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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산림은 살림 … 이제야 100년 전 만큼 됐다”





2011 유엔사막화방지협약 총회 의장 이돈구 산림청장



이돈구 산림청장에게 “식목일도 다가오니 묘목을 들고 찍자”고 청했다. 그는 감기몸살을 앓고 있으면서도 기꺼이 수목원 산길을 올라 4년생 금강송 묘목을 들고 수령이 130여 년 된 소나무 앞에 섰다.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방사능 확산이 우려된다. 곧 있으면 몽골·중국 사막에서 황사 바람이 불어닥친다. 이래저래 ‘잔인한 4월’이다. 지진, 쓰나미(지진해일), 가뭄 같은 자연재해가 매년 심각해진다. ‘환경의 역습’이라는 말도 나온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 40년간 세계 곡물 재배면적의 3분의 1이 황폐화됐다. 매년 한국 전체 산림면적(600만ha)에 해당하는 숲이 파괴된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 산림의 해’다. 때마침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 총회가 10월 경남 창원에서 열린다. UNCCD는 기후변화협약·생물다양성변화협약과 함께 ‘유엔 3대 환경협약’으로 불린다. UNCCD 총회가 아시아에서 열리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UNCCD 측에서 한국 개최를 제안해 성사됐다고 한다. 헐벗은 토지를 단기간에서 성공적으로 녹화한 사례라는 점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이번 UNCCD 총회 의장을 맡는 이돈구(65) 산림청장을 서울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에서 만났다. 그는 “산림은 살림”이라고 말했다. ‘산림 복원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는 의미였다.



이돈구 청장은 1967년 산림청이 생긴 이래 첫 교수 출신 산림청장이다. 81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돼 지난해 연말까지 강단에 섰다. 지난 2월 산림청장이 되면서 휴직했다. 65년 서울대 임학과에 입학한 뒤 40년 넘게 외길을 걸었다. 나무를 심고 가꾸고, 훼손된 산림을 복원하는 것을 연구하는 조림복원생태학이 그의 전공이다.



●나무를 왜 심어야 하나.



 “옛날에는 그늘과 목재, 의식주 때문에 나무를 심었다. 지금은 인간이 행복하고 깨끗하게 살기 위해 나무를 심어야 한다. 산림은 사람을 위해 환경을 걸러주는 필터 역할을 한다.”



●그동안 충분히 심지 않았나.



 “그동안은 대머리에 형식적으로 모발을 이식해 온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덕에 양적으로는 한·일 강제병합 이전의 숲 상태를 회복했다. 이제는 질을 높여야 한다.”



●한일병합 이전 상태라는 게 무슨 말인가.



 “한일병합 이후 우리 산림에서 나무를 계속 베어 왔다. 한국전쟁 때는 한일병합 전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제 겨우 100년 전 수준으로 양만 회복됐을 뿐이다.”



●어쨌든 국토의 3분의 2가 산림 아닌가.



 “국토 대비 산림 비율은 높다. 국민 1인당 산림 면적은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낮다.”



●산림청에서는 한 해에 나무를 얼마나 심나.



 “올해는 4000만 그루를 심는다. 그러면 서울시 면적 3분의 1 정도의 산림이 늘어나게 된다. 산림청이 생긴 초기에는 한 해 6억 그루를 심었다. 2001년부터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몽골과 중국에도 심고 있다. 황사를 막기 위한 취지도 있다.”



●몽골과 중국의 사막에 나무를 심으면 황사를 막을 수 있나.



 “이미 사막이 된 지역에는 나무를 못 심는다. 모래바람이 식물을 다 덮어버리니까. 그래서 사막이 되기 전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 몽골은 국토의 90% 이상이 사막화됐다. 중국의 사막화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막화를 막는 것은 아주 시급하다.”



●우리가 직접 나무를 심어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 않나.



 “우리가 몽골과 중국 땅 전체에 나무를 다 심어준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시작을 할 테니 나머지는 당신들(몽골·중국)이 스스로 하라는 뜻이다.”



