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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이 사람] 김규동 … 스타는 아니다, 하지만 외칠 자격 있다 ‘나는 시인이다’









나는 시인이다

김규동 지음, 바이북스

276쪽, 1만2000원




원로 시인 김규동(86·사진)씨는 심금을 울리는 명시(名詩)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이른바 ‘스타 시인’은 아니다. 보는 이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문학사에 길이 남을 선명한 발자취를 남긴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의 그늘에서 묵묵하게 시인의 자리를, 권위주의 정권과 싸워야 했을 때는 꼿꼿하게 문단 어른의 자리를 지켜왔다.











 일화가 있다. 명지대생 강경대가 쇠파이프에 쓰러지고 대학생들이 잇따라 스스로의 몸을 불살라 폭압적인 정권에 항의하던 1991년. 그는 본지에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신문 5면 3분의 1 정도의 지면을 차지한 글의 제목은 ‘盧(노)대통령에게 보내는 苦言(고언)’. 당시 대통령 노태우에게,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인 87년 6·29 선언의 정신을 되살려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를 억누르지 말고 끌어 안으라는 점잖고도 분명한 메시지를 담은 글이었다.



 시인 이시영씨는 “선생은 눈부신 시적 성취는 없는지 몰라도 시 쓰기와 민주화 운동에 오래 복무하며 후배들을 따뜻하게 챙겨 존경을 받는 분”이라고 했다.



 김씨는 현재 열 달 넘게 자리보전을 하고 있다. 고령인데다 폐렴 합병증이 찾아와 쉽게 병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를 잘쓰고 못쓰는 문제보다 시 쓰기를 업으로 삼는 점 자체가 중요하다는 뜻을 품고 있는 듯한 제목의 신간 『나는 시인이다』는 김씨의 구술을 받아 정리한 자전 에세이다.



 김씨는 그야말로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인생 역정에 고스란히 새겨진 드문 경우다. 1925년 함경북도 종성에서 태어난 그는 명문 경성고보를 거쳐 병원장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연변 의대에 진학한다. 하지만 문학의 꿈을 접지 못해 김일성종합대학에 다시 입학해 공부하던 중 자유로운 공기를 찾아 한국전쟁 직전 월남한다. 천재시인 이상(李箱)을 사실상 발굴한 모더니스트 김기림이 경성고보 시절 그의 은사였고, 김수영·박인환·천상병 등이 그의 친구였다.



 책에는 유년시절부터 대략 한국전쟁 직후까지, 김씨가 격은 시대와 인물들이 흥미롭게 소개돼 있다. 생계를 위해 양계장을 운영하는 바람에 정작 시 쓰기는 힘들어 우울해 했던 김수영, 굶는 한이 있어도 양복·구두는 최신 유행품을 찾았던 박인환, 아무나 붙잡고 술값을 구걸했던 천상병 등 전설적인 문인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전쟁이 한창이던 51년 겨울 박인환 등이 참가한 부산 이화여대 천막강당에서의 시 낭송회가 요즘 아이돌 공연처럼 대성황을 이뤘다는 얘기도 나온다.



직접 목격한 이의 육성이 아니면 쉽게 들을 수 없는 사연들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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