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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천안함, 비과학적 주장 그만하라







이동수
연세대 교수·화학과




천안함 폭침 1주기를 맞아 순국한 46명 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추모식이 각지에서 벌어졌다. 젊은 나이에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고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러나 침몰 원인에 대한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사건의 진실 혹은 진리를 밝히고, 원인을 알아내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모든 일에는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처럼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일어난 폭발 원인을 밝히는 일은 특히 그렇다. 가해자가 자백이라도 한다면 모를까. 결국은 우리가 가진 모든 지식과 기술을 응용해 가장 가능성이 높은 답을 얻어야 한다.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객관적인 주장, 사실과 현장에 근거한 접근이 중요한 이유다.



 중앙일보는 지난 25일자 ‘천안함 의혹 외친 그들에게 과학을 묻다’라는 기획기사를 다루면서 의혹을 제기한 이승헌 미 버지니아대학 교수 등의 주장과 이를 반박하는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을 대비시켰다. 세상에서 참으로 확실한 ‘참 진리’를 찾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것도 매우 조심스럽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이 교수 등은 주관적이고 비과학적 추정에 근거한 의문 제기를 하고, 과학상식에도 맞지 않는 접근법을 구사했다.



 천안함 진상 조사에 대한 의문 중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이 어뢰추진체의 ‘1번’ 글씨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미국 대학 교수의 말을 이용해 어뢰 폭발 시 발생하는 엄청난 열로 주변 온도가 높이 올라가고 그 열로 인해 잉크가 남을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거대한 군함을 두 동강 내는 강력한 폭발과 화력에 잉크가 어떻게 남아 있을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다른 과학적 논거로 이들을 반박하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화학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주장은 상식에 어긋난다”고 얘기하고 싶다.



 이 교수 등은 ‘1번’ 글씨가 타버렸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마커 펜 또는 사인펜 잉크의 주성분인 알코올, 톨루엔, 자일렌이 섭씨 80도~140도에 증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두 가지 면에서 맞지 않는 주장이다. 우선 잉크의 이 성분들은 글씨를 쓰는 즉시 없어지는 성분이다. 폭발하기 전에 이미 존재하지 않은 성분이라는 얘기다.



 설령 성분이 남아 있다 치자. 이 성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세 성분 모두 색을 띠지 않기 때문이다. 물처럼 무색 물질이다. 잉크에서 색을 내는 것은 잉크에 녹아있는 물감 때문이다. 잉크에 위 세 가지 휘발성 물질을 쓰는 것은 물감을 녹이거나 액체 상태로 분산시켜 종이와 같은 평면에 쓸 수 있도록 하는 매체(carrier)작용을 하기 위해서다. 붓글씨를 쓸 때를 생각해보자. 먹물은 입자가 작은 먹(탄소 덩어리)가루에 물을 섞어 만든 것이다. 종이 위에 붓글씨를 쓰면 물은 곧 없어지고 먹 알갱이만 종이에 남아 까만 글씨로 보이게 된다.



 이 교수 등의 주장을 먹물에 적용하면 “먹물의 주요화학 성분은 물이고 물은 섭씨 100도에서 증발하기 때문에 붓글씨에 열을 가하면 물이 곧 증발해 붓글씨가 없어질 것”이라는 주장과 같은 것이다. 이 같은 논리 전개가 어떻게 과학의 이름으로 주장되는 것인가. 이들은 또 잉크가 타서 없어진다는 화학적 변화를 물질의 증발, 즉 물리적 변화로 설명하는 기초적인 오류도 범했다.



 천안함의 진실은 대한민국의 안보·정체성이 걸린 중요한 사안이다. 나는 그런 것을 제쳐두고, 전문 영역에서 연구하고 고민하며 ‘참 진리’를 찾아가는 과학자의 자세부터 얘기하고 싶다. 더 이상 비과학적인, 비전문가적인 주장이 없어야 한다. 그게 천안함 장병들의 희생을 욕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천안함 폭침 1주년, 대한민국 국민이자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이동수 연세대 교수·화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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