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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나쁜 사람과 불쌍한 사람







박광순
천안시사회복지협의회장




여러 사람 앞에서나, 글을 쓸 때 자주 꺼내는 보따리가 있다. 아마 그가 나의 이야기나 글을 듣고 보게 된다면 ‘이제 그만 우려먹어라’할 것 같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어렸을 때 같은 반, 같은 동네의 한 친구다. 그런데 언제고 친구는 나쁜 사람, 나는 불쌍한 사람으로 이야기그림에 색을 칠한다.



 그와 나는 500m가 채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살았다. 부모님들도 우리처럼 서로 가까운 사이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 것 같다. 같이 하굣길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다 갑자기 그가 욕을 하는 것이다. 그것도 장애를 빈정대며 ‘절뚝발이래요~’하며 약 올리며 내뺐다.



 나는 목발을 짚고, 동생은 두 손에 가방을 들고 녀석을 쫓았지만 헛수고였다. 북받치는 분함을 삭히지 못해 씩씩대며 돌아왔고 동생과 나는 그날 저녁쯤, 녀석을 집 근처 냇가에서 우연히 만났다.



 다짜고짜 멱살잡이 태세에 그는 또 약을 올리며 멀찍이 물러났다. 서로 욕설을 퍼부으며 돌팔매질이 오갔다. 그리고 동생이 던진 돌에 머리를 맞은 그는 붉은 피와 함께 울음을 터뜨렸고 우리는 도망쳤다.



 한참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그의 부모님이 다녀간 뒤였다. 호된 꾸지람과 다음부턴 쌈질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끝이 났다. 생각해보면 서로 친구인데 왜 그렇게 놀려 댔는지…



 그런 놀림은 밥 먹듯 하던 시절이었는데 동생과 난 왜 그렇게 흥분했는지 의문이다. 지금은 목발을 짚는 사람을 따라다니며 놀리는 사람도 별로 없고, 혹 놀린다 해도 그렇게 악이 받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그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모멸감에 심장이 다 터져버릴 듯 흥분했었다. 좀처럼 웃어넘길 수 없는 그 노여움의 원인제공자가 틀림없이 그였기에, 내가 피해자임을 의심 없이 살아왔다. 또한 피해를 당한 사람은 상처가 오래 남아 두고두고 잊지 못하고 얽매인다는 말에 그렇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상처는 피해자에게 훨씬 크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일러스트=박향미







 가해자와 만나야 상처의 치료도 빠르고 용서도 가능하다는 생각에 동생과 함께 오랜만에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났을 때 장난스레 물었다. 그때 ‘그 사건을 아느냐’고. 그 친구가 모임에 나오질 않아 함께 현장에 있었던 동네친구에게 기억을 잘 더듬으라며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짜식, 그걸 어떻게 기억해. 넌 아직도 기억해? 소심하긴’한다.



 그 친구가 원인제공자임에 틀림없다 확신하지만 실은 그 놀림을 통해 자기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일 수도 또한 상대의 약점을 잡아 흉보고 공격하는 것이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마음일 수도 있다.



 다른 것도 아닌 가장 약한 장애를 빗대 비아냥댄 건 친구로서 좋은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그도 당시에는 어린 시간 속에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도록 습득되어진 한계일지도 모른다.



 장애당사자끼리 이런 이야기를 하다 깜짝 놀란 일이 있다. 나뿐 아니라 다른 당사자들도 자기를 비아냥대며 놀리는 것을 참지 못해 폭력을 휘두른 일들이 한두 가지씩은 꼭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 그것을 무슨 자랑스런 훈장처럼 이야기하며 감당할 수 없는 큰 피해자였다고 한 목소리로 고백하는 것이다.



 즉 나쁜 사람과 불쌍한 사람이라는 두 모습의 얼개로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약자로 살아가는 한 언제고 집중하며 예민하게 싸우는 일들이 있다. 그건 우리가 더 이상 일방적으로 받아야만 하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는 외침이다. 그럼에도 그 외침은 외침이고 가해자를 끌어들여 자신을 불쌍한 사람으로 끝없이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지. 겉 다르고 속 달라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든다.



 깨어진 관계를 사랑과 신뢰로 바꾸어 놓는 것이 회복이라면 ‘너’가 아닌 ‘나’의 책임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똑바른 모습일 것이다. 나쁜 사람으로 낙인 찍힌 그 친구가 간직한 기억. 그 속엔 아마, 비하적인 것이나 쌈질한 흔적이 하얗게 지워지고 함께한 아름다운 추억만이 그득할 것 같다. 자신을 불쌍한 사람인 피해자로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노력. 쉽지 않지만 우리가 풀어야 할 길이라면 소심해지지 말자. 



박광순 천안시사회복지협의회장

일러스트=박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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