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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이문열 연재소설 ‘리투아니아 여인’ 6-4





“너도 한번 내게 여자가 되어줄래?”



일러스트=백두리 baekduri@naver.com



“영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그들이 너를 사랑하는 방식이 그랬다니. 눈부시던 우리 금발의 제니를….”



 나는 아무래도 혜련의 말이 믿기지 않아 한숨처럼 그렇게 받았다. 거기서 갑자기 취기가 오르면서 얘기는 곁가지로 흘러 잠시 무의미한 반복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나는 이 땅 남자들을 보는 혜련의 눈길이 너무 과장되고 자의식에 짓눌린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어 떠든 것 같고, 그녀는 자신의 말이 냉정한 관찰과 솔직한 감정의 토로라는 것을 강조하며 차츰 격앙되기 시작한 것 같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그녀의 큰 눈에 눈물이 번쩍이는 걸 보고 번쩍 정신이 든 내가 감성적인 위로 쪽으로 퇴각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네게 너무 큰 상처를 준 것 같구나. 그게 몽 서방인지, 아니면 내가 잘 모르는 다른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녀가 그런 나를 뒤따라 잡듯 눈물이 그렁거리는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로 그 사람들이 궁금하기나 한 거예요? 내 사랑이 그런 것일 줄 짐작해 본 적은 있어요? 아니, 용모에서 공통된 인종적 특성이 전혀 없는 혼혈의 동족 이성에게 느끼는 그 사회일반의 의식에 대해 유심히 관찰해 본 적은 있어요?”



 “후가드가 인종차별이 엄격하던 시절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배경으로 쓴 희곡 ‘블러드 너트’에서 백인의 용모를 하고 태어난 법률적인 흑인 이야기를 읽은 적은 있지. 아무리 하얀 얼굴에 훤칠한 키를 한 백인 남자의 용모를 하고 있어도, 흑인 형제와 똑같이 차별대우를 받아야 하는 혼혈아 얘기 말이야. 오래된 기억이긴 하지만 그는 또 흑인 형제들에게도 대접받지 못했지. 하지만 그게 이 땅에서 너와 같은 경우로 나타날 수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감추어지고 변형되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내 얘기는 과장된 콤플렉스로만 느껴졌거든.”



 “내가 어렸을 적 부산에서 한국 아이들에게 따돌림받는 걸 보셨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내가 초등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미국으로 급히 옮겨가 살게 된 계기가 된 그 일 말이에요. 그날 동네 아이들의 따돌림뿐만 아니라 우리 아버지의 허옇게 질린 낯빛이나 차가운 분노로 희뜩이던 눈길도 보셨다면서요. 그런데도 뒷날 내게 일어난 그 이상한 경우는 전혀 예상할 수 없으셨어요?”



 “그건 감각이 예민한 어린 시절의 차이에 대한 과민반응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성년의 사랑에서는 다를 것이라 보았어. 신세대들처럼 그 사랑을 섹스나 화학이란 말로 대치해도 말이야. 그게 사랑이든, 섹스든, 화학적 결합이든 이성 간에 서로 다가가고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은 낡은 표현으로 하면 틀림없이 매혹과 긴장이 될 거야. 낯설고 이질적인 것의 매혹과 상이한 개성이나 형상 가운데서 자신의 기호를 변별해 내는 긴장 말이야. 그러나 한 번만으로 끝나는 자위나 배설이 아니라 반복적인 구조화로 진행하거나 나아가 장구한 제도화를 지향하게 되면 이번에는 가장 먼저 해체되어야 하는 것이 그 매혹과 긴장일 거야. 구조화든, 제도화든 반복과 지속을 바탕 삼는 과정은 매혹과 긴장 같은 계속적인 자극에 강하지 못하거든. 예를 들면 말이야, 사랑의 제도화라고 볼 수도 있는 결혼에서 처음 만날 때의 매혹과 긴장을 계속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지. 오래 결혼생활을 한 친구들 말을 들어보면 그 매혹과 긴장은 깊이 모를 존재감으로 서로의 의식 아래로 가라앉고, 대신 둔감과 방심이 그 평온한 지속과 반복을 지켜주는 것 같아. 이를테면 사랑한다면서도 아내의 얼굴조차 얼른 떠올릴 수 없을 만큼의 둔감과 방심 말이야. 그런데 이미 받아들이고 하나가 된 뒤에 새삼 차이에 민감해지고 변별의 열정을 이어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되지 않아서. 그들은 너와 자고 난 아침에 다시 쭈뼛거리며 너를 곁눈질한다며? 새삼 흰 피부나 노란 머리나 갈색 눈동자를 의식하고 어떻게든 너에게서 놓여날 궁리를 시작한다며?”



 그날 밤 나는 취기 못지않게 솟는 분기로 한동안을 그렇게 떠들었다. 어떤 말은 자신도 별 확신 없는 주정에 가까웠다. 그러다가 저 혼자 감정이 고조되어 앞 말과 별로 연관도 없는 큰소리를 보탰다.



 “정말 이상하지. 나만 해도 용모든, 개성이든 너와 우리 극단 스태프나 단원들과 특별히 다른 점을 느끼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남들이 널보고 미국 애, 어쩌고 하거나 특별히 용모적 특성을 꼬집어 말할 때에야 새삼 이상해져서 너를 쳐다보는 경우를 빼고는. 그런데 네 경험은 그랬다니, 혹시 내게 그 방면으로 무슨 공격 유발성 같은 게 있는 건 아냐?”



 그러자 그녀가 비틀린 웃음을 흘리며 받았다.



