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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조덕배 “지쳐 쓰러질 때까지 운동 … 혀에도 침 맞았다”





뇌졸중 치료 2년, 가수 조덕배 다시 서다



지난달 15일 가수 조덕배 씨가 러스크재활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이날은 손가락 힘을 기르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 기타를 연주하기 위해서다. [김도훈 기자]





“뇌졸중은 보통 무서운 병이 아니에요. 후유증이 소아마비보다 지독해요.”



가수 조덕배(51)씨는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후유증으로 평생 목발을 짚었다. 달릴 수는 없었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불편함 없이 살았다. 그러나 뇌졸중 후유증은 달랐다. 온몸이 굳고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이제 지팡이(목발)도 못 짚는구나’ 싶어 크게 절망했다.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괴로운 심정은 차라리 암환자가 부러울 정도였다. “부활의 김태원은 수술로 위암 조직을 떼어나고 다시 무대로 돌아갈 수 있었잖아요.”



글=이주연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소아마비보다 뇌졸중 후유증이 더 무서워









그는 요즘 발음과 발성 훈련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컴백 콘서트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김도훈 기자]



‘꿈에’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 거야’ 등을 불러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조덕배씨. 그는 가요계의 ‘음유시인’으로 불린다. 그의 노래는 절제된 감정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는 힘이 있다.



 그가 뇌출혈로 쓰러진 건 2009년 4월 22일 밤 10시40분. 9집을 내고 활동하느라 한창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공연을 하러 미사리 라이브카페에 가는 길. 운전하는 아내에게 말을 하려는데 나오지 않았다. 오른쪽 혀가 부풀어 발음을 할 수가 없었다. 웅얼웅얼, 외계어 같았다. “노래를 하는 사람이니까 예민하게 느껴졌죠.” 전형적인 뇌졸중 증상이었다. 다행히 병원에서 가까운 곳을 지나고 있었다. 그는 “만약 집이었으면 ‘이러다 낫겠지’ 하고 버티다가 죽었을 것”이라며 “하늘이 도왔다”고 말했다.



 뇌세포는 혈액공급이 몇 분만 안 돼도 손상을 입는다. 한번 죽은 뇌세포는 다시 살릴 수가 없다. 발병 후 얼마나 빨리 병원에 도착하느냐가 관건이다. 그가 응급실을 찾았을 당시, 오른쪽 마비가 심했다. 스스로 오른팔을 들지 못했고, 입도 크게 삐뚤었다.



 검사 결과, 대뇌 깊숙이 섬처럼 자리한 기저핵에 직경 4㎝의 출혈량이 보였다. 조씨를 처음 진찰한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권순억 교수는 “수술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무시할 수 있는 크기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조씨는 다음날에야 본인이 뇌졸중인 걸 알았다. 몸통을 가누지 못해 앞으로 자꾸 꼬꾸라지는데 기자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어 갔다.



매일 팔굽혀펴기 100회 … 땅콩 까며 손가락운동














언어장애와 안면마비, 오른쪽 편마비로 절망에 빠졌던 그에게 지난 2년은 재활을 위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다리를 굽혔다 폈다, 물체를 밀었다 당겼다’ 하는 지루한 동작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반복했다.



 지난달 15일 경기도 용인시의 러스크재활병원. 이날도 조덕배씨는 병원에서 재활을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오른팔에 목발을 끼고 조심조심 계단을 올랐다. “노래하려면 녹음실을 다녀야 하는데, 거기 계단이 무지 높거든요.” 평지는 쉬운데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 아직 문제가 있다. “어휴, 힘들다.” 까만 모자에 까만 안경을 쓴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지금은 혼자 목발을 짚고 걷지만, 처음 두세 달은 휠체어를 탔다. 목발은커녕 작은 공을 쥐는 것도 힘들었다. 그는 음료수 병뚜껑을 돌려 열며 “떨어뜨리지 않고 여닫게 된 것도 불과 3개월 전부터”라고 말했다.



