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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이군요 … 다시 대문 여는 미당의 ‘봉산산방’

관악산 봉산산방



장석남 시인과 미리 가 본 서울 남현동 ‘서정주의 집’

그리하여 이 관악산 밑의 내 집 봉산산방에서 내가



새로 시작한 일은



호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여러 가지 꽃나무들과 여러 모양의 바윗돌들을 모아



이것들의 모양과 빛깔들을 늘 대조해 보며



조끔치라도 더 나은 조화를 이루게



배치해 보고 또 고쳐 배치해 보고 하는 일이었네.



사군자를 비롯해서 소나무, 모과나무, 살구와 감과 대추나무,



산사와 후박과 해당화, 군해당화, 등나무, 영산홍과



영산백(白)과 영산자(紫),



(중략)



이런 몇 해 동안의 내 몰입은



그 뒤의 내 시상 구성에도



은연중 작용했던 것 같네. ※1988년 미당 시집 『팔할이 바람』 중에서









4일 문을 여는 서울 남현동 ‘미당 서정주의 집’을 지난해 미당문학상을 받은 장석남 시인이 1일 찾았다. 미당시 예찬론자인 장씨는 “여기서 서정주 문학이 탄생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변선구 기자]





















서울 남현동 봉산산방 마당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미당과 부인 방옥숙 여사.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 시인의 서울 남현동 집이 옛 모습 그대로 단장을 마치고 4일 일반에 개방된다. 시인이 세상을 떠난 후 돌보는 이 없어 사실상 폐가처럼 방치된 지 11년 만이다.



 한민족의 원형적 심상에 관심이 많았던 미당은 단군신화에서 ‘쑥(蓬)’과 ‘마늘(蒜)’을 따와 ‘봉산산방(蓬蒜山房)’이라 이름 붙인 집에서 31년을 살았다. 1970년부터 타계하던 해까지다. 75년 『질마재 신화』부터 『떠돌이의 시』『팔할이 바람』 등 후반기 대표 시집을 이 곳에서 썼다. 치매를 예방한다며 세계 높은 산들의 이름과 높이를 아침마다 외우기도 했다. ‘봉산산방’은 문단의 사랑방이요 살아 있는 문학사였던 셈이다.



 1일 장석남(46) 시인과 함께 ‘미당 서정주의 집’을 미리 찾았다. 장씨는 ‘가을 저녁의 말’로 지난해 미당문학상을 받았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나 어법에서 가장 미당적인 시인으로 평가를 받는다. 친일시 등 미당의 일부 과오에도 대시인으로서 업적은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집은 산뜻했다. 나무 문틀 등 살릴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살렸다. 새로 갈아 끼운 창문틀은 최대한 옛 맛이 나도록 신경 썼다. 생전 시인이 쓰던 붓·벼루 등 문구류와 각종 시집, 즐겨 입던 양복과 한복·두루마기 등 유품 100여 점이 전시됐다. 2층 서재에서 부인 방옥숙 여사에게 부탁할 일이 있을 때 불었던 스위스제 뿔나팔, ‘미당’이라는 호(號)를 지어준 중앙고보 선배 배상기의 양어머니 최 상궁으로부터 선물 받은 호박(琥珀)염주 등 사연 깊은 유품도 있다. 생활인 서정주의 인간적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기념관이자 문학관이다.









여권·돋보기 등 미당 유품들.






 정원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나무와 돌이 빽빽하게 차 있던 옛 정원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대신 새로 심은 소나무와 후박나무, 모란·라일락·철쭉·대나무·감나무 등속이 생 흙내를 풍기며 싱그럽게 서 있었다. 나무들의 물관은 봄기운 가득한 생명수를 부지런히 빨아올리고 있을 터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미당이 직접 그린 집의 평면도가 들어온다. 물론 전시품목이다. 손수 지은 집에 대한 미당의 애정이 느껴진다. 한쪽 벽 나무 패널에는 미당의 사진을 배경으로, 집에 관한 시 ‘관악산 봉산산방’의 전문을 보여주는 영상물이 흘러나왔다.









‘미당 서정주의 집’에 전시된 미당 흉상.



 미당은 집에 대한 산문도 썼다. 93년 산문집 『미당산문』에 실린 ‘봉산산방의 의미’에는 8만원도 안 되는 대학교수 월급을 절약해 ‘백 몇 십 그루쯤의 나무’와 ‘열 트럭쯤의 바윗돌들을’ 몇 년 간에 걸쳐 사 모은 후 70평 넓이의 마당에 심고 배치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정원 가꾸기는 가벼운 호사취미가 아니었던 것이다.



 시적 상상력의 영역에서 집은 하나의 자족적인 세계를 이룬다. 공간을 쪼개 쓰기에 바쁜 대도시의 빠듯한 집이 아니라 마당에서 생명이 자라고 생동하는 대지의 기운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자연 속의 집을 상상해보라. 거센 폭풍우나 거대한 눈보라가 몰아치는 벌판에서 집은 인간적인 것을 지키는 보루이기도 하다.



 장씨는 “시인들에게는 공간을 미학적으로 꾸미려는 본능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미당은 유난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장씨는 “바위를 정원에 들이고 주변에 화초를 심는 행위는 미당에게 단순히 눈요기를 위한 게 아니라 영원(바위) 앞에 선 인생(화초)을 되새기는 공부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봉산산방’이 다시 얼굴을 드러낸 데는 미당의 제자였던 동국대 국어교육과 윤재웅 교수 등 미당기념사업회의 역할이 컸다. 1만8000점에 이르는 미당의 유품을 수습해 전북 고창의 미당시문학관과 동국대 도서관에 나눠 보관해왔고, 그 중 60여 점을 미당의 집에 내놓았다. 엘리베이터 설치 등 집의 본 모습을 훼손하는 리모델링도 막았다. 윤 교수는 “만감이 교차한다. 앞으로 미당의 집에서 격조 높은 문화행사가 수시로 열려 한국문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가늠자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당 서정주의 집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주말에도 개방된다. 서울 관악구청은 마당 한쪽에 미당 북카페를 설치해 문화행사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홈페이지 seojungju.gwanak.go.kr, 02-881-4959.



글=신준봉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서정주
(徐廷柱)
[前] 시인   *사망 1915년
장석남
(張錫南)
[現] 한양여자대학 예체능계열 문예창작과 교수
19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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