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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루 “돼지우리서 셀프 누드 사진 … 벗으면 더 보편적이 되니까요”





[j Global] 뉴욕서 누드 사진전 ‘돼지, 고로 나는 존재한다’
도올 김용옥 교수의 딸, 김미루



[사진=피터 더머랙]



5년 전 사진작가 김미루(30)씨는 맨해튼 브리지를 이브의 차림으로 돌아다녔다. 뉴욕의 버려진 공장, 폐쇄된 지하철역, 하수구, 정신병동, 선박장과 필라델피아, 디트로이트, 그리고 파리의 지하묘지(catacombe)에서 셀프 누드 사진을 찍었다. 이른바 ‘나도(裸都)의 우수(憂愁) Naked City Spleen’ 프로젝트였다. 미루씨는 2007년 뉴욕 타임스에 도시의 폐허를 탐험하는 ‘어둠의 아이들’로 대서특필됐다. 같은 해 미 잡지 ‘에스콰이어’는 미루씨를 현대미술 최고의 유망주(America’s Best and Brightest) 36인으로 선정했다. 그녀가 최근 미 동북부, 아이오와주, 미주리주의 기업형 양돈장으로 나침반을 돌렸다. 녹슨 쇳덩어리와 쓰레기가 널린 문명의 잔여물을 뒤로하고, 배설물이 흥건한 농장의 돼지우리에 카메라를 세우고, 다시 옷을 벗었다.



지난달 24일부터 첼시의 두산 갤러리 뉴욕에서 열고 있는 개인전 ‘돼지, 고로 나는 존재한다(The Pig That Therefore I Am)’는 그의 두 번째 셀프-누드 사진 프로젝트다. 인간의 먹이로 사육되는 돼지들 사이에서 김씨는 낯선 이방인이라기보다 신체의 존재감을 만끽하고 있는 현대의 이브처럼 보인다.



뉴욕=박숙희 문화전문기자



●왜 돼지우리로 갔나.



 “프리메드 다닐 때부터 관심이 있었다. 인체를 연구하기 위해 돼지 태아를 해부해야 했다. 그러면서 돼지들이 우리와 신체적으로 무척 닮았다는 사실에 충격 받았다. 의대 대신 미대에 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기업형 양돈장 사진을 찾아냈다. 그전까지는 돼지고기가 어디서 오는지 몰랐다. 돼지고기를 먹으면서도 그렇게 큰 기업형 양돈장이 있었다는 게 상당한 쇼크였다. 대학원 디지털사진 과정에서 몽타주 숙제가 있어 양돈장의 돼지들을 잘라낸 이미지를 지하철 터널 등 도시를 배경으로 붙여보았다. 이후 사진 대신 실물을 쓰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 후 터널이나 버려진 공장 등을 배경으로 나 자신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나도의 우수’ 시리즈가 됐다. 이 시리즈가 어느 정도 된 후 돼지로 돌아갔다. 나는 본래 돼지의 이미지를 대역한 셈이었기 때문에 이번엔 나와 돼지를 찍기로 한 것이다.”



●제목은 어디서 왔나.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동물, 고로 나는 존재한다(The Animal That Therefore I Am)’에서 빌려왔다. 데리다는 데카르트가 인간이 다른 생물보다 우월하다고 선언하며, 동물을 격하한 것에 대해 비판한다. 난 불교의 관점에서 모든 생물은 생명력이나 기로 윤회한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느낀다’라 할 수 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돼지 농장의 허가를 받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진정 무언가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 생물학적 안전 문제와 동물보호주의자들을 경계하는 농부들로 인해 편지 보내고, 전화하고, e-메일 하며 촬영 계약하는 데만 2개월 이상이 걸렸다. 일단 돼지우리에 들어간 후 촬영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내가 움직이는 물체를 찍는 데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돼지들의 반응은 어땠나.



