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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루쉰(魯迅), 대재난 그리고 역사 왜곡

지난 3.18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北京의 일본대사관을 방문 일본국민의 지진 피해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명하고 재난 극복을 위한 중국의 지속적 지원의사를 전달하였다. 또한 반일에 앞장 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펴 왔던 중국의 대학생들이 이번 지진에 희생된 일본인을 ‘인류애’로 도와야 한다고 일본 돕기 가두 행진을 벌였다.



대지진이 발생한 일본 동북지방의 센다이(仙台)시는 중국의 대 문호 루쉰(魯迅)과 관계가 깊은 곳이다. 루쉰은 1904년부터 1906년까지 의사가 되고자 센다이시의 도호쿠(東北)대학에 유학했다. 루쉰의 의과대학 은사 후지노(藤野嚴九郞) 해부학 교수와의 특별인연은 그의 “등야선생(藤野先生)“이라는 소설에 잘 나타나 있다. 후지노 선생의 해부학 시간에 우연히 본 당시 러일전쟁의 슬라이드가 루쉰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슬라이드에는 러시아의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일본인에게 처형되는 중국인을 보고 주변의 다른 중국인들이 박수를 치는 모습이 나온다. 루쉰은 크게 충격을 받고 중국인을 구하는 것은 의학에 의한 치료가 아니라 문학에 의한 정신 개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루쉰은 이때부터 의학공부를 접고 문학의 길로 나선다. 만일 후지노 선생의 슬라이드 뉴스가 없었다면 루쉰은 한 평범한 의사가 되었는지 모른다.



루쉰의 유학 100년을 맞아 루쉰 상을 제정한 도호쿠 대학에는 루쉰의 동상과 그가 공부한 강의실이 보존되어 있어 많은 중국인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1998년에는 당시 국가주석 장쩌민(江澤民)도 루쉰의 강의실을 찾았다고 한다.



루쉰은 자신이 일시 거주했던 센다이시가 지진과 해일 그리고 방사능 유출의 피해를 입고 많은 희생자가 난 것을 안다면 하늘에서 “加油 센다이! 간바레(힘내라) 도호쿠!”라고 격려할 지 모른다. 그렇지만 루쉰이 미증유의 대 재앙 속에서 인류애로 돕고 있는 근린 국가들의 뜨거운 가슴에 찬물을 끼어 얹는 역사교과서 검정통과 사실도 안다면, 러일전쟁이 끝난지 100여 년이 지났지만 당시의 침략사관에서 한 발자욱도 옮기지 못하고 여전히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일본 정치인이야말로 “정신개조”의 대상이라고 혀를 찰 것 같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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