●그런 노력이 동기부여가 되나.



 “아무 것도 없을 때에는 ‘나무를 심자’고 하면 공감을 한다. 그런데 ‘이제는 나무가 있는데 뭘 또 심느냐’ 하는 분위기가 생긴다. 기후변화를 막자고 하는 것인데, 잘 와닿지 않는 모양이다.”



●산림학자로서 최근 일본 쓰나미를 어떻게 보고 있나.



 “쓰나미가 덮쳤을 때 해안림 때문에 그나마 피해가 덜했다. 2004년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쓰나미 때도 맹그로브 해안 방조림이 없었다면 피해가 더 컸을 것이다. 우리도 지진해일이 언제 닥칠지 모르지 않나. 그것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해안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



●산림의 사회적·경제적·환경적 가치가 높은 것 같은데, 솔직히 ‘산림’ 하면 멀고 막연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산에 가는 게 공짜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그러나 다른 나라에 가보면 국립공원은 다 유료 입장이고 예약제다. 그런데 우리는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아오다가 공짜로 바꾸었으니….”



●산림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원래는 공대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형이 먼저 공대에 입학해서는 ‘너는 다른 것을 해봐라. 조금 있으면 산림청도 생긴다 하더라. 임학과에 가면 공무원 하기 쉽지 않겠나’ 했다. 내가 서울대 임학과 65학번이고, 산림청은 67년에 생겼다.”



●형님은 뭐하셨나.



 “충북대에서 기계공학 교수를 하다 정년퇴직 하셨다.”



●이 청장도 공무원보다 학자가 더 좋았나 보다.



 “교수로서 누가 ‘연구와 강의 중 하나만 고르라’ 하면 연구를 고르는 성격이다. 행정 경험이라곤 학교에서 학장 해본 것밖에는 없다. 99, 2000년 두 해를 했으니 두 세기에 걸쳐 하기는 했지만…. (웃음) 그런데 정말 뜻하지 않게 산림청장이 됐다. 사실 어떤 교수님이 ‘산림청장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이전에 내가 도와드린 적도 있는데….”



●그때 열심히 안 도우셨나 보다.



 “도와드렸는데….”(웃음)



●세계산림연구기관연합회 회장을 하셨던데.



 “1892년에 생겨 현재 119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다. 개인도 회원이지만 대학·연구소 같은 기관 700개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산림학 단체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기관이다.”



●학자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은 것인가.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스웨덴 왕립한림원 정회원이다.



 “그것도 명예스러운 위치다. 스웨덴 왕립한림원은 110년이 넘었다. 우리나라의 농업·임학 분야 학자 중에서 나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외국인 학자를 회원으로 받기 위해 투표로 허락 여부를 결정한다.”



●올 1월까지 시민단체인 ‘국민의 숲’ 공동대표를 지냈다. 산림청에 쓴소리도 했을 것 같다.



 “그렇다. 너무 정부 주도로만 하지 말고, 시민과 지역 주민의 소리를 열심히 들어보라는 지적을 많이 했다.”



●이제 부메랑이 됐다.



 “누가 하는 얘기든 옳은 소리면 경청해야지.”



●학자로서도 산림청과 다툰 적이 있나.



 “산림청 의뢰를 받아 연구를 했는데, 결과를 빨리 내라고 엄청 독촉하더라. 그런데 연구 결과가 사람 마음대로 나올 수 있나. 그래서 다툰 기억이 있다. 독일에서는 200년 뒤에나 결과가 나오는 연구도 하고 그런다.”



●장차 산림청을 떠나면 어떤 일을 하고 싶나.



 “내가 미국 정부 지원을 받아 미국 유학을 했다. 우리나라도 이제 다른 나라를 지원할 입장이 됐다. 산림청장 이후에는 제3국에서 도움을 주고 싶다. 그러잖아도 캄보디아·라오스·베트남 같은 동남아 10개국에서 연구를 해왔다.”



글=성시윤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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