 “처음엔 돼지들이 성이 나서 나를 이리저리 공격하기도 했다. 우리에서 뛰쳐나가기도 했고, 울타리를 뛰어넘으면서 찰과상을 입기도 했다. 돼지들이 날 심하게 문 적도 있었다. 정말 힘들었던 것은 돼지들이 정말 공격적이 돼 나를 해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이었다. 돼지들은 그들이 원하면 날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놀랍게도 돼지들은 무척 부드러웠고, 내가 자기네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벌거벗었으며, 연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엔, 나도 우리 안에서 어디로 이동할 것인가에 대해 무척 소심해 있었다. 얼마 후 난 성난 돼지, 느긋한 돼지를 즉각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됐다. 그러곤 그들과 소통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난 그들이 꿀꿀대는 소리를 듣고 그들의 다른 감정 표현도 이해하게 됐다.”



●냄새가 심했을 텐데.



 “오물은 무척 농축된 상태라 참기 정말 힘들었다. 촬영 후엔 온몸에 화이트 식초를 발랐고, 발엔 과산화수소수와 치약까지 발랐다. 냄새는 외양간 안에 있던 모든 것에 달라붙었다. 평균적인 도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경험이었다. 가장 긴 촬영은 6시간 지속됐는데, 다음 날 난 외양간 안의 배설물 먼지로 인해 기침에 시달려야 했다.”



●촬영할 때 누가 있었나.



 “카메라와 운전을 도와준 한 사람뿐이었다.”



●촬영 과정은.



 “카메라를 삼각대 위에 설치한 후 난 돼지우리로 들어가 움직여 보고 포즈를 취했다. 때로는 돼지들이 내 옆으로 올 때까지, 혹은 돼지들이 잠들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비디오로도 찍었나.



 “찍었다. 비디오는 장차 설치작업에서 사용할 예정이다.”









김미루씨의 작품들.




●첫 번째 프로젝트 ‘나도의 우수’ 시리즈와 차이는.



 “이번 프로젝트가 더 몸에 관한 것이다. 이전 시리즈에선 인체가 시적인 내러티브 선상에서 허구적인 캐릭터를 보여주기에 인물이 더 선명하고 두드러진다. 돼지 시리즈에서 사람의 모습은 타자 속에 흡수되며, 행위 측면이 훨씬 더 중요하다. 내겐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에 의문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난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 사고와 추론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내 몸은 충만한 생명력 혹은 기(氣)를 갖고 있으며, 내가 돼지들 옆에 누워 내 피부로 그들과 섞여 있을 때야 비로소 그 어느 때보다 더 나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나도의 우수’ 시리즈를 시작한 경위는.



 “지하철 사진을 찍다가 우연히 반스앤드노블(미 대형 체인서점)에서 줄리아 솔리스의 『뉴욕 언더그라운드』라는 책을 봤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에 의해 버려진 구조물들을 담은 책이다. 도시의 쥐를 생각하면서 나는 대다수 사람에게 잊히고 폐허가 돼가는 도시의 구조물에 기거하는 생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하철 터널에서 돼지가 돌아다니는 이미지를 몽타주로 만든 후 나 자신이 모델이 되기로 했다. 아무도 안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리즈가 된 것이다.”



●왜 옷을 벗었나.



 “옷은 생물(동물)을 너무 문화적이고 시의성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옷을 입지 않으면 사실상 ‘덜’ 개인적이면서도 ‘더’ 보편성을 띠게 된다.”



●촬영 때 준비물은.



 “카메라, 삼각대, 플래시, 조명기구, 터널 등 물이 있는 곳에서 쓸 비닐봉지, 젖은 티슈, 그리고 상처가 났을 때 응급 처치할 알코올과 일회용 반창고 등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지는.



 “2005년 말 파리에서였다. 전문가와 무거운 고무 부츠, 헬멧으로 무장하고 1900년부터 사용되던 광산 채굴용 램프를 들고 터널로 갔다. 그 램프는 동굴 같은 곳에서 훌륭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몇 차례 터널에 가서 7~8시간씩 보냈다. 2006년 새해를 터널에서 맞으면서 사람들과 축하했다. 마치 ‘인디애나 존스’ 영화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조기 유학생이었는데.



 “열두 살 때 미국에 공부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반대하셨다. 하지만 난 단호했다. 1년간 부모님에게 왜 유학을 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계속 써서 드렸다. 1. 지구촌 언어인 영어를 배워야 한다. 2. 미국의 톱 대학은 한국보다 낫다. 하버드 같은 곳에 가면 혜택이 많을 것이다. 3. 국제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4. 해외 유학이 내게 독립심과 힘을 더 줄 것이다. 이런 것들이다. 1년이 지나 학교에서 성적이 톱이었고, 내 결심도 그대로였기 때문에 부모님은 마침내 항복하셨다.”



