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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체르노빌 보고서 … 중앙일보 임현주 기자, 원전 재앙 25년 ‘죽음의 땅’을 가다





우릴 태운 운전사는 내리지 않았다
방사능보다 더 무서운 ‘불신의 공포’



1986년 4월 최악의 원자력 사고가 일어났던 체르노빌 원전 원자로 4호기. 26일로 사고 발생 25년을 맞는 이곳은 지붕과 측면이 콘크리트 방호벽과 철재 보강재로 덧씌워져 있다. 취재진이 방사능 측정기로 재본 결과 5.22μ㏜로 X선 촬영 때(30~50μ㏜)보다 낮지만 장기간 노출될 경우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저주받은 땅이었다. 1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체르노빌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 믿기 힘든 풍경이 다가왔다. 차로 두 시간 정도 달렸을까. 하얀색 자작나무 가지가 붉은빛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에는 축구공처럼 생긴 작은 가지들이 듬성듬성 매달려 있었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30㎞ 떨어진 주민통제소를 지났다. 통제소 안쪽은 지난 25년간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까닭에 허가를 받은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 통제소의 ‘스톱(Stop·멈춤)’ 표지판에서 1986년 4월 26일의 원전 폭발 사고가 얼마나 깊은 후유증을 남겼는지 느껴졌다. 하지만 신원조회를 하는 현지 경찰에게선 긴장감이 엿보이지 않았다. 안전불감증은 15년 전 중앙일보가 찾았을 때(1996년 4월 25일자 보도)와 달라진 게 없었다.









임현주 기자



 원전을 10㎞ 남겨둔 지점부터 방사능 측정기 수치가 널 뛰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25년 전 폭발음과 함께 전 세계를 악몽으로 몰아넣었던 원자로 4호기가 몇 분 후 모습을 드러냈다. 지붕과 측면을 콘크리트 방호벽과 철제 보강재 등으로 덮어 씌운,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당시 우크라이나를 통치하던 소련 정부는 사고 7개월 뒤에야 4호기 잔해와 오염물질을 콘크리트로 덮는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원자로 안에는 아직도 150t 이상의 방사성물질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자 일행은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현지인 운전사 유리 타바셴코(44)는 “아내는 내가 이 근처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펄쩍 뛸 것”이라며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체르노빌 원전에서 30㎞ 지점에 있는 통제소에서 현지 경찰이 방사능 검사를 하고 있다. [체르노빌=김형수 기자]



원전 10㎞부터 측정기 숫자 요동



방사능, 50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방사능 측정기를 꺼내 보니 시간당 5~11마이크로시버트(μ㏜)로 측정됐다. 서울과 비슷한 수치(0.2~0.3μ㏜)를 보였던 통제소보다 많게는 50배 이상 증가한 것이었다. 벽면 틈 사이로 흘러나온 듯한 붉은 녹물 흔적도 보였다.



 통제지역 관리청 측의 공식 입장은 “일부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방출되긴 하지만 극히 소량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관리청 측은 “앞으로 15년은 더 버틸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지 주민은 이 같은 발표를 믿지 않고 있다. 당시 서둘러 만들었던 콘크리트 방호벽에 균열이 생기면서 대기 중으로 상당량의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키예프 주민 표트르 레시토프(39)는 “체르노빌의 방사능 수치가 떨어졌다고 하지만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은 대부분 70세 이상 된 노인들뿐”이라며 “정부에서 안전하다고 주장해도 믿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여성들이 출산을 않는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라고 했다.











 주민들의 ‘방사능 공포’는 뿌리 깊은 정부 불신에서 비롯됐다. 원자로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조작 실수로 폭발 사고가 일어나자 구 소련은 정보 차단에 급급했다. 사고 후 이틀 뒤에야 TV 방송을 통해 사고 사실을 발표했다. 사고 지점에서 북서쪽으로 약 1200㎞ 떨어진 스웨덴 포스막 원자력발전소에서 전례 없던 방사능이 검출돼 소련에 공식 해명을 요구하자 마지 못해 밝힌 것이다.



 사고 당시 2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화재 진압에 나섰던 300여 명의 소방대원들 역시 영문도 모른 채 숨져갔다.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니콜라이 파닌은 “정부가 방사능에 대한 위험을 전혀 알리지 않아 별도의 안전장비 없이 화재를 진압하다 흘러나온 방사성 물질에 노출돼 한 명씩 죽어갔다”고 했다. 철저한 정보 폐쇄로 유지됐던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재앙을 키운 것이다. 그리고 그 재앙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는 주민들의 정부 불신으로, 제2, 제3의 방사능 공포로 이어지고 있다. 방사능이란 ‘괴물’과 싸우는 데 있어 정부의 정보 공유 노력과 국민의 신뢰가 얼마나 절실한지 보여준다.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는 원자로 4호기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유럽연합(EU) 등의 지원을 받아 콘크리트 방호벽 위에 철제 방호벽을 덧씌우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현지 주민들은 작업 과정에서 또다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었다. 빅토르 페트렌코(64)는 “후쿠시마 원전 보도를 접할 때마다 체르노빌 악몽이 떠오른다” 고 말했다.



체르노빌(우크라이나)에서 글=임현주,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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