작된 공연은 소극장 특유의 담백한 음악들로 객석을 물들였다. 600석 규모의 극장에선 그의 숨소리마저 음악으로 스며들었다.



이를테면 이적의 소극장은 음악으로만 가득 들어차 있다. 대중음악계에 통용되는 말 가운데 ‘이적은 공연이다’는 말이 있는데,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적은 공연을 통해 제 음악을 증언하는 뮤지션이다. 방송이나 앨범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이적 음악의 속살이 공연에서 드러난다. 더구나 그의 숨결마저 들리는 소극장 콘서트라면 그 음악적 체험의 진폭이 클 수밖에 없다.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6회에 걸친 소극장 공연을 마무리하고 전남 순천으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15일부터 서울 충정로 가야극장에서 열기로 한 앙코르 소극장 콘서트가 그를 채근하는 모양이었다. 당초 9회로 기획됐던 앙코르 공연이 전석 매진되면서 2회(21, 28일) 더 추가됐다. 이번에도 소극장 공연으로만 1만 관객을 훌쩍 넘어설 모양이다. 공연문의 1588-1555.













소극장, 관객과의 진한 교감



-소극장 공연을 열 때마다 전석 매진을 기록 중인데 ‘표가 안 팔리면 어쩌나’ 걱정해 본 적은 없겠어요.



“감사하게도 팬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니까요. 공연을 계획하면 관객들이 어느 정도 올 거란 생각은 드는데 그 다음이 문제죠. 제 공연을 보신 분들이 ‘공연 정말 좋았다’고 말해줘야 그게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소극장 공연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무엇보다 관객과의 교감이죠. 수천 명 관객이 있는 곳에서 공연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지만, 사적인 교감이란 측면에선 소극장을 따라가기 힘들어요. 극장 자체가 아담하니까 관객과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울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더 진하게 교감이 되거든요. 노래하면서 관객들 얼굴이 하나하나 다 보일 정도니까요.”



-음악적인 면에선 어떤가요.



“큰 극장에선 관객들이 멀리서 보이기 때문에 특수효과 같은, 보이는 장치들이 중요해요. 반면 소극장에선 그런 게 별로 필요가 없죠. 악기도 단출하게 하고 직접 연주도 하면서 공연을 할 수 있으니 한층 더 음악적으로 접근하는 공연이 될 수 있어요. 눈보다는 귀에 더 집중하는 거랄까요.”



태초에 학전이 있었다



1995년 데뷔한 이적에겐 음악적 원형과도 같은 공간이 있다. 서울 대학로에 있는 학전 소극장이다. 92년 어느 봄날 그는 이곳에서 고 김광석의 소극장 콘서트를 봤다. 200석 규모의 작은 극장. 그 위에 기타와 하모니카만 덜렁 메고 있는 자그마한 가수. 그런데 “그 작은 공간에서 넘쳐나는 음악적 에너지가 엄청났다”고 한다. “언젠가는 저런 무대에서 노래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그는 3년 뒤 실제 가수가 됐다. 가수가 된 이후 가끔 학전 무대에 설 때도 있었다. 지난달에도 학전 20주년 기념 공연에 정원영ㆍ장기하 등과 함께 섰다. 어쩌면 학전의 기억은 지금 그가 소극장 콘서트를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인지도 모른다.



-학전 무대에 서보니 어떻던가요.



“학전은 늘 떨리는 곳이에요. 아직도 김광석 소극장 공연이 생생하게 기억나거든요. 200석이 채 되지 않은 공간인데 사람들이 무대 위에까지 꽉 들어찼죠. 저도 아마 무대 위에 앉았던 것 같아요. 그 원형의 기억 때문인지 학전 무대에 설 때마다 많이 떨려요.”



-지금 소극장 공연을 할 때 당시 품었던 마음이 되살아나기도 하겠군요.



