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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에 필요한 건 ‘쇼우가나이’가 아닌데 

1년간 일본에 살면서 일본인 친구들에게 자주 들은 위로의 말이 있다. 저급 일본어 실력 때문에 수업에서 망신당했을 때, 뜻대로 안 풀리는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 일본인 친구들이 건네는 조언은 늘 이렇게 끝났다. “쇼우가나이(しょうがない·도리가 없잖아).”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이 말이 내 친구 몇몇의 입버릇이 아니라 오랜 교육을 통해 일본인들의 DNA에 각인된 삶의 지침과도 같은 문장이라는 걸 알게 됐다. 상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약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이들의 체념이랄까, 초탈이랄까. 지진 후 며칠간 일본 친구들의 트위터에 가장 많이 올라온 문장도 바로 이 대목이었다.

이영희의 코소코소 일본문화: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방송·문화계의 화두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대표 오락 프로인 ‘스마스마(SmapXSmap)’는 지난달 21일 ‘우리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긴급 생방송을 마련했다. 진행자인 그룹 ‘스마프(SMAP)’의 멤버 5명이 노래로 재해지의 피난민들을 위로하고 모금운동과 절전 등을 독려했다. 스마프가 소속된 연예기획사 자니스는 4월부터 진행되는 소속사 가수들의 콘서트를 기존에 사용하던 전력의 10분의 1만 사용하는 ‘절전 콘서트’로 열겠다고 발표했다. 또 자니스 최초로 소속 가수 100여 명이 다 함께 참여하는 대지진 재해 지원 프로젝트 ‘마칭 제이(Marching J)’를 설립했다.

가수들은 노래로, 배우들은 시 낭송으로, 만화가들은 만화로 건네는 격려의 메시지 역시 감동적이다. 배우 와타나베 겐은 대지진 직후 응원 메시지 사이트 ‘키즈나311(kizuna311.com)’을 개설했다. ‘키즈나’는 일본어로 ‘인연’이란 뜻. 야쿠쇼 고지, 가가와 데루유키 등 일본 최고의 배우들이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시를 낭독하거나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슬램덩크’의 이노우에 다케히코, ‘20세기 소년’의 우라사와 나오키(그림), ‘시마과장’의 히로가네 겐시, ‘드래곤 볼’의 도리야마 아키라 등 만화가들은 그림으로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3월 말부터는 지진으로 전면 중지됐던 문화행사나 CD 발매 등도 차츰 재개되고 있다. 지진 다음 날인 3월 12일 개봉 예정이었던 영화 ‘SP-혁명편’은 3월 26일 뒤늦게 개봉했고, 3월 23일 발매 예정이었던 카라의 신곡 ‘제트코스터 러브’도 4월 초 발매가 결정됐다. 3회 만에 일본 연예계의 거대 행사로 자리 잡은 걸그룹 ‘AKB48’의 인기투표(팬들이 음반에 들어 있는 투표권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멤버를 선정)도 예정보다 늦춰져 6월 초 열린다.

불안 속에서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며 묵묵히 역할을 수행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분명 존경스럽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것은 그 전제에 있는 “쇼우가나이(방법, 도리가 없다)”의 태도다. 계속되는 위기 속에서도 투명한 정보 공개 없이 “괜찮다”는 일본 정부와 “진실을 알아도 도리가 없으니” 고개를 돌리는 듯한 일본인들의 모습은 분명 위태롭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한정하기에 앞서 적극적으로 진실을 요구하고 방법을 찾으려는 자세, 그것이 지금 일본에 진짜 필요한 힘이 아닐까.
misquick@gmail.com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현재 도쿄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고 있다.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을 학업으로 승화 중.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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