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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안중근 기념비









옛 어른들은 “징징대면 범이 물어간다”며 우는 아이를 얼렀다. 이탈리아에도 비슷한 게 있다. “계속 울면 한니발이 쫓아온다”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로마의 후예 이탈리아인들에겐 호랑이와 맞먹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거다. BC 218년 코끼리를 몰고 로마를 침공한 한니발은 트레비아·트라시메누스에 이어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군단을 전멸시킨다. 여의도만 한 칸나에 들판이 난도질 당한 7만6000여 명의 시체로 뒤덮였다.



 이처럼 지독하게 당했던 로마인들이지만 세월이 흐르자 로마 한복판에 한니발의 동상을 세운다. 적장이었을지언정 위대한 인물임을 인정했던 거다.



 베트남의 명장 보 구엔 지압에게 유린당했던 프랑스와 미국 국민도 적장에 대한 외경심을 숨기지 않았다. 미국 타임지는 그를 ‘붉은 나폴레옹’이라고 치켜세웠다. 많은 프랑스인은 1954년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던 디엔비엔푸 전투 현장을 지금도 방문하고 있다. 위대한 지압 장군의 족적을 더듬기 위해서다.



 어디보다 걸출한 적장에게 예를 갖추는 나라가 일본이다. 러일전쟁 승리 후 ‘군신(軍神)’으로 추앙받는 일본 해군제독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가장 존경하는 이로 이순신을 꼽은 건 알려진 사실이다. 도고의 영향인지 러일전쟁 이후 일본 해사 생도들은 매년 통영의 이순신 사당을 찾아 예를 올렸다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도 이런 일본인들의 기질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1945년 미군 맥아더 사령관이 점령군으로 도쿄에 진주하자 일본인들은 그를 ‘푸른 눈의 천황’이라며 열렬히 환대한다. 각종 선물과 함께 그를 칭송하는 편지가 하루 수백 통씩 맥아더사령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중의 백미는 일본인 12만 명이 한 땀 한 땀 수놓아 헌정한 맥아더 초상화 자수 작품이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1주년을 맞아 지난 25일 일본인들이 일본 사가현 무량사(無量寺) 앞에 안 의사 기념비를 세웠다 한다. 수년 전 일본 역사교육자협의회에서 펴낸 『인물로 읽는 근현대사』란 책에서는 안 의사가 “일본인 간수들이 흠모할 정도로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로 묘사돼 있다. 일본 측 입장에선 존경받는 정계의 거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암살한 테러리스트이건만 그의 의기를 높이 사는 이들이 적잖은 모양이다. 적이든, 내부 경쟁자든 내 편 아니면 무조건 깎아내리는 게 이 땅의 세태다. 적이었을망정 한 인물을 온당하게 평가할 줄 아는 분위기가 부럽고도 가상하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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