 그동안 모든 노력을 다했다. 재활치료와 줄기세포 주사를 비롯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수시로 침을 맞았다. 요즘도 혓바닥에 침을 맞는다. 그는 마약도 주사가 아닌 연기로 흡입했을 만큼 바늘을 싫어한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고치겠다며 침을 하도 많이 맞아서다. 그런 그가 실낱 같은 희망을 붙잡겠다며 제 발로 병원을 찾고 있다. 재기하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



 병원 치료도 모자라 집에선 아령과 완력기로 운동했다. 매일 밤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팔 굽혀 펴기를 100회씩 했다. 손가락의 미세한 힘을 기르기 위해 수없이 땅콩을 깠다. “하루도 쉬지 않고 틈만 나면 운동했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 적 처음이에요. 그래서 다시 젓가락질을 하고 지팡이를 짚을 수 있었죠.”



 저녁이면 중학생 딸이 경직된 팔다리를 마사지해 준다. 아내는 끼니마다 샐러드와 현미밥을 챙겨준다. 입맛에 맞지 않던 채소도 이젠 ‘약이다’ 생각하고 소스 없이 먹는다. 조덕배는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지만, 가족에게 해준 것도 없이 가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족과 친구, 팬들의 응원으로 힘을 얻었다. “연예인은 사랑을 먹고 살잖아요.”



 러스크재활병원 박송래 원장은 “근력이 전혀 없다고 할 정도로 약했는데 환자의 의지가 강해 회복이 평균 이상으로 좋아졌다”며 “아직 어눌한 부위도 연습을 하면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다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것이 목표다.



“노래하고 싶어 … 지금 제 발음 괜찮은가요”









계단 오르내리기도 반복했다. [김도훈 기자]



가수에게 언어장애는 치명적이다. 가수생활 29년차. 노래하고 싶은 마음은 오죽할까. 그는 “노래가 되지 않으니까 말이 많아졌어요. 말을 못하다 하니까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하며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실제로 그는 말이 많았다. 인터뷰는 3시간 넘게 진행됐다. 한마디를 물어보면 열 마디가 넘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곤 “제 발음이 괜찮은가요” 하고 거듭 물었다. 그때마다 기자는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안면마비로 말할 때 왼쪽 입 꼬리가 더 올라가긴 했지만 양쪽 얼굴이 완벽히 같은 사람은 드물다. 대신 말하는 속도는 느렸다. 한마디 한마디를 얼마나 신경써서 내뱉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되게 노력하는 거예요, 지금. 마누라랑 얘기하면 발음이 엄청 새요. 특히 히읗 발음이 안 돼요. 노래도 ‘꿈에’는 되는데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은 안 돼요. 뇌졸중이 제 안의 목소리를 다 바꿔놨어요.”



 입과 혀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데다 성대까지 불규칙하게 떨렸다. 조덕배 특유의 맑은 고음이 사라진 것이다. 그의 목소리 재활을 맡았던 예송이비인후과 김형태 원장은 “음성 재활훈련에 대한 환자 의지가 워낙 강해 지금은 예전과 100% 같진 않겠지만 노래하는 데 문제가 없을 만큼 호전됐다”고 설명했다.



“하루 담배 2갑, 술 3~4병 … 철 없었죠”



뇌졸중은 그의 삶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지난날을 “‘딴따라’처럼 매일 철없이 살았다”고 회상했다. 장애로 인한 슬픔 때문이었을까. 몸에 나쁘다는 것은 죄다 가까이했다. 중학생 시절 배운 담배는 하루 두 갑씩 피웠다. 술은 소주·양주·와인 가리지 않고 매일같이 3~4병을 부었다. 대마초에 빠져 산 세월만 15년이다.



 ‘더 이상은 안 돼’. 4년 전, 몸이 경고장을 보냈다. 우연히 들른 병원에서 고혈압을 진단받은 것이다. “병원에서 약 먹을 필요까지는 없고, 건강관리만 잘하면 된다기에 신경쓰지 않았죠.” 아버지가 고혈압을 앓다 뇌졸중으로 돌아가셨지만 ‘설마’한 게 화근이었다. 쓰러지기 두 달 전부터 전조증상이 있었다. 눈이 뻑뻑하고 피곤했다. 그러나 병원에 갈 생각을 못하고 안약만 주야장천 넣었다.



 조덕배씨는 뇌졸중이란 질병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지만 더 이상 이 같은 고통을 받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말투와 표정이 매우 진지했다.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3만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고 이 난리잖아요. 근데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사람은 전 세계에 매년 1500만 명이나 된대요. 이 병은 예방이 가능하잖아요. 모든 것의 기초가 건강인데 저는 제 몸관리에 소홀했던 거죠. 스스로 미안해요.”