“그때 김광석 형이 혼자 기타치며 노래하고 하모니카 불고…. 정말 그게 공연의 전부였거든요. 그런데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더라고요. 공연이란 게 결국 한 사람의 기운으로 채워지는 거란 생각을 했죠. 한 가수의 세계를 느끼는 순간이 공연이고, 그 세계가 충실히 전달된다면 이 작은 무대에서도 정말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지금 제가 소극장 공연에 애착을 갖게 된 것도 그때의 기억 덕분이지도 모르겠어요.”



-‘이적은 공연이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적은 소극장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까요.



“하하. 그건 좀…. 제가 소극장을 워낙 좋아하긴 하지만 소극장으로만 너무 고정되면 제 음악적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소극장 공연을 주로 하긴 하지만 큰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것도 의미 있고 재미있는 무대라고 생각해요.”



-훗날 어떤 선배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저와 같은 방식으로 곡을 쓰고 노래하고 소극장 공연도 자주 하면서 음악 하는 뮤지션이 오래도록 살아남아 있는 게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는 길일 거예요. 피아노나 기타만으로 공연을 하는 것도 지금 생각 중인데 그렇게 음악만 해도 공연장을 채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 저와 같이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정강현 기자, 사진=뮤직팜 제공





[시시콜콜] 이적은 작은 것만 좋아할까



트위터로 소소한 얘기 나누기 즐겨 … “체육관 공연도 한번은 해봐야죠”












이적이란 이름을 떠올리면 퍼뜩 ‘소극장’이란 말부터 떠오른다. 그건 도리 없다. ‘이적 소극장 콘서트’란 말이 일종의 고유명사처럼 굳어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정말 그는 큰 극장에서 공연을 한 적이 없을까. 물론 있다. 종종 2000~3000석 규모의 공연을 하긴 한다. 전국 투어 콘서트를 펼칠 때다.



하지만 그 정도 규모라면 ‘대형 콘서트’라 말하긴 좀 민망하다. 싸이ㆍ김장훈 같은 가수는 기본이 회당 1만 석이다.



딱 한 번 그가 1만 석짜리 공연에 선 적이 있다. 김동률과 ‘카니발’이란 듀오로 활동하던 때다. 2008년 12월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공연을 열었는데, 1만여 석이 단숨에 매진됐다. 하지만 홀로 체육관 무대에 선 적은 한 번도 없다. 왜 그럴까. 그의 설명이다.



“너무 초대형 무대는 좀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에요. 이적이 체육관에서 공연을 한다고 하면 팬들이 어쩐지 어색해할 것 같기도 하고…. 카니발로 활동할 때는 관객 동원을 걱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체육관에서 공연을 했지만, 글쎄요, 혼자 한다면 어떨지…. 언젠가는 꼭 한 번 해봐야죠.”



‘소극장’이란 말이 선뜻 어울리는 이적답게 요즘엔 소소한 이야기를 트위터(@jucklee)로 나누는 걸 즐긴다. 팔로어가 13만 명에 육박할 만큼 인기도 많다. 그의 공연 소식은 그의 트위터에 가장 먼저 올라온다. 트위터를 타고 순식간에 공연 소식이 전해지다 보니 예매 시작 10여 분 만에 매진되는 건 다반사다. 지난해 전국 투어 콘서트를 할 때는 트위터에 공연 소식을 올리고 서너 시간 TV 프로그램 녹화를 마치고 나왔더니 전석이 매진된 적도 있었다.



정강현 기자



이적



-출생: 1974년 2월 28일



-학력: 서울대 사회학과



-데뷔: 1995년 패닉 ‘달팽이’



-주요 활동:



1997년 김동률과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 결성



1999년 솔로 1집 앨범 ‘Dead End’ 발매



1999년 6인조 펑크록 밴드 ‘긱스’ 결성



2003년 솔로 2집 ‘2적’ 발매



2005년 패닉 활동 재개



2007년 솔로 3집 ‘나무로 만든 노래’ 발매



2010년 솔로 4집 ‘사랑’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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