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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윤이상의 놋쇠 요강







정진홍
논설위원




# 1968년 국내 최초의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한려수도는 경남 통영의 한산도에서 전남 여수에 이르는 아름다운 바닷길 300여 리를 말한다. 그 한 축인 통영은 동양의 나폴리에 비견될 만큼 아름답다. 해발 461m의 그리 높지 않은 미륵산에 올라 바라보면 대번에 그 풍광에 반해 버린다. 통영은 시인 유치환, 소설가 박경리의 고향이기도 하다. 더구나 통영은 우리나라 지자체 중 문화예술 관련 예산이 전체의 12%에 육박할 만큼 가장 문화적인 도시다. 이곳에선 10년째 이맘때면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린다. 올해도 지난 주말부터 어제까지 음악제가 열렸다. 그 중심에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이 있다.



 # 윤이상은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러했듯 시대와 불화한 음악가였다. 그는 이른바 68년 동백림 사건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후 남한 사회에선 한때 금지된 인물이었다. 그의 음악은 흔적 없이 지워졌고 그는 사실상 추방당한 영혼이었다. 그 후 사반세기가 지난 94년 YS 문민정부 시절 그의 귀국이 물밑에서 논의되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끝내 그는 고향 통영을 다시 볼 수 없었다. 그 이듬해 그는 베를린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윤이상의 음악은 그의 고향 통영의 넘실대는 바닷물결에 실려 온 세계로 흘러간다.



 # 홀로 통영 미륵산을 올랐다. 미륵산 정상 코앞까지 케이블카를 놓아 쉽게 오를 수 있지만 굳이 산길을 택해 올랐다. 인적 끊긴 고즈넉한 산길을 오르며 윤이상도 이 길을 걸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를 불러봤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느낌은 짙었다. 아무도 없는 미륵산 정상에서 홀로 일렁거리는 햇살 아래 춤추는 섬들과 바다를 봤다. 윤이상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향 통영의 모습이 이런 것이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통영의 풍광이 가슴 시릴 만큼 아름다운 진짜 이유는 이순신 장군의 고뇌가 서린 한산도, 6·25전쟁 중 귀신 잡는 해병의 통영상륙작전과 포로수용소가 있던 추봉도와 용초도 등에 담긴 남모를 비장감이 함께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리라. 분단이란 비극의 틈바구니에서 예술혼을 끝내 지켜낸 윤이상 미학의 비장감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 통영엔 윤이상을 기린 기념관이 있다. 그 한편에 작은 놋쇠 요강이 전시돼 있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근엄한 표정의 윤이상이 아닌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의 윤이상이 떠올랐다. 본래 요강이란 물건은 한밤중에 뒷간 즉 화장실에 가는 것이 여의치 않을 때, 간단히 볼일을 보기 위한 것 아니던가. 특히 아이들은 불편함보다도 밤중에 뒷간 가는 두려움 때문에 요강을 썼으리라. 어린 윤이상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바로 윤이상의 음악은 고향 통영의 자연이 요강에 오줌 누던 어린 그에게 선물해준 기억의 쉼 없는 재생산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와 종종 밤낚시를 하러 바다로 나가곤 했다. 그럴 때면 그는 아무 말 없이 배 위에 앉아 물고기가 헤엄치는 소리나 다른 어부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린 그에게 바다는 소리의 공명판이었고 별로 채워진 하늘은 음표 가득한 오선지에 다름 아니었으리라. 그가 말년에 그토록 고향 통영을 그리워하며 돌아오려고 몸부림쳤던 것도 수구초심(首丘初心)을 넘어서 그의 음악적 원형으로의 회귀를 꿈꿨던 것인지도 모른다.



 # 통영 시내 서호시장 버스 정류장에는 유치환의 시 ‘바위’가 그의 생전 사진과 함께 입간판처럼 서 있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노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緘黙)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윤이상이 바로 그 바위가 아닐까 싶었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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