 그래서 요즘은 주변 사람들에게 ‘혈압을 재보라’고 권한다. 뇌졸중의 주 원인이 고혈압이기 때문이다. 뇌졸중 예방 홍보대사가 다 됐다.



후배들과 함께 5월 21일 콘서트 준비 중



조덕배씨는 요즘 컴백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오랜만에 방송에 나가고 콘서트도 열 예정이다. “꽃이 피는 것조차 아름답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팬들과 마주할 생각을 하니 많이 설레네요. 기적 같아요. 2년간 누워 지내면서 음악이 제 인생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도 많다. ‘노래는 잘 부를 수 있을까. 넘어지지 않고 무대 계단에 오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지난 25일, 그에게 전화가 왔다. 신이 난 목소리였다. “5월 21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콘서트를 여는데, 윤도현·박상민·적우·최호섭·추가열 등 많은 후배가 함께해 주기로 했어요. 독창이 아니라 합창인 거죠.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2시간 내내 혼자 노래하기 어려운 그의 목소리를 보조하며 컴백을 축하하는 자리다. 사회는 개그맨 이홍렬씨가 맡기로 했다. 그는 “이렇게 받은 사랑을 뇌졸중 환우를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희망으로 전하는 가수가 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뇌졸중이 의심되는 증상



● 한쪽 얼굴·팔·다리의 느낌이 멍멍하거나 저린다



● 두통으로 머리가 깨질 듯하거나 어지럼증이 있다



● 신체 일부분에 마비가 오고 힘이 빠진다



● 입술이 한쪽으로 돌아가거나 말이 어눌하다



● 평소보다 대화에 집중을 못하거나 이해력이 떨어진다



● 물체가 2개로 겹쳐 보이거나 걸을 때 중심을 잡기 어렵다



● 지속적으로 눈가나 입술에 경련이 인다





뇌졸중이 발병했다면



● 증상 발생 후 3시간 이내에 응급조치를 받는다. 늦어질수록 뇌 손상이 심하다



● 쓰러진 환자를 깨우기 위해 뺨을 때리거나 흔들지 않는다. 약도 먹이지 않는다



● 구조요원을 기다리는 동안 환자의 어깨 밑에 베개나 타월을 넣고 눕혀 기도를 확보한다



● 뇌의 회복력은 발병 후 6개월 이내가 제일 활발하다. 인내심과 끈기를 갖고 재활동작을 반복한다



● 마비된 신체부위를 들어올리거나 움직인다. 무리하면 관절이 상할 수 있으므로 서서히 강도를 높인다



● 뇌졸중은 3년 내 재발률이 10% 이상으로 높다. 위험인자를 줄여 관리한다





뇌졸중을 예방하려면



● 하루 30분씩 일주일에 3일 이상 유산소 운동을 한다



● 충분한 수면과 휴식으로 스트레스를 줄인다



● 여러 사람과 즐겁게 만나고 화를 격하게 내지 않는다



● 담배를 끊고 과음과 과식하지 않는다



● 가급적 싱겁게 먹는다. 짠 김치는 물에 헹궈 먹는다



●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은 견과류와 생선을 즐겨 먹는다  



[자료제공=러스크재활병원]



뇌졸중이란=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거나(뇌경색) 터지면서(뇌출혈) 뇌세포가 손상되는 질환이다. 후유증으로 한쪽 마비, 감각이상, 언어장애, 혼수상태 등이 나타난다. 흔히 중풍으로 알려져 있다. 원인은 고혈압·당뇨병·비만·고지혈증·흡연·과음 등이다. 나이가 많거나 가족력이 있으면 위험성이 높다.



조덕배는 누구?











1959년 8월 21일 서울시 종로구에서 6남 4녀의 9째로 태어났다. 2살 때 고열를 앓은 뒤 소아마비로 양다리의 힘을 잃었다



1984년 ‘나의 옛날 이야기’로 데뷔해 ‘꿈에’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 거야’ ‘안개꽃을 든 여인’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슬픈 달밤에 부르던 노래’ ‘나의 겨울이야기’ 등 9장의 정식앨범을 냈다



지금껏 600회 이상 콘서트를 했으며, 오는 5월 21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컴백 콘서트를 갖는다



가족으로 아내 최혜경(42)씨와 딸 조우주(15)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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