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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글와글트위터]온라인 절절하게 달구는 '댓글시인', 당신은 누구?

영국의 한 90대 할머니가 입맞춤을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웃집에 총기를 난사하다 경찰에 붙잡혔다는 기사가 최근 보도됐습니다.



'주책이야"엽기적'이라며 희희덕 대는 댓글이 수백 개 달렸지요. 그러나 이 속에서 심금을 울리는 댓글 하나가 '발견'됐습니다.



"노년을 아프게 하는 것은 새벽 뜬 눈으로 지새우게 하는 관절염이 아니라 어쩌면, 미처 늙지 못한 마음 이리라…."

네티즌들은 "X같은 기사에 꽃 같은 댓글" "왠지 모르게 감동적이다" "마음 한 구석이 찡해온다"며 감동을 표했습니다.









댓글시인의 댓글시 중 일부 캡처.







이 댓글을 남긴 이는 'gepetto777'란 ID의 네티즌. '제페토'라고 불립니다.

씁쓸하고 서글픈 기사에 현실적인 감각으로 특유의 절절한 글을 남겨 네티즌 사이에서 '댓글시인'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트위터에서도 댓글시인의 존재는 단연 화제입니다. 그가 남긴 절절한 댓글은 수없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서울동물원의 명물 고릴라 '고리롱'이 숨을 거뒀다는 기사엔 다음과 같은 비장한 '시'를 남겼습니다.





"고향 떠나온 지 반 백년

시멘트 독에 절단된 발가락

휘청이는 몸으로

사랑도 힘에 부치어

자식 하나 남김 없음이 서러운데

본전 생각에 박제라니

하지 말아라

그만하면 됐다

아프게 가죽 벗겨

목마르게 말리지 말아라

먼지 앉고 곰팡이 필

구경거리로 세워놓고

애도니, 넋이니

그거 말장난이다

사라 바트만처럼

사무치게 그리웠을

아프리카

흙으로"



김해 가축 매몰지에서 '핏물' 침출수가 새어 나왔다는 기사엔 짐승을 향한 절절한 시가 흘러나왔습니다.



생명을 죽였다

임신한 돼지를

갓 태어난 송아지를

젖 먹이는 어미소를

인천시민 수만큼

죽였다



구제역 청정국이니

축산업 보호니

안전한 먹거리니

거창한 명분으로

방역이라지만

실은 학살인데

도살인데



이러다 벌 받지

벌 받고 말지

이런 짓

벌받지 않는 세상이라면

정의니 민주화니 친환경이니

인권이니 생명존중이니

인종차별반대니

떠들어 봤자지

헛소리지



경기도 용인에서 건물 외벽 유리창을 청소하던 40대 인부가 추락사했다는 기사엔 사망자와 동갑이라며 애절한 마음으로 '친구'를 기리기도 했지요.



그 놈의 동네는 가지 성성한 나무 하나 없었더냐

푹신한 잔디 한 평 깔려 있지 않았더냐

에라이 에라이

추석이 코 앞인데

눈 비비며 전 부치고 계실 어머니는 어쩌란 말이냐

하필 당신 나와 같은 나이더냐

전기줄에라도 매달렸어야지

없는 날개라도 냈어야지

누구는 20층서도 살았다더마는

9m면 살았어야지

어떻게든 살았어야지

발 밑 좀 살피지

뭐라도 붙잡지

귓불 스쳐 날던 나비에라도 매달리지

이번 추석은 글렀다

웃으며 지나긴 글렀다

음복 하며 울게 생겼다





혼자 살던 50대 남성이 숨진 지 10여일 뒤 발견됐다는 기사엔 마치 사망한 남성이 쓸쓸하게 읊조렸을 법한 문구들을 적었습니다.



죽기 한달 전에 그랬다

연락할 친구도 없고

연락 닿은 친구는 외면했다

일이 끊겼다

배가 고프다

체취 좋던 그녀가 떠오르는 고약한 하루

나를 때리던 아버지 산소에 가 볼까?

어머니를 화장 하지 말걸 그랬어

3000원 털어 소주를 샀다

퀭한 눈 오랜만이라며 반기는 가게주인

고마운 건 집주인이다

밀린 월세 재촉 하지 않는 것이 더 미안하다



전기장판 위에서 마지막 소주를 깐다

염 하듯 차가운 기운이 뱃속을 씻어 내린다

뭔가 할 일이 있었는데...

의식이 황급히 달아난다

빈속에 마시는 게 아닌데...



아아, 화장 해달라는 쪽지라도 남길걸 그랬어.



네티즌들은 "댓글 읽고 새벽부터 훌쩍거렸다" "밑바닥 인생을 경험한 듯 가슴이 아리다" "댓글을 즐겨찾기에 추가해보긴 처음"이라며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나중에 댓글시집이란 타이틀로 시집 하나 내라"는 요청도 빗발치고 있습니다.



이 네티즌의 신원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가 남긴 댓글 시를 통해 40대임을 짐작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신원이 누군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개 수천 개씩 비극적 기사가 쏟아지는 현실에 절절한 감성으로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져 준다는 점이 네티즌들을 열광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댓글엔 지금도 열화와 같은 호응이 빗발치지만 '댓글 시인'은 그저 묵묵히 자신의 감성을 조심스레 털어놓으며 이 시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진희 기자 jin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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