 “그런 공격 유발성이 어디 있겠어요? 선생님이 둔감해지고 변별력을 잃은 것은 나를 여자로 본 적이 없어서일 테고….”



 그런데 취한 탓일까, 그런 그녀의 웃음이 그 어느 때보다 자극적으로 비쳤다. 그녀의 얼굴도 이상하게 어둑하게 느껴지는 불빛 아래 고혹적인 이국정취로 피어났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너보다 한 십 년 더 낡고 닳았지만 나도 남자야. 너도 언제나 무심코 지나쳐야 할 만큼 매력 없는 여자는 아니고. 게다가 너를 여자로 안았다고 해서 갑자기 네 용모의 인종적인 특성이 너를 경원하게 만들 것 같지도 않구나.”



 나는 그렇게 말해 놓고 술기운을 빌린 뻔뻔함으로 덧붙였다.



 “내가 뭐 이런 걸 말로 하고 있나. 좋아, 나도 사십대를 다 채우지 못한 남자야. 너도 한번 내게 여자가 되어줄래? 늦었지만 우리 한번 알아보자. 까짓 거 여기까지 와서 우리 사이에 안 될 일이 뭐가 있어?”



 그 다음은 기억도 신통치 않거니와 이제 와서 시시콜콜 이야기하기에 민망하고도 난처하다. 그저 오랜 예정을 실천하듯이 둘이 쓸어안고 잤는데, 이튿날 늦게 내가 일어났을 때는 술병이 여기저기 뒹구는 아파트에 나 혼자였다.



 이제 결말을 서두르고 싶어지는 걸 보니 난데없으면서도 자칫 구성지게 들릴 수도 있는 이 회상도 끝이 가까워오는 모양이다. 그날 밤 일 뒤로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음날의 애매하고 복합적인 감정이다. 나는 불편한 속을 달래면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자듯 말 듯 하루를 보내며 줄곧 전날 밤의 기억을 더듬으며 그 의미를 곰곰이 해독해 보았다.



 내게서는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서 경험한 그런 이질감이나 경원의 증폭이 일어나지는 않았으나, 알 수 없는 민망함과 어색함은 짐작 이상이었다. 어쩌면 언젠가 몽 서방이 말한 근친상간의 추억이란 말이 그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묘한 충족감과 실현된 예언을 떠올리는 안도 같은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문득문득 새로운 동경과 욕구로 헤어진 지 한나절도 되지 않은 혜련을 그리게 만들었다.



 새로 형성된 관계에 대한 전망도 그랬다. 그래, 이제 시작되었다. 이전의 관계가 어떠했건 나는 이 새로운 만남을 반복적으로 지속하고 싶다. 구조화하고, 나아가서는 제도로 정착시키려는 그런 열정으로 후끈 달아오르다가도 이내 알 수 없는 죄의식과 아득한 자괴감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내가 무슨 한심한 짓을 했나. 아름다운 노을로 질 수 있었던 세월의 한 자락을 얼마나 파렴치하게 찢어발겼나.



 하지만 다시 날이 저물면서 결국 나는 분별 있는 중년 남자로 돌아갔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 쳐도 내가 주도해 일을 발전시켜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 선택할 기회가 있더라도 나는 그 선택권은 행사할 수 없다. 모든 선택은 네게 맡기고 부동(不動)의 원리로 앞날에 대처하겠다. 이윽고 그런 결론에 이른 나는 가까운 복국집에서 늦은 해장을 하고 일찍부터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일상에 복귀했다.



 다행스럽게도 헤련에게서는 특별한 변화의 기색이 없었다. 사흘 뒤에 온 전화기에서 들린 목소리는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구김이 없었고, 통화 내용도 담담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다가 그 뒤 곧 혜련에게 다가온 변화는 그녀에게 새로운 열중과 몰두를 요구해 그날 밤 우리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지극히 사사로운 우발사로 밀쳐냈다.



 혜련에게 다가온 새로운 변화란 그녀가 서울 인근 대도시의 시향(市響) 지휘를 맡게 된 것이었다. 인구 백만이 넘는 도시에 오래되어 자리 잡힌 교향악단이라, 무대 음악감독 외에 이렇다 할 게 없는 그녀의 경력이나 겨우 삼십대 후반인 그녀의 나이로는 얻기 힘든 자리였다. 아마도 그 한 해 매스컴을 중심으로 다져진 대중적 지명도가 지방자치단체장의 허영과 잘 맞아떨어진 듯했다. 그렇다 보니 혜련의 취임부터가 요란스러운 뉴스가 되어 이런저런 매스컴들이 한동안 그녀를 에워싸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두어 달 전과 별다를 것 없이 어정쩡한 사이로 안부나 물으며 보내는데 다시 혜련에게는 행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경사가 있었다. 혜련이 이끌고 간 시립 교향악단이 초청해준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에서 아주 호평을 받고 그곳 매스컴의 주목을 받은 일이 그랬다. 실은 그 시향이 혜련을 파격적으로 발탁하게 된 것도 전임자가 그 연주회를 앞두고 사고로 물러나게 된 때문이었다. 그래서 단원들과 두 달 남짓밖에 호흡을 맞출 틈이 없었는데도 해외공연으로서는 드문 성공을 거두자 다시 국내의 매스컴이 벌떼처럼 덤벼들었다.



 그런데 그때는 어느새 2000년대가 열려 인터넷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때였다. 혜련의 그 어떤 부분이 그들의 성감대를 건드렸는지, 갑자기 인터넷이 가세하면서 그녀의 성공은 더 큰 파괴력을 가지고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아무리 그런 일에 미국식으로 잘 단련된 혜련이라도 제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만큼 위력적이었다.



이문열 소설가

일러스트=백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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