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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 ‘다윈의 정원’] 방사능, 비슷한 목소리 넘친 이유는 …







장대익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이제 한반도에도 일본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기 시작했다. 기상청의 전문가들이 편서풍에 고마워하며 안전을 약속한 지 불과 며칠 만에 벌어진 대반전이다. 후쿠시마 원전에 처음 회색 연기가 피어오를 때 방송에 나온 우리 핵 전문가들도 “멜트다운(노심용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다들 한목소리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멜트다운 앞에 속수무책이다. 과학 전문가들이 활약은 했지만 이처럼 거의 모두 예상을 빗나갔다. 전문가들이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체 뭐가 문제인가?



 물론 탁월한 과학 전문가라고 해서 가능한 모든 결과들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그들도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하며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과학기술자의 실력이나 태도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문제는 과학기술의 지식과 권위가 유통되는 방식에 있는 것 같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문제들이 사회적 쟁점이 될 때마다 우리는 늘 과학기술계가 당연히 ‘한목소리’를 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번 사태를 대하는 언론도 거의 모두 리스크를 매우 낮게 보는 전문가만을 패널로 불러놓고 안심 방송을 했다. 전문가 패널을 둘 이상 초대한 방송은 거의 없었다. 언론이 정치, 종교, 교육 등의 쟁점들을 논할 때는 의례히 찬반 양론이 있을 것을 전제하는 것에 비하면, 이것은 분명 흥미로운 차이다. 만일 리스크를 매우 높게 예상하는 전문가도 불러놓고 갑론을박을 했었다면 어땠을까? 과학기술 관련 항목들에 대해 이런 논쟁들을 하면 무슨 문제라도 생기는 것일까?



 사실 과학기술은 논쟁의 밥을 먹고 성장해왔다. 과학자들은 끊임없는 상호 비판과 경험과의 대조를 통해 조금 더 객관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려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과학자 사회는 늘 반론과 재반론의 바다에 빠져 있다. 예컨대 진화의 메커니즘과 함의를 둘러싼 현대 진화생물학자들 간의 논쟁은 치열함과 흥미를 넘어 현대 생물학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고, 기술 표준을 놓고 벌이는 정보기술(IT) 업계의 전쟁은 참신한 기술 생태계를 진화시켰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과학은 논쟁’이라는 명제를 여전히 낯설어 한다. 그리고 불행히도 우리 정부와 언론은 이 명제의 참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미 수년 전에 ‘황우석 스캔들’을 통해 논쟁 없는 과학이 얼마나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는지를 뼈아프게 경험한 바가 있지 않은가? 생명윤리적인 문제들은 물론이고, 과학적 진실성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우리는 ‘국익’이라는 이유로 전문가들 사이의 치열한 논쟁을 공개적으로 해보지 못했었다. 대신 기자회견장을 울리는 ‘한목소리’만 들었어야 했다. 아직도 소송에 휘말려 있는 광우병 위험 논란도 근본적으로는 과학자들의 ‘한 이름 딴 소리’를 처음부터 반영하지 못해 증폭된 비극이다. 대지진의 여파로 잠시 잠복해 있는 구제역 문제도 초동 대처 때부터 전문가들의 다양한 견해를 반영했었더라면 제거할 수 있는 폭탄이었는지 모른다.



 과학자들이 늘 한목소리일 것이라는 생각은 과학은 과학의 문제일 뿐이라는 생각과 매우 친하다. 어떤 과학사회학자가 미국의 주요 일간지를 분석하면서 과학기술 지식이 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기사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한 일이 있다. 오늘 자 중앙일보를 펴놓고 독자 여러분도 한번 조사해 보시라. 말 그대로 거의 대부분이지 않은가? 굵직한 헤드라인만 봐도 과학기술은 더 이상 과학기술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유전자, 인플루엔자, 줄기세포, 광우병, 구제역, 그리고 방사능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 용어들은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언론도 이런 용어들을 다룰 때 인문적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의 원전을 근본부터 다시 점검하는 일로부터, 지진과 방사능 유출이 발생했을 시에 우리에게 미칠 일상의 모든 변화들을 검토하는 일까지 과학기술은 인문적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이제 정리해 보자. 과학기술과 연관된 사건과 사고가 터졌을 때 정부와 언론이 어떤 초동 대처법을 따르는 것이 좋을까? 같은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과학기술 전문가들을 부를 것. 그리고 그 사안과 관계가 있을 것 같은(이 대목에서 상상력이 필요함) 전문가들을 옆에 앉힐 것. 이렇게 해보면 아마 그동안 느낄 수밖에 없었던 전문가에 대한 배신감과 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줄어들 것이다. 과학은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목소리가 아니다. 도심 한복판을 관통하는 상수도다.



장대익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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