●힘들지 않았나.



 “공부도 어려웠고, 외국에서 사춘기를 겪는 게 매우 힘들었다. 때로는 학교 규율이 너무 엄격해 반항심도 가졌다. 영어가 모국어인 학생들처럼 에세이를 쓰거나 시험을 치를 수 없었기 때문에 난 항상 열등감을 느꼈다. 내가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미술이었다. 난 급우들보다 훨씬 그림을 잘 그렸고, 그림을 팔기까지 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졸업식 땐 미술반 최고상을 받았다.”



●의대를 지망하다 왜 미술로 바꾸었나.



 “내게 의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였는데, 프리메드에서 과학을 공부하면서 다른 학생들처럼 과학에 대한 열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병원 응급실에서도 일해봤는데, 내가 사람의 고통에 대해 점점 둔감해지도록 만드는 환경이 싫었다. 대신 미술에 열정이 있었기에 의학이 아니라 미술로 사람들을 돕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10대였을 때 위대한 미술가들이 내게 영감을 주었듯이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가 돼 내가 받은 선물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었다.”



●회화를 전공한 후 사진을 하게 된 이유는.



 “그림은 내가 기르고 있던 애완용 쥐 두 마리를 그리면서 시작했는데, 쥐들이 4개월 만에 죽어 그림에서 사진으로 바꾸게 됐다. 나를 매혹하는 쥐를 찾아서 지하철 트랙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게 된 것이다.”



●도올의 딸이라는 것이 부담되나.



 “아버지에 대해 큰 존경심이 있으며, 사회적인 배경에서 또한 무척 편안하다. 어느 경우에서나 난 매우 독립적이며, 뉴욕이나 해외에서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아버지에 대해 모른다.”



●부모님께 얻은 교훈이 있다면.



 “한 가지를 말하라면, 은퇴한 후에도 항상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삶은 지속적인 배움이며, 항상 우리의 지식에 보탬이 된다. 부모님은 교육을 항상 우위에 두셨다.”



●일 말고 다른 취미가 있나.



 “요리를 엄청나게 즐긴다. 요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주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난 온갖 종류의 요리를 다한다. 때론 한식과 서구식 퓨전 요리를 하며, 주로 생선과 야채, 혹은 보다 까다롭고 정교한 요리, 가정식 요리도 한다. 전엔 빵과 과자도 많이 구웠다.”



●남자 친구 있나.



 “뉴욕에서 만난 영화감독이다. 후쿠오카 출신인데, 언젠가 한국에서 살고 싶어한다.”





j칵테일 >> 김미루, 이름대로 운명대로



김미루(金彌陋)라는 이름은 미륵보살의 ‘미’와 누추하다의 ‘루’에서 온 것으로 ‘점점 더 겸손해지다’는 뜻이다. 아버지 도올 김용옥 원광대 석좌교수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순환하는 물처럼 모든 존재에 생명력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는 것. 미루씨는 “사진을 위해 매우 추악하고 허물어진 장소를 다닌 것도 아마 이름이 작업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미루씨가 예닐곱 살 때 오빠와 미루에게 낙타를 그려보라고 했다. 오누이가 그린 그림은 라오서(老舍)의 장편소설 『루어투어 시앙쯔(駱駝祥子)』(최영애 옮김, 김용옥 풀음)의 표지가 됐다. 미루씨가 열살 때엔 그림이 한층 나아졌다. 김 교수는 그의 코끼리 그림을 자신의 저서 『대화』의 표지로 썼다.



 1981년 매사추세츠주 스톤햄에서 태어난 미루씨는 태어난 지 2개월이 안 돼 서울로 왔다. 당시 부친 김용옥 교수는 하버드대 동양철학 박사 과정을, 모친 최영애 연세대 중문과 교수는 중문학 포스트닥터 과정을 마친 상태였다.



 열두 살 때 앤도버의 필립스아카데미에 진학, 컬럼비아대에서 불문학과 낭만주의 문헌학을 전공했다. 이후 브루클린 프랫인스티튜트에서 회화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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