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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View 파워스타일] 김동광 KBL 경기이사





이 남자, 아직 ‘땀’ 식지 않았다





한국농구연맹(KBL) 김동광 경기이사는 뭘 입어도 태가 나는 사람이다. 떡 벌어진 상체를 보면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그는 호적상 쉰여덟 살이다. 실제론 두 살 더 많다. 프로농구 감독을 10년간 했다지만, 선수 은퇴가 28년 전이란 걸 감안하면 대단한 몸매 관리다.



 요즘도 그는 매일 윗몸 일으키기 200개, 벤치프레스 114개를 한다. “솔직히 건강만을 위해 운동하는 건 아니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은근히 신경쓰인다는 것이다. “‘저 양반, 몸매 망가졌네’라는 말보다 ‘여전히 보기 좋다’는 얘기가 듣기 좋지 않아요?”



 그의 키는 1m84㎝다. 농구 선수치고 큰 키는 아니다. 인천 송도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진학했을 때는 체력이 떨어져 ‘비리비리’란 별명까지 붙었다. 원인은 빈혈. 수혈과 약을 통해 빈혈은 없어졌지만, 체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은 점점 강해졌다. 웨이트트레이닝에 매달린 이유다. 감독 시절 그가 웨이트트레이닝장에 나타나면 선수들은 모두 한숨을 쉬곤 했다. 감독이 선수보다 더 무거운 역기를 번쩍번쩍 들어올려서다. “당시 현역 선수 중 현주엽 정도만 나와 같은 무게를 들었죠, 아마.”



 하지만 체격이 좋아지면서 생긴 단점도 있다. 국내 기성복이 잘 안 맞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감독 시절엔 매 시즌 서울 소공동 한 양복점에서 두세 벌씩 옷을 맞췄다. 이렇게 모인 30여 벌은 지금도 입는다. 기성복은 주로 외국에 나갔을 때 샀다. 아르마니 브랜드를 좋아한다. 사진 속의 옷도 아르마니 제품이다. 넥타이는 감독 시절엔 화려한 무늬를 많이 맸지만, 농구 행정가가 된 지금은 차분한 무늬를 선호하게 됐다.



 그는 향수를 즐겨 쓴다. 감독 시절 생긴 습관이다. “땀이 많은 편이라 경기장에서 땀 냄새를 없애려고 썼어요.” 요즘엔 샤넬 알뤼르 옴므 ①를 쓴다. 액세서리 욕심도 있다. 삼성 감독 시절 받은 반도체 칩이 들어간 커프링크스 ②가 애장품 중 하나다. 반지 ③는 왼쪽부터 1997년 아내가 선물한 반지, 2000~2001시즌 삼성의 우승 기념 반지, 그의 아버지가 물려준 ‘가문의 반지’다. 가문 반지는 사연이 깊다. 그는 혼혈인이다. 미국인 아버지는 한국전에 참전해 부산에서 그의 어머니를 만났다. 하지만 일단 한국을 떠나자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아버지를 처음 만난 것은 1984년이다. 자신이 삼성을 우승으로 이끈 2001년엔 아버지를 국내로 초청하기도 했다. 이때 아버지가 “장남에게 물려준다”며 건넨 것이 가문 반지다.












그의 농구 철학은 “땀은 정직하다”는 것이다. 패션 철학도 다르지 않다. 맵시를 내려면 공을 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손수 바지를 다림질하고, 이틀 연속 같은 양복을 입지 않는 이유다. 인터뷰 끝 무렵 그는 “경험이 쌓여갈수록 농구에 대한 열정이 점점 더 뜨거워진다”고 말했다. 이 남자, 아직 땀이 식지 않았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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