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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은 당연히 우리 땅, 부산의 롯데 팬도 흡수하겠다”

부산의 야구 열기가 창원에 제9구단인 엔씨소프트가 창단되는 촉매 역할을 했다. 롯데 팬들이 특유의 신문지 응원을 하는 장면. [중앙포토]
2011년 프로야구 3차 정기 이사회가 열린 3월 22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 이상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이 “엔씨소프트의 제9구단 창단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KBO는 잠시 뒤 “만장일치가 아니라 롯데가 반대했다”고 정정했다.

막강 롯데에 싸움 건 프로야구 막내 엔씨소프트

당일 이사회 의장인 유영구 KBO 총재는 9구단 창단 승인 건에 대해 “이의가 있으십니까”라고 물었다. 이의는 없었고, 안건은 통과됐다. 하지만 장병수 롯데 자이언츠 대표이사는 “2월 8일 2차 이사회에서 이미 창단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3차 이사회는 2차 이사회 결과를 전제로 한 것이다. 따라서 롯데는 여전히 반대 입장”이라고 KBO에 정정을 요구했다. 롯데는 경남 창원에 둥지를 틀게 될 엔씨소프트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다시 확인한 셈이다. 일종의 몽니다.
엔씨소프트 이재성 상무는 같은 날 이상구 전 롯데 자이언츠 단장을 엔씨소프트 야구단 단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이 신임 단장은 “4월 2일 사직 개막전 때 롯데를 찾아가 인사하겠다”고 말했다. 이 신임 단장은 곧바로 롯데 구단주 대행(신동인)과 장병수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구단주 대행과 장 사장은 비서실을 통해 전화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형님’ 롯데의 스트레이트와 ‘아우’ 엔씨소프트의 카운터펀치가 오간다. 벌써 링은 후끈 달아올랐다.

롯데는 엔씨소프트가 창단 의사를 밝혔을 때부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미래가 불투명한 기업이 프로야구에 참여해선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사실 엔씨소프트 창단에 반대 의사를 표했던 다른 구단들도 비슷한 주장이긴 했다. 그러나 다른 구단들은 엔씨소프트의 능력을 확인하고 9구단을 통해 야구판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더 큰 이익이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마지막까지 반대한 구단은 롯데뿐이었다.

당연했다. 롯데는 부산을 연고로 하지만 창원을 비롯한 경남은 사실상 롯데의 범연고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롯데는 창원시로 통합된 마산에서 지난해까지 연간 6~9경기를 치렀다. 롯데가 엔씨소프트의 행보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양승호 롯데 감독은 “개막전을 앞두고 이기고 싶은 팀을 물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제9구단이라고 해야 하나”라고 농담을 했다. 엔씨소프트는 빨라야 2013년에 프로야구 1군 경기에 참여할 수 있다.

프로 스포츠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라이벌 구도다. 30년을 맞은 프로야구사에서는 그동안 여러 라이벌이 존재했다. 최동원과 선동열이라는 국내 최고 투수를 보유한 롯데와 해태가 영·호남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으며, LG가 MBC를 인수한 뒤에는 ‘부정 방망이 사건’을 일으키는 등 삼성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현대가 야구판에 뛰어든 뒤 삼성과 현대의 재계 라이벌이 성립됐다. 그러나 같은 지역을 연고지로 하는 팀들의 ‘더비’는 잠실 구장을 함께 쓰는 ‘한 지붕 두 가족’ 두산과 LG가 유일했다.

두산과 LG는 지역 출신 선수를 먼저 지명하는 1차 지명 제도가 있을 때 격렬하게 대립했다. 서로 좋은 선수를 데려가기 위해 치열한 영입전을 벌였고, 주사위로 지명 순서를 정하기도 했다.
엔씨소프트의 창단은 제2의 더비로 이어지게 됐다. 부산과 창원의 거리는 약 50㎞. 롯데 입장에서는 창원은 물론 경남까지 형성된 팬층을 엔씨소프트와 나눌 수밖에 없게 됐다. 실제로 창원 지역 롯데팬 다수는 신생구단 창단 소식이 알려짐과 동시에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롯데에서 엔씨로 ‘내 팀’을 옮기겠다는 뜻이다. 엔씨소프트도 창원시를 넘어 부산 롯데 팬들까지 아우르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사실 엔씨소프트의 창단에는 롯데의 지대한 역할이 있었다. 금융위기를 거치며 1990년대 관중이 급감했던 프로야구는 2008년 이후 관객 600만 시대를 눈앞에 둘 만큼 급성장세로 돌아섰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에서 대표팀의 호성적을 낸 것도 원인이었지만 롯데의 부활이 큰 이유였다. 롯데는 2008~2010년 세 시즌 연속 4강에 진출하며 관중 동원 1위를 차지했다. 관중 증가는 KBO의 9구단 창단 노력에 날개를 달아줬다. 아이러니하게도 롯데가 이끈 야구 흥행이 라이벌 구단의 탄생을 이끈 셈이다.

엔씨소프트는 창단 준비 단계에서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창단과 관련한 실무적인 내용이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철저히 보안에 힘썼다. 창단 사실이 알려질 경우 일어날 후폭풍에 충분한 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창단 결정이 공개된 당일,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엔씨소프트는 김택진 대표가 직접 나서 역동적이고 기민하게 대응했다. 김 대표는 야구에 대한 애정과 함께 기존 8개 구단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며 예상보다 쉽게 창단 과정의 관문을 넘어섰다. IT기업 특유의 젊은 감각을 내세우면서 그룹 전체가 힘있게 뛰어들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구단 운영과 관중 동원 면에서도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롯데의 흥행 아성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비치고 있다. 이상구 단장의 영입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단장은 지난해 1월까지 27년간 롯데에서 일한 ‘롯데맨’으로 롯데 사정에 정통하다. 또한 롯데의 홈구장인 사직구장 연간회원권을 구매해 엔씨소프트 홍보팀 직원을 상주시킬 예정이다. 부산의 야구 열기와 운영 노하우를 그대로 보고 배운 뒤 이식하겠다는 의지다.

‘반롯데’ 정서를 마케팅을 위한 지렛대로 쓸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엔씨소프트 측은 “좋은 선수가 있다면 투자를 해 데려오겠다”며 외부 영입에 나설 뜻을 밝혔다. 지난해 MVP 이대호와 연봉조정신청을 겪으면서 인색한 이미지가 굳어진 롯데와 달리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는 모습을 보인다면 경남 지역 팬들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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